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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Oct 14. 2021

내 할머니, 아버지의 바다

<나는 고향 여행 중이다>


오징어잡이 배들이 수평선 위에 둥둥 밤길을 긋고 있는 월정리 바다


바다가 양갈래로 서로의 등을 맞대어 아득히 돌아볼 수 없는 그 바다들의 경계까지 죽음이 덮였었다.



할머니가 파도에 휘말려 몸을 굴렸다 풀었다 하던 주검들의 몸을 둘둘 감고 있던 야광체를 보셨던 날부터 ㅡ

 문어는 꼴도 쳐다보지 않으셨다.



눈알이 빙글빙글 돌고

머리는 무겁게 눌리고 쏟아지는 잠도 잠들게 못했던 배가 주린 날에도 박작하게 해안선을 긋고 둘려 쳐 있던 문어는 잡지 않으셨다.


사람이 주검이 되고

물속에 생물들은 배부르게 살아났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주검이 되고

할머니는 밤바다 해안가를 꿈틀대며 기어 다니던 야광체를 외면했다.




흰 거품 물고 달려들던 파도는 자기 자리 지키고 앉아 있는 백사장 앞에서 지체 않고 소멸한다.

자신을 없애려 떠밀려와 기꺼이  촤~아아 갈라지는 소리 외치고 모래사장 앞으로 엎어진다.




오늘은 그 바다 할머니의 과거를 알길 없는 외지인들이 야광체들과 주검이 뒤섞여 바닷물에 이리저리 뒤척이던 그 해변에서 행복해 보인다.

 


저 연인들은, 저 부부와 아이들은,

바다가 씻고 데려 간 주검으로부터 대속을 받은 것 같다.


그 누군가가 작정하고 소멸시켰던 주검이 진실의 바다에서 대속으로 살아나고 있다.



월정리 밤바다를 걷는 생명들이 자신이 지불하지 않은 대가 위에서 맘껏 행복하길 바라고,

그들 뒤에 발자국을 이어 올 낯선 얼굴들이 여전히 행복할 수 있도록 조용히 방탕하지 않고 있다 가시기 바란다.



p.s 할머니는 제주 4.3 때에 남편을 잃으셨다. 생때같은 자식 넷을 남겨두고...  6.25 전쟁이 터지고 피난민들이 늘어나면서 끼니를 해결하는 게 너무도 힘드셨다. 바닷가 돌 틈에 붙어 있던 보말이랑 따개비까지 박박 긁어 찬거리를 장만해야 했다. 해변가엔 매장할 곳 없던 시체들이 나뒹굴었고 그 주검들 속에서 문어 떼를 발견하셨다. 밤이라서 바닷가에 반딧불인가? 생각한 그곳에서 야광체로 빛을 내던 것을 보고 난 이후..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문어는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그건 죽은 남편의 고통을, 자식들의 굶주림과 내일이 보이지 않는 피난민들의 파산한 희망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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