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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Mar 21. 2023

그리움의 본진, 거기

추억이라는 것? 추억이라는 곳?



처음이 지금과 거리가 멀수록 뭉쳐지는 곳이 떠오른다.  '어디 두고 오겠노라'는 핑계 한 줄 남기고 마실 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았다. 농어업을 하던 촌 동네가 번창하자 들어앉은 공장들. 온종일 탱크롤리, 덤프트럭, 흙먼지가 도로 위를 내달려도 손 흔들어 환호해 줄 인적이 사라진 땅이 되었다. 인적은 거인 같이 서 있는 석유저장소와 정 없이 각이 진 건물 어디에서 숨 쉬고 있을 뿐.  



늦바람 든 여자처럼 삼월부터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다. '봄이라 그런가 봐요' 솔직히 봄 때문이라는 건 핑계일 뿐. 이런 핑계라도 걸어둬야 '그렇구나~'라며 수긍하듯 끄덕이는 사람이 있지 않겠나. '나도 너처럼 삼월이 오면 그래~'




'나는 왜 이리 쉬이 피로할까?'...

 '정 없는데서 사느라 그런가,  인정 부리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어서 그런가'  

내 몸이 받는 피로도가 내가 품을 수 있는 바닥난 정만큼 통증으로 몸 구석구석을 배회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보네' 자꾸 아픈 데가 느는 건 정이 빠져나간 자리가 텅 비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지 않고도 볼만한 영상을 늘어진 비디오테이프인 양 처음부터 다시 또다시 반복 재생.


봄바람에 일렁이는 파도 타는 보리밭. 가로수길이 된 전봇대. 바다로 출근할 어부들이 살피던 하늘. 밭고랑과 이랑을 일시에 뒤덮던 눈. 사물과 풍경과 계절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생기들이 전부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의 본진이 부서졌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신개념의 그리움을 도시 곳곳에 새기고 다닌다. 특히 공원과 카페.  

이름을 몰라도 정겨웠던 풀밭은 공공근로로 다듬어진 정원으로 거듭나고, 카페는 소담하기보다 확실한 부의 창출을 목표로 넓어지고 커지고 화려해지는 중이다. 이것 역시 멀리서 보면 공장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새로운 신식으로 채워보겠다는 세상의 굳은 결의를 읽고도 나는 할 수 있는 한도의 마음과 시간과 말을 공들여 공원과 카페에 흔적을 남긴다. 새롭거나 낯설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눈에 담는다.

쫓겨난 옛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걸 알아서 기억을 헤집고 추억하는 건 늘 내 몫이었으니까. 그건 계속 내가 찾아낼 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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