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에서 발견한 것들] 16.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자아성찰한 사연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딜 때마다 여행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우유니에서는 '일상과 마주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세계 최대의 소금 사막,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거짓말 조금 보태서) 볼리비아에 오는 99%의 여행객이 거쳐 간다는 그곳. 바로 우유니 소금사막. 나 역시 우유니가 아니었다면 여행지 목록에서 볼리비아를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우유니에서는 세 밤을 보냈다. 다른 곳에 비해 숙박비가 조금 비쌌지만 방마다 가스난로가 있는 숙소를 선택했다. 오래된 난로라서 켜는데 여러 번 애를 먹었지만 이마저도 감지덕지했다.
우유니 시내는 관광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규모가 작고 분위기 또한 조용한 편이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는 많지만 음식점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소금사막만 휙 둘러보고 떠나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는 이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현지인들의 생활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다른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소금사막이 우유니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투어는 기간(당일에서 최대 2박 3일)과 종류('데이+선셋', '선셋+스타라이트', '스타라이트+선라이즈' 등)가 나뉘어 있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나는 3일 동안 '데이+선셋'을 한 번, 그리고 '선셋+스타라이트'를 두 번 참여했다. '스타라이트+선라이즈'에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새벽까지 있으면 발이 어는 듯한 추위가 찾아온다고 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미리 다녀온 이들의 말에 따르면, 투어는 소위 가이드발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도 가이드에 따라 걸작과 망작으로 나누어진단다. 나와 동행 친구들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오아시스 여행사를 이용했다. 사진 촬영(구도 등)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을 테니 어떤 가이드를 만나도 중간 이상은 할 것 같았다. 이런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데이+선셋'을 함께했던 가이드는 대타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진을 못 찍었다. 하지만 '선셋+스타라이트'를 함께했던 가이드 아리엘은 내 DSLR을 주인인 나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다뤘다.
아리엘은 영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 수업이 없을 때 짬을 내서 아르바이트로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오아시스여행사에서 최고 인기 가이드인 빅토르의 처남이었다. 아리엘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던 터라 그에게 매형과 본인 중 누가 더 인기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매우 센스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글쎄. 매형은 가이드 한 지 2년이 넘었고, 나는 7개월밖에 안 됐어. 비교할 게 못 되지. 하지만 나와 함께 오는 분들은 내가 더 좋다고 하더라고."
아리엘은 지나칠 정도로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왜 많은 이가 그를 칭찬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 사람들을 같은 코스로 안내하고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다 보면 지루하지 않을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쉽게 싫증을 느끼고 가끔은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리엘은 우리에게 최고의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단 한 번뿐인 특별한 순간이기에.
아리엘의 일상 속에서 나의 일상을 마주했다. 매일 같아 보이는 나의 지겨운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구나. 나는 내 일상에 뛰어든 이들에게 의미있는 기억을 선사했을까. 그리고 선사할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확신할 수 없었다. 대신 아리엘에게 20볼의 팁을 쥐여주며 '그라시아스!'(Gracias,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