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자 내 마음은 마치 물수리가 한껏 날개를 펴고 호수와 초근접 거리로 유영하듯 자유와 편안함이 밀려왔다. 이 안정감은 주인공 맥의 영혼의 상태였을 거라고 믿는다.
《오두막》
# 사고 발생: 맥의 막내딸 미시는 연쇄 아동유괴범에 의해 살해당했다. 실종신고를 하고 3년이 지났으나 딸의 시신은 찾지 못한 채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버지, 동생의 실종과 죽음의 원인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딸(미시의 언니 케이트)과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어둠의 터널을 나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 눈여겨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 돌아오지 않는 미시의 시신: 오두막에서 피에 젖어 찢긴 빨간드레스만 발견되다. 미시를 납치한 살인범은 미시가 실종되던 날 입었던 빨간 드레스만 오두막 안 테이블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찾지 못한 딸의 시신은 주인공 맥의 불편하고 부자유한 상태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매일 크고 작은 실수와 죄를 저지르고 생활한다. 비록 완전한 무오류의 인간이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언제나 정죄받을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엄격한 교회 장로이면서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무자비한 구타와 욕설을 들었던 어느 날. 술병에 살충제를 넣어두고 열세 살 맥은 가출한다. 맥은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엄마를 지켜주기엔 어렸고 힘이 없었다.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대상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를 해결할 길을 찾지 못했던 맥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누군가는 맥의 심정을 살피고 토닥여 납득할만한 이유를 말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네 탓이 아니라고 맥의 깨어진 영혼을 향해 제대로 설명해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초대. 장대비가 쏟아지던 오후.우편함에 한 통의 엽서가 배달되었다.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다음은 직면하기.
(왜 하필 오두막인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직면하는가?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고 보는 게 사람의 본능이다. 제대로 피하지 못해서 어쩌다 정확하게 대면하는가? 이것도 아니다. 직면하면 해결될 거라고 보증할 수 있는 신임장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무턱대고 덤비다가 더 큰 화를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가까스로 행동한다 할지라도 ‘겨우’ 할 수 있는 한 걸음이 있다면 초청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맥은 오두막을 향해 차를 운전해서 혼자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두막을 가겠다는 결정도, 혼자서 파파를 만나겠다는 각오도 맥 자신이 내린 결론이었다. (오두막에서 맥을 기다리고 있었던 파파와 예수와 성령으로 대변되는 사라유를 만난다. 그 만남은 맥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인격적인 만남이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 맥에게 있어서 직면이란?
거울을 보는 정도가 아닌, 내시경으로 몸속 구석구석을 다 드러내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는 “온전한 자유”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용서할 수 있는 용기’는 자유의 대지로 맥을 인도하는 다리가 되어 용서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진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