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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an 16. 2023

기대하지 않는 평이한 날들




수제비 반죽을 물이 끓는 솥에 툭툭 뜯어 넣듯 나의 일상은 평이하고 바쁠 것 없이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의 작품을 읽으며 이러쿵저러쿵  기분에 따라 서평 하지만 책을 써본 사람의 속사정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 싶다.

예기치 않게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소원이 하나 이뤄졌다. 22년 12월 31일에 쓴 기도제목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응답을 받은 기분이다. 무언의 언어가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려 파동을 일으켜 몸이 움직이는 게 소원의 성사여부를 결정하기에 은밀하면서 동시에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매일 아무 소식이든 쏟아낸다. 무작위로 내게 걸려든 이야기들이 가지치기로 내쳐지고 남은 것을 수습하는 게 내 몫인 것 같다.

1월 첫 주부터 시작한 직장인 독서모임에서 <나니아 이야기>를 읽고 있다. 매주 한 권씩 (참석자들 가운데 "원장님~ 너무 힘든 거 아니어요?!"라고 응석을 부리지만... 읽을게 산더미라 스킵이 답이다.) 힘들게 읽는 중이다. 어른이 동화책을 읽다 보면 자꾸 선생이 되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충동을 다스리는 게 독서의 묘미이기도 하기에 동화책 읽기가 어쩌면 '어른마음 다스리기'의 수단일 수도 있겠다.


어제 주일예배와 유치부 모임을 마치고 오후에 집어든 책이 박수밀의 <열하일기 첫걸음>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열하일기'와 연관된 책들과 영상들을 블랙홀이 닥치는대로 모든 걸 끌어들이듯 모으고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 따라 한국 고전의 맛은 진득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멋스럽다. 작년에 읽다가 중단한 고전 읽기를 이어서 시작한다면 그 출발점에 '열하일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읽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물 붓기를 한 사람이 고미숙 평론가이다. 그의 책 <로드클래식>에서는 정말 맛보기식으로 감칠 나게 '열하일기'를 정리해 놓았던데.  '길 위에서 길 찾기'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여섯 편의 책을 이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최근 강원도에 습설(습한 눈)이 내렸단다. 습설이 많이 내리면 나뭇가지들이 눈 무게를 못 견디고 부러지거나 쓰러진다. 십수 년 전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겨울을 보낼 때 만났던 눈이 습설이었다. 수도원과 세월을 함께 버텨왔던 거목 벚꽃나무들이 베어지듯 쓰러지고 꺾이는 걸 목격했었다. 긴긴 겨울 동안 습설이 내리는 수도원에 희로애락이 함께 찾아왔고 그곳 가족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쓰는 사람은 쓰기 전에 읽는 독자라고 했던가. 공감백배! 습설로 가지가 꺾이기 전에 내 안에 쌓여가는 다양한 텍스트들의 희로애락을 이제 겨우 몇 글자 적어본다.

그런 다음 다시 책으로 사람 속으로 복귀할 거고 그럴만한 때가 있음에 다행이라 여긴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친구로부터 톡이 왔다.

7월에 라오스를 여행하자는 톡이다. 이것 역시 새해 이루고 싶은 소원 가운데 한 가지. "라오스, 한번 가보자!" 했는데... 진짜 가기로 결정되었다. 이제 겨우 1월인데 소원이 하나씩 성취되고 있다. 모든 게 다 이뤄지고 나면 그다음에 해야 할 작업은 깊어지는 거겠지.


"道(도)를 아십니까?"

도를 닦아 경지에 도달한다고 할 때마다 구름에 둘러싸인 산봉우리를 연상했었다. 가부좌로 앉아 더는 수련할 게 없는 신선과 동급이 된 고수들이 산꼭대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고수들이 삶을 받아들이는 것도 수준 높고 점잖다. 서두르지 않는 건 달관이자 이치를 꿰뚫은 이의 느림이다.

고수들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아마도 고난의 수위도 그들 수준과 비슷해야지 않을까?

작년에 그랬듯 올해도 어김없이 별의별 일들이 전개되겠지. 좋은 일만 있기를 축복합니다!라고 말하지만 '늘 좋은 일만 있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이 사실을 알아가는 게 나이 먹고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오는 설날에 이곳 남쪽 동네에 눈발이라도 한번 화끈하게 날렸으면 좋겠다. 그냥 기다려보고 그냥 즐거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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