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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Dec 08. 2022

공부든 쓰기든 적당히

<어린 왕자> 독서 나눔

전도서 12:12

1212가 '시비시비'로 읽어지는 시간입니다.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공부든 글 쓰는 것이든 즐거움이 있지만 그래도 피곤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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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북청로 첫 해외 회원과 나눈 내용입니다.


 #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1900~1944)



"언니, 첫 번째 책으로 이 책을 읽게 돼서 좋네요~. 어느 문장에선가? 울컥하더라고요."


"그랬구나. 그래. 책은 좀 읽히던가? "


"네.. ㅋㅋ 처음에는 뭐야? 라며 집중이 안되다가, 중반부를 넘고 후반으로 가니까 다 읽게 되더라고요."


"글치 ㅎㅎ~ 처음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어른들이 '모자'로 봤다는 얘기들이 나왔으니까."

"너는 읽으면서 어떤 장면이나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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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던 소감은... 좀 철학적인 내용들이 많다고 느꼈어요. 어린 왕자가 살던 소행성 B612에  생명체인 한 송이 꽃과 한 마리 양과의 관계, 자신의 행성을 떠나 일곱 개의 행성을 여행하는 왕자의 여정, 지구별에서 만나게 된 사막 여우와의 대화,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의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의미 있게 해석되었습니다.


(리딩 하면서 노트 정리가 길어지길래 중간에 쓰는 걸 멈추고 생각을 더 하려고 노력했어요.)



비행기 조종사가 작가 자신처럼 보였어요. 여섯 살 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어른들은 그 그림을 '모자'라고 봤죠.)을 그렸던 이후 그리기를 멈췄던 사람인데. 왕자가 나타나서 다짜고짜 '양'을 그려달라고 했던 게, 이후 그가  바뀌는 신호탄이 되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그림 그리기'라는 활동(행위)이 비행조종사에게 트라우마로 느껴진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비행조종사가 새로운 그림을 어설프게 그리는 모습이 '자신의 약한 면을 직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게 된 원인 제공자였던 어른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하나의 틀이 있었죠.  그런데, 어린 왕자와 대화가 막히는 장면에서 조종사 자신 역시 '어른'임을 자각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비행조종사의 변화를 '회복'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만남'이 회복의 시작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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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만, 글이 길어지면 눈도 아프고 귀찮아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어서 가능한 간단하게 정리하도록 할게요.




#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어'

이 말은 7장에서 어린 왕자가 생각한 문장입니다.

저 한 마디 문장이 제 마음을 터치했어요. '내가 사는 지구라는 행성에 위로해 주어야 할 한 명의 어린 왕자가 있었던거다.'

위로가 필요한 어린 왕자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제가 봉사하는 유치부 영아반 엄마들이나 아이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더라고요.




# 허영심이 가득 찬 사람(두 번째 행성에서)

'두 손을 부딪치는 것'을 '박수'라고 말하면 될 일을 허영남(?)은 길게 설명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는 태도 자체를 '허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나가지 않는 몸 (몸인것 같지만 마음인거죠), 칭찬 외의 말은 듣지 않는 귀, 기쁨 만을 받고 추앙받고 싶은 마음 세 가지를 서술한 것을 읽으면서, 저자의 관찰력에 감탄이 나왔어요. '그렇다. 뭐 다르게 설명할 것도 없이 저런 사람이 바로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의 말에 묻어나거나, 행동에 따라붙거나 하는 '허영'을 들킨 기분에 한숨이 났습니다.




#  술꾼 (세 번째 행성에서)

어린 왕자가 감정적으로 커다란 서글픔을 느꼈던 만남이었습니다. 왕자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술꾼을 쳐다봤던 것 같습니다!




#  사업가(네 번째 행성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너무 바쁜 사람은 어쩌면, 엄청나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데도 자기 소유의 쓸모를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자기별의 숫자를 셈하며 살아가는 사업가가 평생 딱 세 번  일을 멈췄다는 게 그에게는 자랑이었을지 모르지만.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는 51,622,731개의 별을 소유하고 있었죠. 왕자는 소행성 B612는 선 자리에서 한 바퀴만 돌아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작은 행성의 주인일 뿐이었죠. 사업가와 어린 왕자를 나누는 차이는, 어린 왕자는 자기의 행성에 있는 꽃을 생각한다는 지점인 것 같았습니다.




#  가로등지기 (다섯 번째 행성에서)

어린 왕자가 이런 말을 해주거든요. '천천히 걸으면 쉴 수 있다고... 천천히 걸어보라고' 가로등지기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우직하게 시간에 맞춰서 감당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시사항'은 변하지 않는 거죠. 그런데 왕자는 '천천히 걸어보라'라고 즉 '행동의 작은 부분이라도 바꿔보라'라고 얘기해주더라고요.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에 있을 때 석양이 지는 모습을 감상하는 걸 좋아했었죠. 석양을 좀 더 오래 보려고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조금 움직였었지요. 석양을 따라 의자를 조금 틀었을 뿐이었는데 '그가 원했던 석양을 길게 봤던' 경험. 경험이 있는 어린 왕자로서 이야기 할 법한 대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제안은 머릿 속에서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니라 경험치였다는 점이 중요해 보였어요. 누구나 말로 권면할 수 있지만 한뼘이라도 바꿔봤던 애씀이 있었는지 여부는 정말 중요한 것이거든요.


하지만 천천히 걷기를 선택하는 몫(의지) 가로등지기가 하는 것이니 어쩝니까.

가로등지기의 시간 계산 법대로 어린 왕자가 계산하고 하는 말이 참 철학적으로 들렸어요. '하루 24시간, 1,449번 석양을 볼 수 있는 축복받은 행성'이라고. 왜냐면, 왕자는 석양을 바라보기를 좋아했거든요. 여기에 어린 왕자 마음에 '축복'과 '아쉬움'이라 두 마음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탐험가(여섯 번째 행성에서)

어린 왕자가 생경한 단어 '덧없다'는 의미에 대해 처음 듣게 됩니다.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게 '덧없다'는 단어 풀이로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왕자는 '꽃에 대해' '처음으로 후회를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꽃을 생각하는 왕자로 내면이 성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탐험가는 어떻습니까? 탐험가라면 지리는 빠싹 하게 꿰고 있어야 전문가여야 할 텐데... 그는 지리에 무지합니다.

저에게도 좀 충격이었어요. '전문가라도 무지할 수 있다. 그러면, 그 무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저의 자문자답은 '배우지 않으려는 심성이 그를 무지한 전문가=탐험가에 머무르게 했구나!'였습니다.




한줄평

'어린 왕자는 (내가) 철학적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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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행성에서의 이야기는 생략하는 게 좋겠습니다. 너무 늦은 데다 어깨도 아프고 그래서요.   혹시 이 긴 정리를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수고하셨다고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참, 서두에 전도서 12:12 (시비시비) 말씀처럼, 공부든 쓰기든 몸을 피곤하게 합니다.  적당히 하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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