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가족 일기

무, 얼갈이, 열무가 김치 됐다

by 북청로 로데

자정이 지났다. 현재 시각 12시05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니... 이제 06분이다. 폰 위에 수타로 찍어내는 문자 속도가 시간을 쫓아가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부모님 없이 혼자 남게 되면 지금 뭘 하고 싶은데?'라고 자신에게 물어봤다. 아마도 몇일 날 무슨 일을 했는데.. 그 때 아버지가 그러셨지. 엄마의 몸이 어땠지. 하는 일상이 그리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일기를 써볼까 생각했고 2020년 5월3일부터 가족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쓰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고 옥수수 알 빼먹은 것처럼 날짜가 군데군데 비고 건너뛰며 일기를 쓰고 있다.

보름간 휴가를 받아놓은 상태라서 그런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자정이 지났는데 일기를 쓴다. 저녁까지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에어컨을 켰다가 집안 일을 다 마치고 내 방으로 들어온 밤 9시 쯤 리모컨을 눌러서 에어컨을 껐다. 찬기운이 빠져 나가는 것을 차단하려고 닫았던 앞뒤 베란다 문들을 열었더니 일순간 훅~하고 더운 공기가 들어왔다가 집 안에 머무르던 찬공기와 섞이면서 딱 잠들기 적당한 온도가 되었다.

茶。院。; 다.원

오후 1시 쯤에 내가 사는 아파트 뒤에 위치한 까페 [다 원]으로 갔다. '다 원' 까페의 이름 뜻은, '모두 다 원하는, 사랑하는'에서 중간 글자 다와 원을 부각시켜서 만든것 같다. 주인에게 이름의 어원을 물어봤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정보를 알려주는데 훨씬 수월했을건데... 다음 기회에 물어봐야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름을 잘 지었다고 보이는 이유는, "다"를 "전부all"로 보고 "원"을 "하나(1. one)"로 가정했을 때 전부이면서 하나가 되는 특이한 수가 되는거다. 아무튼 내가 책을 읽으러 가끔 가는 커피숍일 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다. 우리집 아파트 주변에 커피숍을 손가락으로 세면 여덟 곳이 되니까 "다원"은 n분의 1인 장소이다.

(의견: 친한 친구가 "다원이 茶院" 아닌가? 하고 의견을 던지는 순간! 친구의 말이 맞겠네 싶다. 언어를 볼 때도 어떤 렌즈를 끼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걸 경험하게 된다.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글이나 사물을 보는 것이 익숙한 나는"다. 원"을 숫자 놀이로 보았으니... 참, 딱딱하다고 느꼈겠다.)

오전에 집안 청소와 노트정리를 하고서 독서법에 관련된 책을 읽었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나섰다. 부모님은 오후 세 네시 쯤에 오실테니 그 전에 내가 할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적어도 4시 반에 집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정리의 능선

독서법에 대한 내용은 손노트에 정리했는데 이젠 그걸 밴드에 올려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생각이다. 자꾸 일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요즘 내 생활에서 좀 두드러지게 그 재주가 나타나고 있다. 독서법 내용 정리가 대략 9부 능선을 넘어서 숨을 돌려도 된다. 솔직히 출판사에 원고 넘기는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애쓰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물이 되면 좋겠다.

커피숍에 들어서서 아이스크림라떼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시원하고 얼음도 적당히 들어 있어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가방에 노트와 한 권의 책을 더 챙겨 갔는데 서울대 추천 동서고전 200선 《古典》 가운데 동양문학편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독서법을 포스팅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서 집으로 갈 시간이 임박해서야 고전을 펼쳤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공부는 저자와 책과 짧은 요점 정도를 연결지어 외웠던 동양 문학들이 《古典》에 옹골차게 들어차 있었다.


청소년 시절 내가 배웠던건 학문으로의 "국어"가 아니라 입시용 국어로 문학 작품들을 저자와 매칭하는 단순 노동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독자의 독서 의욕을 교육이 뒷받침 해주지 못했으니 국가와 개인에게 얼마나 큰 낭비인가! 그래도 나이 들어서 독서에 흥미를 갖고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한다.

커피숍을 나서는데 써늘한 냉기가 흐르는 실내와 달리 후덥지근한 공기를 느끼며 아파트 사잇길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동안 몸에 찬 기운이 한동안 남아있었다. 집 현관문을 들어서니 오늘 더위 때문에 힘드셨던지 아버지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으셨다. 엄마는 시장에 김치 담글 부재료를 사러 가셨단다. 주방 싱크대 위에는 핏물을 빼려고 물에 침수시킨 돼지갈비 , 바닥엔 열무 두 단, 식탁에는 큼지막한 무 한 덩어리 등 갖가지 재료들이 널려있었다.




잠시 후 돌아온 엄마는 장을 본 물건이 담긴 검정색 봉다리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더위 때문에 쓰러질듯 얼굴이 노랗게 질려있었다. 얼른 박카스 한 병을 따서 얼음을 띄워 마시라고 드리는 동안 아버지는 갈비 양념할 사과를 사오라고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우선, 열무 얼갈이 무를 다듬어 놓고 나가자!

아파트 근처에 시장이 있어서 써야 할 재료들이 필요할 때마다 그곳으로 달려가 물건을 구입한다. 자주 가는 과일가게에서 오천원짜리 사과 한 개와 이 천 오백원 하는 배 하나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돼지갈비를 양념에 재우는 일은 아버지가 전담하신다. 어떤 일이든 맡아서 할 일이 있는게 부모님께 더 나은 것 같다. 아버지가 작업을 하시는 동안, 나는 다듬어 놓은 김치 재료들을 소금에 절이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는데 ... 오늘 같이 일이 많을 때는 냉장고 속 파먹듯 있는 반찬들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설겆이와 식탁 정리를 후다닥 해치우고 나서 김치 재료를 믹서기에 갈고, 소금에 절여둔 무부터 건져내어 씻고 양념들을 버무려 무김치를 만들었다. 다음은 얼갈이열무 물김치 차례! 엄마가 냉동실을 열어서 안쪽에 일 년 가까이 짱박혀 있던 찹쌀가루를 꺼내시며 이걸로 김치풀을 끓일 거라고 하셨다.

' 한 뭉태기를 다 끓이실건가?' ​


의심의 눈빛을 단타로 보냈으나

꿈쩍하지 않으시는 울 엄마♡

음식할 때면 손이 크신 엄마는 그렇게 하셨다. 엄마는 큰 솥을 꺼내 거기에 물을 담고 찹쌀가루를 풀기 시작했다. 가스렌지에 그 솥을 얹었는데 그 풀을 다 쓰면 물김치 한 단지를 만들것 같았다.

"엄마, 다 할거 아니지?"


"그래도 맛은 있다야"
(입막음용 동문서답을 하시네)

물김치 만들 대야는 지름이 어른 한 팔 정도로 약 60에서 70센티미터의 큰 용기. 거기에 물과 찹쌀풀, 간 홍고추와 다진 마늘, 배즙, 고추가루, 액젖과 소금, 매실청 까지 골고루 섞고 맛을 보면서 짜면 물을 더 붓고, 싱거우면 소금을 더 부어가며 주재료인 열무랑 얼갈이를 최종적으로 넣어서 맛난 김치 두 통을 만들어냈다. 다소 양이 많은 얼갈이는 조금 남겼다가 얼갈이 겉절이를 담궜는데 그것도 맛있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김치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