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들까요

발에 걸리는 돌에도 이야기가 있다.

by 북청로 로데


아파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플라스틱 컵. 꽃채 버려진 화분. 박스 한 상자 가득 쓰레기를 담아서 버린 걸 종종 볼 때가 있다.

반만 마시다 버려진 커피는 맛이 없었던걸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연령 제한이 있었던가? 그러고보니 70년 대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연령 제한은 없었지만,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내용이, "어른=커피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등식으로 '커피'를 어른들이 독점하고 마셨던 시절도 있었다.


단골이 되어가는 까페에서

어떤 이유로든 버려진 물건들을 '쓰레기'로 통칭하고 말을 걸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심코 던지는 질문 하나로 새로운 이야기의 곁가지가 돋는다. 발에 밟혔던게 돌이며 흙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돌이나 흙도 돈을 주고 사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적 변화 때문에 하찮은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이유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소한 주변 사물들이 건네는 이야기가 어디로 빠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전에는 지나쳤지만 이제는 무관심할 수 없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내 이야기에 끼워 넣거나 의미를 추가해도 될지 살피게 되었다.


최근 읽고 있는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실린 사진들을 보면 데자뷔처럼 가보지 않은 장소인데도 낯익은 곳,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통할 것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리딩하는 동안 내 기억 속에 저장해뒀던 나의 연대기가 실타래 풀리듯 줄줄이 끌려나온다.


한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내 이야기에 끼워넣는다면, 1992년 8월24일 한국-대만간 단교하는 날 대만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상해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었을 때, 1997년 2월 등소평의 사망 기사를 방송으로 처음 들었고, (내 기억으로 일주일 내내 등소평의 일대기를 TV로 시청하면서 정말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걸 실감했던 때였다.) 같은 해 7월1일 영국에 빼앗겼던 홍콩이 155년 만에 중국으로 반환되던 역사적인 날을 상해에서 맞이했다.

回國香港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그 시각에 왜 하필 그 나라나 장소에 있었던걸까?' 확인차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 발에 밟히는 이야기들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나의 궁금증도 해소될 것 같다.


요즘엔 평범한게 그립다. 아무 사건사고 없이 뉴스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무탈한 날들이 찾아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람쥐를 좋아하는 강변의 여인. 각양각색의 표지로 인쇄되는 책들. 하늘. 조각상들. 까페. 7080 옛 구멍가게. 가족과 친구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아파트 놀이터에서 퍼지는 하이톤으로 떠드는 아이들 소리조차 돈을 주고 듣고 싶다. 그래서 일상 곳곳에 깃들어 있는 새로운 이야기 곁가지들을 어떻게든 엮어볼 수 있으면 기쁘겠다.


나는 포레스트 검프*가 아니니까. 굳이 계획에 없던 역사의 중심에 서있지 않아도 아름다운게 천지에 널려있다는 사실을 최소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는 1994년에 상영된 영화로 포레스트 검프의 30년 삶을 기록하며, 1950~70년대 미국 역사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을 주인공이 목격하며 명성을 얻고 운동선수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