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ia Jan 22. 2020

굳이 그리고 감히

[쉼표에서 발견한 것들] 10. 더 깊고 높은 곳으로, 마추픽추

발밑으로 나는 새들을 보며 고도를 실감했다. 태양과 가까워지기 위해 더 높고 신성한 곳을 찾으려 했던 잉카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더 깊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종교가 없는 입장에서 신앙의 대상과 가까워지고 싶은 소망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나 역시 이곳에 발을 디디기까지 그들과 마찬가지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로 지독한 감기 때문에.


마추픽추가 오랜 시간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태양의 도시, 잃어버린 도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마추픽추를 수식하는 말들은 참 많다. 해발 2437m인 이곳은 산 아래에서는 그 존재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공중에서만 볼 수 있어 '공중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단다. 사실 쿠스코(3399m)의 고도보다 낮지만, 워낙 험준한 곳에 있어 체감 고도는 더 높게 다가온다. 이런 지리적 특성 덕에 마추픽추는 오랜 시간 잘 보존될 수 있었단다. 스페인 원정군이 '굳이' 그리고 '감히' 쳐들어올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잉카인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버렸다. 이동에 짐이 된다는 이유로 여자와 어린이들을 죄다 생매장해 버린 .


최초 발견 당시의 마추픽추(좌)와 발견자인 하이럼 빙엄(우). 하지만 빙엄이 최초 발견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namuwiki


마추픽추는 페루인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가


트레킹 프로그램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마추픽추 방문을 원하는 사람은 100이면 100 다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바로 페루레일과 잉카레일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것과 달리   회사는 모두 외국자본 소유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은 페루를, 페루인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할까. 여기에 입장료 수입이 어마어마한 마추픽추는 효자라고 불릴 정도로 페루의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데, 실제 국민들은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두 회사의 독과점 체제다 보니 기차 이용요금은 비쌀 수밖에 없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초입인 아구아스깔리엔떼스까지 페루레일의 왕복 요금은 한화로 약 20만 원 정도다. 잉카레일은 몇만 원 정도 저렴하지만, 이 역시 배낭여행자에게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잉카레일(좌)와 페루레일(우). 모두 외국자본 소유다. 우리 일행은 잉카레일을 이용했는데, 운 좋게도 프로모션 기간이라 티켓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비싼 요금 덕인지 간식과 식사도 나온다. 페루 옥수수를 먹는 나. 알갱이가 엄지손톱보다도 크다. (그나저나 감기 때문에 몰골이 말이 아니네.)


순환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로 오르는 길. 길은 듣던 대로 매우 험했다. 무엇보다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데도 길에는 안전대 하나 없었다. 기사는 마치 곡예 하듯이 운전을 했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차를 맞이할 땐 심장이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사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페루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마추픽추의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필요할 경우에는 마추픽추 내 주요 유적지의 출입도 금지한다고. 그런데도 훼손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을 향하는지  법도 하다. 내가 갔을 때도 오전 9시 남짓의 이른 시각이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이 입장을 했거나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입성. 사람이 잘 나오지 않는 포인트를 찾았다고 좋아했는데, 찍고보니 저 아래에 관광객이 가득하더라.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던


비가 많이 와도 물웅덩이 하나 생기지 않게 만든 수로라든가,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 않는 정교한 건축/조각술이라든가, 산바람을 활용해 만든 음식저장고라든가, 자연석으로 만든 나침반과 해시계라든가. 마추픽추에 관해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많았다. 하지만 막상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상하게 그곳에  있는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굳이, 감히 내가 이곳에 발을 디뎌도 되는 걸까. '이게 뭐고, 저게 뭐고'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살필 정신이 아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을 담기에도 바빴다. 날씨까지 비현실적으로 나를 도왔다. 입장하자마자 구름이 걷혔고, 돌아보고 나오자마자 엄청난 굵기의 빗줄기가 쏟아졌다. 뒤늦게 입장하신 분들께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마추픽추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여행기에 담지 않기로 했다. 조금만 검색해도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사방이 낭떠러지다. 어떻게 이곳에 도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마추픽추 안에 서식 중인 라마. 화나면 침을 뱉는다. 사진 찍는데 괜히 조마조마.


버킷리스트는 가벼워졌지만(성취한 한 가지가 빠졌으니까!), 쌀쌀한 날씨 탓에 감기는 더 심해졌다. 다음날 쿠스코로 돌아오며 성스러운 계곡 투어(우루밤바 강을 따라 모여있는 잉카 유적지 탐방)를 했는데, 내내 골골거렸다. 택시 창가로 쏟아지는 햇볕에 축 처진 몸을 맡기고 졸았다 깨기를 반복했다. 보송보송, 몸아 어서 가벼워져라.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인 '오얀따이땀보'. 스페인군에 대항한 마지막 격전지다. 이 마을에서는, 잉카시대 때 만들었던 관개수로와 하수도가 아직도 사용 중이란다.
해발 3500m에 있는 계단식 경작지 '모라이'. 과거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감자, 옥수수 등의 품종을 개량했다고 한다. 즉, 모라이는 농업기술연구단지인 셈이다.
모라이 근처에서 만난 귀여운 아가!
산 속의 염전 '살리네라스'. 오래 전 바다였던 지형이 융기하면서 생긴 곳이다. 약 2000여 개의 계단식 염전이 있다. 건기에는 저 황토색 웅덩이가 하얀 소금으로 가득찬다고.
친체로 텍스타일 마켓. 친체로는 안데스 전통 직물 공예로 유명하다. 여기서 숄을 하나 샀다. 100% 알파카 털로 만들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전 10화 여행은 삶을 닮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