지붕 위로 날아간 유치(乳齿)

아이에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by 북청로 로데

자정이 넘어가는데 나는 누룽지를 연신 아기작거리며 씹어댔다. 태풍 바비의 위력을 역대급이라고 속보를 전송하는 기자들이 입은 비옷은 비 아닌 바람과 맞서서 펄럭거렸다. 새벽에 태풍이 더 거세게 몰아칠거라는 뉴스를 들으며 아파트 베란다에 내놨던 작은 화분까지 실내로 옮겼다.


이제 곧 태풍이 지나가기만 하면 이 연극의 대단원은 무너지고 파손된 도로와 가옥, 간판, 담장과 축대를 세우는 화면과 기사들로 각 포털 메인에 걸릴지 모른다.


종잇장처럼 훌러덩 벗겨져 구겨진채 하늘 위로 날아가는 양철지붕이 뉴스 배경에 등장했다. '저 사진은 언제 찍어놨던건가?' 신뢰감이 떨어진 나의 질문도 지붕과 함께 날아가는 중이었다.


'지붕 위로 날아갔거나 날려보낸' 아이템들이 지붕 따까리 뿐은 아니지. 나와 동생들의 유치(乳齿/ 생후 6~8개월경 생기는 유아기 시절에 치아를 일컫는 용어)들도 숱하게 지붕 위로 날려보냈다. 어린 우리들은 유치들에게 날개를 대신해서 실을 매달아 지붕 위로 던져 자유를 선사했다.


지금 내 영구치의 뿌리가 되었던 유치들은 자유로이 날아가서 소멸되었다. 아버지가 던질 때 하는 주문을 알려주셨다. 모래 위에 두꺼비 집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금새 눈치챌 수 있는 주문. "썩은 이 줄께. 영구치 다오~" 이 짧은 문구를 외쳐야지 영구치가 찾아올거란 믿음 때문에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유치던지기 의식을 치르면 큰일난다.


의식 절차는 이렇다.


명주실로 흔들리는 유치를 옴짝달싹 못하게 꽁꽁 묶는 일차 작업을 한다. 그 다음으로 아버지는 자꾸 딴소리를 하시며 내 시선을 딴 곳으로 유인하신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아버지의 두꺼운 손바닥이 내 이마를 툭 쳐서 밀면 허무하게도 이빨이 빠진다.


사실, 이빨과의 이별이 서글퍼서 겁이 난게 아니라, 어린 내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눈물이 났었던거다. 이빨이 빠져나간 잇몸에서 잠시 동안 피가 흐르지만 소독 솜을 앙물고 있으면 괜찮아졌다.


아무래도 첫째로 태어나서 뭐든 처음으로 맛본 인생의 쓴맛에 대한 경험 쌓이다보니 ... 동생들이 이를 뽑을 땐 의젓하게 그들을 위로했다.


"내가 이를 뽑혀봐서 아는데~ 오래 안걸려~! 아프긴 한데 ... 근데, 금방 지나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듯이 부들부들 떨리는 동생의 손은 아버지의 손목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았지만 자식의 건치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단호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아프고 무섭겠지만 어쩌냐? 영구치는 이렇게 해야 나오는것을~

유치 빠지는 연령대 순서

유치(乳齿)가 빠지는 연령대와 순서가 있음을 보면서, 오묘한 자연의 이치가 이빨 안으로 들어와 있음에 감탄이 나온다.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을 그냥 허투루 돌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이빨도 지니고 있다. 몸의 일부로 자리잡고 생겨난 자잘한 사이즈의 유치들은 성장기에는 소멸을 기다리는 가을 낙엽인듯 몸으로부터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지붕 위로 날아간 유치乳齿"라고 제목을 다는데, 1971년에 상영된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1962년 출간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라는 장편소설 제목이 떠올랐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한 가지 궁금했던 내용은 유대인들은 밤에 혼인 잔치를 여는지 여부였고, 정말 유대인들은 전통을 따라서 밤에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


그 영화 스토리와 뽑혀나간 유치간의 상관 관계가 1도 없지만 기억에 기대어 있는 내 과거는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서 유사점을 찾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엮지 못할게 없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따라가보면 다 맞닿아 있긴하다.


지금 현존하는 영구치도 실은 영구적인 이빨이 아니지 않은가. 얘들마져 지붕 위로 날려보낼 때가 온다면, 어릴적 우리 집 지붕 위로 내던져져 사라진 유치들을 더 간절히 회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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