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청로 로데 Dec 11. 2022

놀라셨죠, 저도요

티라노사우르스의 위력


세 살 아이가 어른을 놀래키는 지점은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티라노사우루스 보러 가자!"

단번에 뚝! 하고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힘을 지닌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엄마 손을 잡고 유치부실에 들어온 세 살 이가 보였다. 몇 걸음 떨어진 데서 쳐다보니 엄마랑 영~ 떨어지겠나?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목놓아 우는 세살이를 떼어 놓고 본당으로 올라가려는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세살이의 귀에 대고 강력한 이름을 제시했다.

 "우리~ 티라노사우루스 보러 가까?"

반반의 확률뿐인 도박판에 '티라노사우루스' 라는 빅 카드를 날렸는데. 이게 웬일인가?

눈물을 너무 흘려서 얼굴마저 온통 축축해진 아이가 몸을 조금 돌렸다.

세살이는 내가 잡은 자신의 왼손을 뿌리치지 않고 이끄는 데로 걸었다. 목적지는 내 발이 가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울어야 하나?' (세살이가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세살이가 다시 울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내 가방이 놓인 곳에 도착했다. 아이와 보폭을 맞춘 어른의 여덟 걸음과 아이의 열두 걸음.


세살이가 내 손을 잡고 몸을 틀어 부모에게 옆구리부터 시작해서 완전히 등을 보였을 때. 세살이의 부모는 이미 유치부실을 빠져나갔다.

 '그렇지, 빅 카드를 던진 목적이 바로 이거. 부모와 떨어지는 것이었지!'   티라노사우루스 스티커를 손에 거머쥐자 다시 대성통곡하는 아이. 아주 쪼끔 나의 목구멍에서 배신감류의 기분이 바람이 지나듯 휙하고 빠져나갔다. 그 기분 탓인지 나는 걸어온 여덟 혹은 열두 걸음 저편에 보이는 이모를 향해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최소한 피붙이 혈육의 품에서는 울지 않는 세 살이니까. 이모 역시 내 판단이 옳았다는 표정으로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지난주에

'그래, 판단 미스(미스테이크)였다.'

'반모임 시작 단계에서 세 살짜리들에게 덥석  아이클레이를 던져주고 만들기 미션을 시작했다. 시간차가 잘못된 미끼였던거다. 정작 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아이들의 귀에 들릴 턱이 없었겠지.  

그러자 새롭게 등장한 아이템 '공룡'. (세살이들에게 공룡을 만들어보라니... ㅠㅠ 정신이 나간 거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게. 네 명의 세살이들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공룡이 '티라노사우루스'라고 했다.

세살이들은 생각처럼 목소리가 크지 않다. 내 얼굴을 아이 얼굴 앞까지 쭉 내밀고 나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 갸우뚱하듯 돌려 귀를 아이의 입 가까이 거의 밀착해야만 듣게 되는 가늘고 청량하게 바들바들 떨리는 세살이의 목소리를 겨우, 정말로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아이클레이 작업(? 과연 작업이었던가...)을 끝내고 세살이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선생님이~ 다음에 우리 친구들한테 티라노사우루스 스티커를 하나씩 줄 거예요~"

"그래서 지금 선생님이 뭔가를 할 건데. 바로 이 노트에 친구들 이름을 적을 거야~."

세살이들이 어른 말귀를 잘 알아듣긴 할 테지만. 나는 느리고 정확한 발음을 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내 쓰기 동작조차 말의 속도를 따라 슬로모션이 된 듯했다.


오늘자 노트에 펜으로 또박또박 쓰면서 읽기 시작했다. "지혜반 친구들한테 티라노사우루스 선물하기!" 눈물로 얼굴 젖은 세살이, 또래보다는 작지만 아주 총기 넘치는 세살이, 하얀 피부에 목소리도 하얀 세살이, 이제 한달차 친구 세살이까지 넷의 눈이 한 곳을 집중했다.

글을 쓰고 있는 백지 위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 순간. 내 맘 속에서 정말 묻고 싶은 말이 빙글빙글 맴돌았다.

'너네... 선생님이 쓰는 글을 알아?'  자존심에 흠집을 내면 안 되는 세살이들을 위해서 나의 궁금증은 내 속만 태우다 증발됐다.

*활짝 부채살을 펼쳐 바람을 일으키듯, 한껏 넓어지는 입가를 따라 만발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살이들은 여전히 노트 위 'ㅇㅁ.  ㅎㄹ. ㅎ. ㅌㅇ' 의 이름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살이들의 이름을 다 쓰고 최종 기호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글자들을 봉했다.

꼭!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약속이 되었으니까.

옹기종기 서로의 어깨를 붙여 앉아서 노트를 응시하는 그 숨 막히는 장면 속에서 나는 신데렐라보다 행복했다. 아이들의 따뜻한 온기와 살아있는 총총한 생기와 서로의 어깨가 둥근 울타리가 되어 서로를 '하나'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티라노사우루스!

'그래, 너의 위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세살이들을 일치단결시킬 수 있는 힘을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선생은 그림자가 되어도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공부든 쓰기든 적당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