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벤처스 수석 이인배 인터뷰
카카오벤처스는 초기 투자자 역할을 하는 벤처 캐피털(VC)로, 왓챠나 그랩 등 우리의 미래를 앞당기는 스타트업의 처음을 지지하며 성장해온 기업입니다. VC는 결정에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수직적 소통 아래 소수에 의해 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카카오벤처스는 이런 익숙한 구조를 벗어나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댈 때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으로, 수평적 소통 방식을 선택했죠.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리모트 워크 문화도 이런 철학에서 이어지고요.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의미 있는 참고 사례가 되길 바라며, 단단한 철학으로 구축한 문화를 9년간 지속해온 카카오벤처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카카오벤처스 이인배 수석 인터뷰
조직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프로페셔널리즘이요. 때와 장소에 맞는 태도를 취할 줄 아는 게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생각해요. 평소 분위기는 자유롭더라도 일 처리는 정확하고 신속하게 해야죠. 특히 커뮤니케이션을 오해 없이 깔끔하게 하고, 계약서 검토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더욱 철저해져야 하고요. 리모트워크를 하면서 더욱 자율적으로 일하게 된 만큼 느슨해지기도 쉬워서 개개인이 이런 프로페셔널리즘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태도를 결정하는 ‘때와 장소’에 구체적인 예시를 든다면요?
직업 특성상 다양한 분들을 만나는데, 사회적 위치나 직급, 역할이 다 달라요. 높은 직급의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고, 당장은 조그만 스타트업을 하는 분이라도 나중에 크게 성공해서 저희가 투자를 요청할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죠. 그래서 한결같이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고, 무엇보다 큰돈이 오가는 일이니 투자를 맡기거나 투자해 주는 분들에게 신뢰를 드려야 합니다. 회사의 대변인이 되기도 하는 상황에서, 어떤 자세와 방식으로 임해야 할까 많이 생각하죠. 때로는 이 주제에 관해 간단한 토론을 나누기도 해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분들에게는 본인의 언행이 회사의 이미지로 굳혀질까 부담스럽기도 할 것 같아요. 회사 측에서 따로 교육을 하기도 하나요?
일단 처음 면접 과정에서 태도를 주의 깊게 봅니다. 따로 교육을 하지는 않지만, 입사 초반에 좀 더 경험이 많은 사람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태도를 익히게 돼요. 결을 맞춰가는 작업이 가능한 사람들이라 계속 함께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스타트업, VC 업계에서 의미 있는 걸음을 카카오벤처스가 한 걸음씩 먼저 가면 좋겠다. 회사 구성원이 한 배를 탔으니 이 배 안에서 즐겁게 일하면 한다. 그 판을 깔아주는 게 제 역할이다.”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한 걸음 먼저 내딛기 위한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투자는 정답이 없는 일이라, 각자 자기만의 유니크한 관점과 논리를 갖고 “이 회사는 이걸 잘하기 때문에 잘 될 겁니다”라고 소신껏 발언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최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떤 주제나 아이디어라도 위축되지 않고 본인만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문화를 세팅한다는 생각으로요. 보통의 투자 회사들은 고위급의 소수가 결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판단하면 가능성 있는 투자를 놓치게 되어요. 그런 상황을 타파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급을 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배려합니다.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수직적 소통이 아닌, 개개인의 독특하고 신선한 관점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점이군요. 소통 방식 만큼 조직도도 유연하게 구성될 것 같아요.
큰 투자 회사들은 조직도가 위에서 아래로 뿌리처럼 갈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최대한 서로 나란히 마주하기 위해 프로젝트 팀으로 짝을 지어 일합니다. 인원이 아주 많은 편도 아니고요. 프로젝트에 따라 연차나 경험, 전문성이 쌓인 임원급 한 명과 프로젝트 별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팀을 이루죠. 예를 들어 전자제품제조 기업을 만날 때는 그 분야에 흥미가 있고 잘 아는 사람과 같이 하는 거예요. 아주 작은 단위의 팀 안에서 연차나 경험, 전문성이 쌓인 임원과 임원이 아닌 사람으로 두세 명씩 구성되는데, 꼭 임원이 아니라도 해당 분야에 좀 더 강점이 있는 사람이 프로젝트를 이끕니다. ‘이 회사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라고 확신을 갖고 목소리를 더 많이 내는 사람이 리드하는 구조죠. 연차가 낮은 분들이라도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신나게,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어요.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면, 최종적인 의사 결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업무의 특성상 결정에 따르는 책임이 막중할 텐데요.
물론 모두가 다 같이 모여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큰 금액이 오가기도 하고, 투자 기업은 믿을 수 있겠다는 인식, 돈을 잘 다룰 것 같다는 이미지가 중요하니까요. 최종 결정은 경험이 풍부하고 경력이 쌓인 분들, 책임을 질 수 있는 파트너(임원)가 합니다. 이런 소통 방식은 모기업인 카카오의 ‘신충헌’ 문화와 닿아있어요. 신충헌은 신뢰 , 충돌, 헌신을 줄여 쓴 표현으로, ‘서로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마음껏 충돌하되, 결정된 사항은 충실히 따르고 헌신한다’는 의미예요. 이런 문화를 토대로 리더와 구성원 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죠. 물론 이 방식이 맞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토론해서 어느 세월에 결정을 내리나 싶을 수도 있죠. 하지만 카카오벤처스는 투자를 하는 눈을 기르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문화를 이어오고 있어요.
‘수평적 소통으로 집단 지성을 발휘한다’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에 동의하는 구성원이 모여 지속해올 수 있었던 거군요.
네, 가장 좋은 결정을 향해 맞춰나간다는 믿음,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어요. 의견이 다르더라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 판단을 위한 거라는 이해가 있죠. 사람마다 말투나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감정을 싣지 않고 이야기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고, 또 해석하려고 해요. 그리고 저를 포함한 시니어들은 젊은 분들이 발언을 할 때 더욱 경청하려 하고, 의견을 보태거나 반박할 때에도 최대한 꼰대같이 들리지 않게 노력을 많이 해요.(웃음)
일하다 보면 시스템이나 환경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생기는데요. 카카오벤처스에는 아직 인사 담당 부서가 없다고 하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추후 문제가 될 만한 점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때그때 이야기해요. 현실적으로 당장 도입하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건 스스럼없이 가볍게 얘기를 꺼낼 수 있다는 점이에요. 공식적인 정기 회의에서 주요 논의사항을 끝내고 나면 남은 시간에 논의하고 싶은 주제로 자유 발언을 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있어요. 이렇게 낸 의견이 자리 잡은 예로는, 지금 저희가 이용하는 공유 오피스는 제가 나서서 설득하고 진행했어요. 회사는 판교에 있는데, 강남 부근으로 외근할 일이 많아서 시간과 에너지가 허비됐거든요. 이 문제에 공감대가 있는 분들도 있었지만, 입장에 따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계셔서 보류하다 리모트워크를 시작하면서 추진했어요. 필요성을 가장 크게 느낀 제가 나서서 장소를 둘러보고 조건을 비교하고, 예산을 정리해서 결제까지 마쳤어요. 지금은 다들 잘 이용하고 계세요.
현실적으로 당장 도입하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건 스스럼없이, 가볍게 얘기를 꺼낼 수 있다는 점이에요.
리더가 튼튼한 조직 문화 뼈대를 만들었다면, 구성원들의 필요과 노력으로 살이 덧붙여지고 있군요. 지금은 판교 오피스를 중심으로 공유 오피스와 재택근무 등 리모트 워크로 일하고 계시죠.
코로나 초기, 다른 회사보다 조금 더 먼저 리모트 워크 체제를 도입했어요. 전부터 투자팀은 외근 업무가 많아 랩탑을 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했고, 외국에 있는 창업가들이나 스타트업들과 줌 미팅을 많이 해와서 적응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죠. 처음엔 여기저기서 품앗이하듯이 정보를 가져와서 적용했어요. 기존에 오프라인으로 진행해왔던 투자 관련 세미나나 컨퍼런스를 온라인으로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해서 더욱 빨리 적응해야 했죠. 이제는 꼭 사무실로 모이지 않고 집에서만 일해도 될 정도로 익숙해졌고, 업무용 캘린더에 일정을 다 기록하고 공유하니까 어디서 어떻게 일하든 서로 신경 쓰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리모트 워크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더 유연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주변에 리모트 워크를 지속하시는 분들을 보면 적응 후에 편리와 효율이 극대화된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의 근무 방식으로는 못 돌아가겠다고요.
일을 진행하는 데에 효율성은 있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교감이 없다는 한계는 있죠. 화면을 통해 이야기하면 일대일이라고 해도 피상적인 이야기만 나누게 되더라고요.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안부를 묻더라도 정말 내 감정 상태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의례적인 인사처럼 느껴져요. 깊은 생각이나 속마음을 공유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때에도 확실히 전달이 안 되고 거리감이 있는 것 같고요.
효율로 채워지는 대신 정서적으로 빈자리가 생겨나는군요. 리모트 워크 중에 구성원 간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화상으로 진행하는 주간 미팅에서 서로의 상황을 가볍게 공유하는 ‘온도 체크'라는 걸 해요. 전에 사무실에서 일할 때에는 자리에서도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상황을 스며들듯 알 수 있었지만, 리모트 워크를 하면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일하고, 화상으로만 만나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고 상황을 파악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느껴서 정기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실제 공간에서 만나는 경험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긴 힘든 것 같아요. 실제로 마주 앉아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면 갑자기 확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이런 맥락에서 전에는 회식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코로나 영향으로 회식을 못하니 틈날 때마다 일대일로 얘기할 자리를 만들고 있어요. 사무실에서 주로 근무하는 관리팀 리더 분과 정기적으로 식사하며 일하는 방식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요.
카카오벤처스가 참여했던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에서 “리모트워크가 익숙해지더라도 사람들은 창조적 마찰을 일으키기 위해 다시 사무실로 모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직접 만나야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그를 통해 튀어나오는 아이디어가 있으니까요.
직접 만나면 톡톡 튀는 스파크 같은 시너지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내기 쉬운 것 같아요. 화면 너머로 대화할 때보다 내용이나 상황이 기억에 잘 남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구성원들 대부분이 백신 접종을 완료해서, 사무실에 나가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요. 전체 회식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인원을 나눠서 미니 회식을 진행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단순 친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좀 더 편안한 관계일 때, 그리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상상력이 더 잘 튀어나오니까요. 결국 생산성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좀 더 편안한 관계일 때, 그리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상상력이 더 잘 튀어나오니까요.
결국 생산성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카카오벤처스 팀원들의 워케이션 이야기,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