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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Jun 15. 2020

4000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쉼표에서 발견한 것들] 17. 칠레 아타카마,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남미 여행을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고 또 자주 사용했다. 칠레의 첫 여행지인 아타카마 사막에도 이 수식어가 붙는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타카마에서는 콧물에 피가 섞여 나왔고, 가뭄을 만난 땅처럼 피부가 쩍쩍 갈라졌다. 바람이 불면 어디선가 날아온 모래와 먼지가 온몸을 감쌌고, 수시로 마른기침이 나왔다.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유명하다. 약 400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한다.


빈국과 부국을 가르는,


우유니에서 아타카마까지는 무려 1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칠레 입국심사는 듣던 대로 엄격했다. 버스에서 짐을 가지고 내려서 소지한 모든 물건을 검사받아야 했다. 이상하다 싶은 물품은 칠레로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묘하게 느슨한 부분도 있었다. 입국사무소 직원들은 여행자인 우리의 짐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슬쩍 들춰볼 뿐이었다. 하지만 볼리비아 국적을 가진 이들의 짐은 아주 샅샅이 살폈다. 마치 '걸리기만 해 봐라'라는 느낌이었다. 중남미에서 보기 드물게 잘 사는 나라 칠레와 그 반대인 볼리비아. 빈국과 부국의 국경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마음이 씁쓸해졌다.


새벽 출발이라 식사를 하지 못해서 출발하기 전에 엠빠나다를 샀다. 엠빠나다는 밀가루 반죽 속에 야채나 고기를 넣고 구운 요리다.
칠레 입국신고서.
칠레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검사받아야 한다. 줄지어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짐들.
아타카마로 가는 길. 사방이 황무지다.


캐리어 바퀴가 덜컹, 마음도 삐걱


아타카마에 도착하자마자 모래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방을 구하기 위해 동행 친구들과 두어 군데 들렀지만, 대부분 만실이었다. 만실이 아닌 곳은 요금이 비싸거나 시설이 낙후했다. 친구들은 몇 군데 더 둘러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얼른 씻고 침대에 눕고 싶었다. 배낭만 메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캐리어까지 끌어야 했는데, 하필 아타카마 시내의 길은 자갈 천지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캐리어 바퀴가 덜컹거렸다. 덩달아 마음마저 삐걱거렸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더 보겠다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동행을 마음먹었을 때는 '친구들 의견에 잘 맞춰야지'라는 생각뿐이었는데, 힘들고 지치니까 이기적인 마음부터 튀어나온다. 다행히 티를 내지는 않았다. 표정이 거짓말을 못 하는 지라 동행 친구들이 눈치챘을 지는 모르겠다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에어비앤비로 2층 침대 두 개와 더블 침대 한 개가 있는 방 하나를 빌렸다.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아타카마의 밤.
좋아하는 음식이고 가장 만만하기도 해서 '뽀요'(pollo, 닭)요리를 자주 먹었다. 아타카마에 도착한 첫날에도 닭을 먹었더라지. 하도 먹어서 머리에 닭볏이 돋을 것 같았다.


아타카마에서는 여행사를 통해 도시 관광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남자 둘 여자 둘. 동행 인원이 넷이나 되다 보니 여행 취향도 네 갈래로 나뉘었다. 가고 싶은 여행지가 같아도 수단에 따라 갈래가 또 나뉘었다. 예컨대 똑같이 달의 계곡에 가는데도 C와 S는 자전거를, H와 나는 버스를 이용했다. 갈래가 많다 보니까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졌다. 3박 4일 동안 우리는 매일 각자의 여행 후기를 나누며 깔깔거렸다.


감기와 이별하니 위염과 장염이 찾아왔다


나는 달의 계곡과 알티플라노 호수 투어를 선택했다. 달의 계곡은 라파스에 있는 동명의 그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다기에 선택했고, 알티플라노 호수 투어는 순전히 플라밍고(홍학)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가보기로 했다.


달의 계곡 가는 길. 습곡 작용으로 휘어있는 지층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암석이 아니라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달의 계곡에서는 풀 한 포기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진흙으로 이뤄진 진기한 지형 사이사이를 누볐다.
라파스 '달의 계곡'보다 확실히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칠레 소녀 클라우디아. 7일 일하고 7일 쉬는 아버지와 함께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닌단다. 여행 때는 쿨하게 학교도 가지 않는다고. 1년 내내 쉼 없이 일하시는 아빠가 떠올랐다.
 '성모마리아와 세 명의 성녀들'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술에 취한 관광객이 일부를 훼손했다고.
피에드라 델 코요테(Piedra del Coyote). 노을이 참 아름다웠다.


알티플라노 호수 투어 당일, 눈을 떴는데 위가 살살 아팠다. 비상약을 챙겨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투어를 포기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라는 아쉬움이 고민을 거두었다. 오후 2시쯤 투어가 끝나니까 조금만 견뎌보기로 했다. 하지만 플라밍고만 겨우 보고, 나머지 코스에서는 버스에서 계속 시름시름 앓았다. 이때 걸린 위염과 장염 콤보는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나를 괴롭혔다. 나아지려다가도 다시 심해지길 반복했다. 그런데도 나는 귀국하자마자 그 자극적인 육개장과 쌀밥부터 찾았다.


투어 중간에 작은 마을에 들렀다. 아기자기하고 예뻤는데,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게 함정. 알파카도 만났다!
라구나 착사(Laguna Chaxa). 하얀 것은 모두 소금이다. 이곳에는 세 종류의 플라밍고가 서식한다. 사방이 소금이지만, 플라밍고가 소금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라구나 미스칸티(Laguna Miscanti). 아파서 제대로 본 기억이 없는데, 용케 사진을 찍었구나. 미스칸티 호수 주변의 화산은 현재도 활동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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