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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Apr 21. 2021

나의 4월을 소개합니다

고비


"아저씨~  이 풀 이름이 뭔가요?"

"고비~ 고비 ^^ "

(아저씨는 이름을 알려주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묻기를 잘했다'는 뿌듯함에 고비 풀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대고 웃어줬다. 

사진도 찍어줬다.

'의 초록이 보기 좋구나!'



나의 4월 초반.

 땅 속으로 파고들 것 같은 좌절감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즐거운 대화가 답답함으로 돌아왔다.

굳은 표정으로 생기발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끌려 올라오는 다채로운 일들이 풀처럼 시들해져 있었다.



*감정선이 회복되지 않는 이 와중에도,

매주 토요일 오전 취미로 (자격증반 아님) 배우는 커피 드립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서 쓴맛 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대단하진 않지만 디테일하게 쪼개서 관찰하면 재밌는 커피 정보들이 넘쳐나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데... 다행히 이번 주에 8주 차 과정을 마무리한다.)


**친한 동생과  어마 무시한 분량의 시편을 5일 매번 한편씩 묵상하기 시작해서 현재 78편까지 읽었다.

(구약성경 시편은 무려 150편까지 있다. 남은 분량이 72편 정도지만 대장정이다. 150 고지에 도달하기까지 숫자를 세지 않는 편이 낫다.)


***3월 이후 도서관 발길을 끊고, 독서 대신 실뜨기로 별의별 가방들을 미친 듯이 떠댔다. 6개 중에 작은 토트백 하나 남기고 다섯 개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 한코 한코에다 시선과 마음을 집중하니 생각은 정화되고 몸이 망가지는 걸 체득했다.)


****매달 한 권씩 그림책을 정해서 영아반(8~25개월) 아이들 엄마들과 그림책 나눔을 비대면으로 하면서, 세 번째 그림책을 읽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 나눔은 엄마들을 위한 그림책 나눔이 되었다. 4월의 그림책이 바로 <흰 눈>이었다. 1분 정도면 페이지를 드르르 넘기며 다 읽을 수 있는 그림책들. 어게인&어게인 리딩 하는 동안, 그림 안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화수분처럼 솟구쳐 오른다.)



'고비 풀'이 눈 앞에 나타난 건,

2주 동안 나를 부침시키던 좌절과 분노로부터 벗어난 때이다.

'고비! '

어떤 고비를 넘기고 나니 '고비 풀'이 대답하겠다고 등장한 건 아닐 텐데.

절묘한 순간에 그 풀이 눈에 들어왔다. 고비 풀이 나에게 전한다.


"문제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조금 떨어져 봐!"


'네가 옳다고 확신하는 일들이 진리는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서... 너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옳다는 건 아니다'


"내 주변에 무엇이 보이나? "둘러봤더니 '고비 풀'이 힘차게 허릴 젖히고 언덕 비탈진 음지에 앉아 있었다. 늘 그곳에 있었던 거다.


나 외에 타자와 사물들이 보인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일까?

그건 마치

맹인이 눈을 뜨는 것 같은 일이다.

갑작스레 문제가 도로 중앙으로 뛰어 들어와서 급정거를 하고 사태를 파악하는 동안 정신이 반쯤 나갔던 것 아니었나.


그리고 눈을 뜨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일종의 '깨어남'이기도 하다. 깨어나서 현실과 사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건, 눈이 감겼다가 뜬 거니까 '회복'된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잠시 눈이 감겼다가 눈 뜬 자의 행복이란? 허다한 사물들을 보는 것에 있고, 또한 보지 못하는 이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에 있기도 할 것이다.


커피 드립 강좌 수강생 한 명이 '종이공예'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방송국에도 문화 산책으로 방송이 된 영상을 오늘 아침 카톡에 올려 소식을 전해왔다.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갑자기 연예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일상의 루틴이 심심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그 단순하고도 지속성 있는 루틴이 쉽지 않은 삶의 연속인걸   배우며 4월을 보내는 중입니다.

눈이 밝아져 보이는 읽어야 할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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