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나를 책임진다는 것

by 미니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자본을 가지지 않은 노예 같은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노동을 팔아 돈을 벌고 생계를 이어나가야 한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이 말이 와 닿지 않았고, 인식조차 못했다. 그러다가 삼수가 끝나고 부모님 눈치가 보여 어쨌거나 집에 있지 말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했었다. 세이브존 식품관 캐셔로 일을 하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힘들었다. 하루 9시간 정도 서있어야 하고, 차라리 육체만 힘들었으면 더 낫지 진상 손님(이라고 쓰고 손놈이라고 읽는다)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나도 알바는 처음이었던지라 융통성 없게 원칙을 내세우며 일하다가 괜히 욕만 더럽게 먹고, 내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잡아당기면서 컴플레인 걸 거라며 큰소리를 치는 손놈도 있었고, 돈을 던져서 주는 건 예삿일이었다. 심지어 자기한테 왜 포인트카드 있냐고 먼저 안물어보냐고 정색하고 따지던 손놈도 있었다.

한 달 풀타임으로 일하면 100만 원이 조금 덜 되는 돈을 받았다. 일을 하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구나'싶었다. 그렇게 3개월을 일했다. 그땐 그렇게 힘들었어도 그냥 '힘들다'라는 생각에서만 그쳤던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전환점은 내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답시고 휴학했던 작년 여름이다. 그때부터 일체 용돈도 받지 않았고 한 나라에 살러 가는 것이니 돈도 모아야 했다. 시간 대비 시급이 높은 꿀알바를 꼭 구해야 했었는데, 운 좋게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일한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직장인'에 대한 내 생각은 처절하게 깨졌다.


회사는 내 생각보다 치열했다. 여기서 치열하다는 의미는 사람들이 매우 열심히 일을 한다거나, 엄청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거나, 거창한 회의를 매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하고, 권위적인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제도에 순응하고, 책상 한편에 꽂혀있는 아기 사진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을 참고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게 '치열하다'의 정확한 의미이다.


우리 아빠도 저렇게 살았겠지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도 저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숨 막히게 다가왔다. 싫은걸 싫다 말하지 못하고, 불합리에 정의롭게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뭐든지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이상한 긍정주의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직장인이 되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가 번 돈으로 옷을 사고, 밥을 해먹고, 저축을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나 자신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저렇게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행동인지 미처 몰랐다. 나의 감정을 죽이고, 정의를 죽이고, 진심을 죽여야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 이후로는 직장에 가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한 개의 인생을 책임지는구나, 혹은 네 개의 인생을 책임지는구나 하고 혼자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때, 고등학생일 땐 내 20대가 정말 화려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교를 가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되고 싶은 직업을 가진 멋있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냥 행복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책임들을 꿰뚫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선택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불러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사실 인생에 그렇게 화려한 건 없는 건데 말이다.

그저 하루하루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란 걸.

사는 게 그런 거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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