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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May 15. 2021

1.0 게으르지만 다시 독서로

독서는 걷는 행위다.

1/100


‘게으르지만 다시 독서’



후스토 L. 곤잘레스의 ≪基督敎思想史(Ⅱ)≫에서 다루는 큰 주제는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서방 신학에서부터 후기 중세 신학에 관한 이야기다.

후스도 L 곤잘레스 <기독교사상사>
 #고백 아니 자백

과거에 나는 어거스틴에 관해서 잘 몰랐으면서도 신학을 하는 사람들 간에는 꽤 유명한 인물이라서 나도 그를 좀 알 거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다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탐독하면서 그가 혹은 그의 신학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고백록≫과 쌍두마차를 이루는 그의 책이 ≪하나님의 도성≫이 아닌가 싶은데 그 책은 문고판으로 읽었던 기억이 전부이다.   




독서는 걸음이다.    

‘어거스틴’향해 걸어보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어거스틴이라는 인물을 만나기까지 다리를 놓아준 책이 있다.

5년 전 나는 존 오웬(1616-1683)의 책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를 시작으로 그가 집필한 ‘죄론’에 관한 다섯 권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한 권씩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독서 브릿지. "어려운 고어 해제"

 15세기 신학자의 글을 21세기 독자가 읽고 이해할 수 있으려면 해제가 따라붙어야 하는데, 김남준 목사가 존 오웬의 방대한 기록들을 정리해서 16쪽으로 해제했다. 그의 해제는 존 오웬이 집필한 책 내용의 진행 방향과 내용들에 밑그림 같은 것이었다.     





‘원 플러스 원’? win-win!


소개팅을 주선하는 사람이 언변이 좋고 신뢰할 만하면 소개받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 상승과 동시에 주선자에 대한 호감도 역시 오르기 마련이다.

이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이유는 ‘존 오웬’의 책을 해제했던 김남준 목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서다.

서로를 연결하는 사상, 철학의 고리

존 오웬을 읽는 과정에서 김남준 목사의 철학 사상에도 흥미를 갖게 되어 김남준 목사의 ‘존 오웬 시리즈’ 영상을 보고 난 후에 의 책을 하나 둘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그가 쓴 책은 꽤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두세 번 읽었던 책이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이다.

좋아하는 저자와 책이 생겼다.

그는 이 책 제목 아래에 -‘사상 없는 신앙의 가벼움’이 일상화된 시대의 치유책- 이란 글을, 다시 밑에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미셀러니-라고 썼다.


저자 김남준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 ≫      

GNOSCO ME IN AETERNITATE

포이에바 출판사 저작권 설명란


나만의 독서습관.
근거는 없어도 독서에는 도움이 된다.

1판 1쇄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논리. 비논리적으로 아무런 근거나 연관성도 없는 "1판 1쇄"라는 점이다.

초판본을 갖는다는 뿌듯한 만족감이 독서에 일정 정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초판을 선호하지만, 지금은 나의 이런 소소한 사적 취향도 예전 같지 않다.


궁금한 용어 찾아보면 좋아요.
-참고
 know의 동족어 ‘알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NOSCO는 훨씬 더 오래전에 GNOSCO였다가, N 앞에 위치한 G가 사라지고 NOSCO만 남게 되었습니다.
한편, nosco에서 파생된 단어들인 cognition, recognize 등에서 보듯이 앞에서 접두사가 결합되면 “g”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 반디의 ‘know의 어원과 묵음 k’)     

ㅡ미셀러니/ 에세이는 중수필, 미셀러니는 경수필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 객관적. 사회적. 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수필’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중국 남송 때 홍매(洪邁)가 그의 저서 ≪용재 수필≫에서이다. 그는 ≪용재 수필≫ 서문에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 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라고 썼다. 한국에서는 박지원(연암 朴趾源)의 연경 기행문 ≪열하일기≫에 <일신 수필(日新隨筆)>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보인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수필’)    





나의 독서와 서평 1순위는 ‘김남준’과 ‘C.S. 루이스’


글로 만난 이름들 기억하기.
기억으로 돋아나는 나만의 독서.
그 다음 계단으로 건너가게 된다.

감성+주관+개인+정서가 뭉쳐진 글쓰기를 미셀러니라고~ ≪고백록≫을 김남준  목사의 미셀러니로 펼쳐냈기에 나와 같은 사람이 그다음 계단인 어거스틴의 ≪고백록≫으로 건너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계보.
방향성.
자신만의 색깔 있는 독서

이렇게 어거스틴, 존 오웬, C.S.루이스, 김남준이라는 인물들은 내 독서의 든든한 계보가 되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걷는 독서



게으르지만 다시 독서로


후스토 L. 곤잘레스의 ≪基督敎思想史(Ⅱ)≫에서 어거스틴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생경하지 않다.

 그를 잘 소개해준 중매자가 있어서 그 덕에 어거스틴이 자신의 고백록에 기록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었다.


김남준 목사의 말처럼,

그가 어거스틴을 통해 누린 유익에 대한 부채의식의 작은 표현으로 이 글을 썼고, ‘고백록’을 저자의 경험으로 재해석해서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에 녹여냈다고 한다면, 곤잘레스는 <기독교 사상사>에서 어떻게 중세를 논할지 사뭇 궁금하다.


사상사 역시 세 권이 한 세트인 책이다. 1권을 읽은지 시간이 꽤 지나서 두번 째 책을 다시 집어든 게으른 독자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음 ~~
3권 한 세트

비.토

가 꽤 많이 내리는 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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