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에서 발견한 것들] 17. 칠레 아타카마,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남미 여행을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고 또 자주 사용했다. 칠레의 첫 여행지인 아타카마 사막에도 이 수식어가 붙는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타카마에서는 콧물에 피가 섞여 나왔고, 가뭄을 만난 땅처럼 피부가 쩍쩍 갈라졌다. 바람이 불면 어디선가 날아온 모래와 먼지가 온몸을 감쌌고, 수시로 마른기침이 나왔다.
우유니에서 아타카마까지는 무려 1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칠레 입국심사는 듣던 대로 엄격했다. 버스에서 짐을 가지고 내려서 소지한 모든 물건을 검사받아야 했다. 이상하다 싶은 물품은 칠레로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묘하게 느슨한 부분도 있었다. 입국사무소 직원들은 여행자인 우리의 짐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슬쩍 들춰볼 뿐이었다. 하지만 볼리비아 국적을 가진 이들의 짐은 아주 샅샅이 살폈다. 마치 '걸리기만 해 봐라'라는 느낌이었다. 중남미에서 보기 드물게 잘 사는 나라 칠레와 그 반대인 볼리비아. 빈국과 부국의 국경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마음이 씁쓸해졌다.
아타카마에 도착하자마자 모래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방을 구하기 위해 동행 친구들과 두어 군데 들렀지만, 대부분 만실이었다. 만실이 아닌 곳은 요금이 비싸거나 시설이 낙후했다. 친구들은 몇 군데 더 둘러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얼른 씻고 침대에 눕고 싶었다. 배낭만 메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캐리어까지 끌어야 했는데, 하필 아타카마 시내의 길은 자갈 천지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캐리어 바퀴가 덜컹거렸다. 덩달아 마음마저 삐걱거렸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더 보겠다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동행을 마음먹었을 때는 '친구들 의견에 잘 맞춰야지'라는 생각뿐이었는데, 힘들고 지치니까 이기적인 마음부터 튀어나온다. 다행히 티를 내지는 않았다. 표정이 거짓말을 못 하는 지라 동행 친구들이 눈치챘을 지는 모르겠다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에어비앤비로 2층 침대 두 개와 더블 침대 한 개가 있는 방 하나를 빌렸다.
아타카마에서는 여행사를 통해 도시 관광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남자 둘 여자 둘. 동행 인원이 넷이나 되다 보니 여행 취향도 네 갈래로 나뉘었다. 가고 싶은 여행지가 같아도 수단에 따라 갈래가 또 나뉘었다. 예컨대 똑같이 달의 계곡에 가는데도 C와 S는 자전거를, H와 나는 버스를 이용했다. 갈래가 많다 보니까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졌다. 3박 4일 동안 우리는 매일 각자의 여행 후기를 나누며 깔깔거렸다.
나는 달의 계곡과 알티플라노 호수 투어를 선택했다. 달의 계곡은 라파스에 있는 동명의 그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다기에 선택했고, 알티플라노 호수 투어는 순전히 플라밍고(홍학)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가보기로 했다.
알티플라노 호수 투어 당일, 눈을 떴는데 위가 살살 아팠다. 비상약을 챙겨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투어를 포기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라는 아쉬움이 고민을 거두었다. 오후 2시쯤 투어가 끝나니까 조금만 견뎌보기로 했다. 하지만 플라밍고만 겨우 보고, 나머지 코스에서는 버스에서 계속 시름시름 앓았다. 이때 걸린 위염과 장염 콤보는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나를 괴롭혔다. 나아지려다가도 다시 심해지길 반복했다. 그런데도 나는 귀국하자마자 그 자극적인 육개장과 쌀밥부터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