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양치는 언덕》

책리뷰. 사랑과 용서의 그 오랜 의미를 찾아서

by 북청로 로데


재작년 9월 중순 즈음. 혼자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독자의 감상평이 사뭇 궁금해진 건 나로서도 의외의 반응이었다. 개인적으로 소설류를 즐겨 읽지 않는데도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와 동작, 표정들이 눈앞에 그려져 번번이 그들의 삶에 개입했다.


"안되는데., "


"제발, 왜 그 정도밖에 생각 못하니?"


"아니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저런 못된 놈'까지


감정이 치받쳐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분노하거나 눈물을 터트렸다.


책을 주문하고 받자마자 언박싱한 알라딘 뽁뽁이 포장과 책을 눕혀놓고 독서 시작을 알리며 몇 줄 되지 않는 글을 성의 없이 블로그에 올렸었다.

브런치에 쓴 글도 다듬어 쓰려다 멈칫 멈칫하고 손대지 않았지만 책은 가끔씩 나한테 달려왔다가 되돌아서길 몇 번씩 반복하는 듯했다. 그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자신을 선택했던 내게 왔는데도 '이미 지나갔는데 왜 다시 왔는데?'라는 표정을 지으며 차단벽을 쳤으니 말이다.


그렇게 2년여 동안 내 방 책장에서 아침이면 어스름한 커튼을 젖히고 들어오는 밝은 기운에 눈을 뜨고, 저녁이 되면 머리 위로 내려앉은 먼지를 이고 같은 곳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다시 너를 끄집어내고 네가 전하는 메시지를 찬찬히 읽어보고 너의 감정과 선택과 표정을 써볼 참이다.'


나비 마크를 한 위치에서 2년 차를 보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너와 나의 차이가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와의 차이이긴 하지만 한 글자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생각과 감정이 될 순 없을 것 같다.

같은 장면과 대화에서 비슷하게 느낄 순 있겠지만 2년 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복사한 듯 같은 감정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사랑의 시작. 라일락

(*꽃말은 사랑의 시작 또는 첫사랑이다.)


홋가이도(北海岛) 삿포로에 있는 기다미즈 여고(삿포로에서는 '라일락 여고'라고 부른다) 교정 둘레로 라일락이 만발한 6월.

점심을 먹은 뒤 3학년 A반 교실 학생들 사이로 가와이 데루코스기하라 교코서로에게 쌀쌀맞고 무관심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앉아 있었다. 최근 들어 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


갑자기 옆반에 다미코가 호들갑을 떨며 들어와서는 학생 한 명이 전학 왔다는 소식을 전하고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잠시 후, A반 담임 다케야마 데쓰야 (영어) 선생이 하코다테의 T여고에서 전학 온 히로노 나오미 데리고 교실로 들어와서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이 소설에서 계속 등장할 인물들은 영어선생 '다케야마 데쓰야'. 사장 딸 '가와이 데루코'. 여인숙을 한다지만 실상 술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때문에 양공주라고 놀림을 받는 '스기하라 교코'. 전학 온 '히로노 나오미' 네 사람이 라일락 학교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사람들은 '스기하라 료이치'(교코의 오빠), 나오미의 아버지 '히로노 고스케'(목사)와 어머니 '아이코'이다.

*이십여 년 전 호주 '가나안' (독일 발음은 knaan) 마리아자매회 공동체에서 "나오미"라는 이름의 일본 친구를 만났었다. 하얀 얼굴에 웃을 때마다 덧니가 보여서 귀여운 데다,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얘기하는 모습에 '여성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느꼈었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룻기>에 등장하는 룻의 시어머니 이름이어서 일본 친구에게 "혹시 가족들이 크리스천이야?"라고 물었었다. "아냐, 일본에서는 나오미가 흔하게 부르는 이름이고 성경과 관계가 없어."라는 대답을 들었었다.
흔하지만 굳이 "나오미"를 여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이야기의 종교적 배경이 기독교임을 암시한다.


<라일락 여고>는 단수 혹은 복수의 사람들의 사랑이 발화된 지점이다. 학교 교정 둘레로 활짝 핀 라일락의 꽃말이 "사랑의 시작" 임을 알게 되면 앞으로 누가 누구와 사랑을 시작할지 궁금해진다. 라일락 향기에 취하듯 사랑을 동경하거나, 아니면 라일락 잎을 뜯어 입에 넣고 씹었을 때 머금게 되는 진액의 길고도 강한 첫사랑의 쓰디쓴 맛을 느낄 수 있다.


(전지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지만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등장인물들의 존재의 차이만큼 그들 각각은 자기만의 사랑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부서지거나 상처를 입거나 초연해할 것이다. 욕망과 사랑 사이를 전전하며 속이고, 나약하면서 때로는 잔인한 모습으로, 무자비한 욕망과 허영에 이끌려서, 적어도 한 사람은 온전히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사랑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들의 각각의 삶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사랑...그건 뭘까?"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사랑의 시작에 대해 알고 싶다면 스파크가 일어났던 현장으로 가서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치밀하게 따지고 확인하면 혹시나 사랑의 실체를 찾을 수도 있다. 단, 사랑이 제멋대로 상상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활동을 멈춘다면 말이다. 사랑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지우는 건 그 사랑을 결심한 주체가 자신 이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책임질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얼굴을 하고서 난데없이 그(그녀) 탓을 하고 있다면 사랑이 오염되었든지 사랑이 아닌 것일 뿐이겠다.




<오타루> 나오미가 혼자 여행을 갔던 곳이자. 료이치와의 밀월 여행지였던 도시
<하코다테> 나오미가 부모의 반대를 뿌리치고 료이치가 있던 이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양치는 언덕》의 무대가 된 홋가이도(北海岛)는 작가가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도시로 그 가운데 세 장소를 의미 있게 선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곳이다.

첫 번째 장소는 여주인공 히로노 나오미 가족이 이사한 [삿포로]. 두 번째는 나오미 혼자 하룻길 여행지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밀의 섬 같은 [오타루 오다모이]. 세 번째는 나오미와 료이치가 결혼해서 생활했던 [하코다테]이다.



두 번째 장소에서 나오미는 신문사 기자로 근무하는 교코의 오빠 스기하라 료이치를 만나게 된다. 나오미가 하룻길로 혼자 떠난 오타루에서 우연히 영어선생과 료이치와 교코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데, 우연이라는 가변적 상황이 갖는 불안정한 감정을 암시하는 시험장 같은 장소이다. 목사로서 아버지는 나오미와 이웃에게 부족함이 없는 분이셨지만, 가족들과 함께 식사기도를 하고 나서는 왠지 나오미는 외로움을 느꼈다. 어떤 것이 그녀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지? 오타루로 하루 여행을 꼭 떠나길 소원했던 자유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느낀 것 같다.


*특히, "하코다테"는 사랑의 달콤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사랑이 저주와 분노로 역치되는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신념. 사랑이 철저히 부서지는 이곳 세상을 가리킨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신문 기자인 료이치는 나오미의 담임인 다케야마 데쓰야의 친구였다. 그리고 삿포로로 전학 온 나오미와 단짝 친구가 된 교코의 오빠였다. 그는 전시 중에 옥사하는 선배를 보고 나서 고문의 두려움에 전향을 했으나 그 일이 늘 부끄러웠다. 그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그림과 돈과 여자였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 간혹 '나는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는 것과 비슷해서 사랑앓이 하는 사람도 환자일 수 있겠다.


나오미는 자기 자신과 자기감정에 충실한 료이치를 원했다. 그건 곧 그녀의 껍데기는 기도하지만 내면은 외로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도 했다.

료이치와 결혼하겠다고 고집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살리는 거야."


"그래? 사랑한다는 건 용서하는 것도 돼. 한두 번 용서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는 거야. 너는 스기하라 료이치 군을 용서하면서 살 수 있겠니?"





2020년 9월 20일에 언벅싱

사랑은 살리는 것이라고... 결혼은 용서하는 거로 끝나지 않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라 말씀하셨던 부모님을 떠나 나오미는 료이치가 있는 하코다테로 올라갔다. 그녀가 바라던 대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결정이었고 그녀의 사랑이었다.


료이치는 사랑이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열등감에 휘둘리고 고통을 지울 쉬운 해결책으로 술과 여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여고 시절 나오미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기와이 데루코와 연인이 되었다. 데루코의 사랑은 욕망이라기보다 욕심에 이끌린 자기만족에 다름 아니었다. 데루코는 료이치가 나오미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가 유혹하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술. 여자. 그림으로 자신의 가치를 탕진하던 료이치가 폐병에 걸리자 가장 먼저 그를 받아주고 치료했던 나오미의 부모는 그에게 지난 일들은 "이미 용서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사랑은 용서하는 거야"

"용서하면서 사는 거야"


료이치는 어떻게 되었을까?


료이치는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나오미에게 사랑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폭설이 내리는 밤 데루코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그가 돌아왔다고 오해하지만 료이치는 그녀에게 헤어지는 데 동의를 요청했다.

자기 욕심을 채우는 걸 사랑으로 아는 데루코가 료이치에게 마지막 술잔을 건네는데.. 그건 자신이 용서받은 증표로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무효로 하는 행동인걸 알았다. -그가 마지막이란 단서를 써가면서 그녀의 집으로 갔던 데는 자신도 '용서'의 대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거다.-

한참의 갈등 끝에 잔을 들었다. 그것은 데루코가 수면제를 탄 독배와도 같은 술잔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야 돼' 몽롱해지는 약 기운에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간 료이치는 눈이 쌓이는 거리에서 동사체로 발견되었다.


그가 죽은 뒤, 병을 치료받는 동안 아내 나오미를 위해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방 한 구석에 자리한 캔버스 위에 덮여 있던 흰 천을 벗기자 캔버스 위에 그림이 나타났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맞으며 그리스도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청년의 얼굴. 그것은 틀림없는 료이치의 얼굴이 아닌가? 회한에 찬 그 료이치의 눈이 똑바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374쪽에서 인용)



어떤 남자의 사랑은 자신의 마음이 누굴 향하고 있는지 몰라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나오미의 담임 다케야마 데쓰야가 그이다. 한 여자는 버리기도 쥐고 있기도 힘든 욕망과 욕심이 주는 만족에 취해 있었다. 나오미에게 대한 시기와 질투로 죄에 무디어져 자신의 삶까지 망친 기와이 데루코이다. 또 어떤 여자는 자기 사랑이 전해지길 기다리다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그와 결혼했다. 나오미의 절친이었던 교코이다.


책의 줄거리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서 막장드라마가 이런 거겠다 싶었다.

거기까지 망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그들이 사는 곳이 이곳 세상인걸 생각하면 '사랑과 용서'로 씻지 않고 무엇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실수하고 살지만 용서하거나 용서받는 일이 단지 소망으로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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