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유, 그리고 알 수 없는....
꼬박 열 달.
엄마의 뱃속에서 누렸던 그 따스한 품이 문득 그리워진다.
40주의 긴 기다림 속에서, 모성의 바다에 아이를 품고 오직 그 웃음을 보고 싶어 애타하던 나날들.
행복하고도 귀한 시간 끝에, 지금 내 곁에는 세 남매라는 세상에 하나뿐인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다.
순간마다 감사와 행복을 건네주는 아이들. 그들이 내게 주는 기쁨은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다.
그러나 2019년, 나는 다발성 자궁근종으로 자궁을 적출해야 했다. 난소만은 남겨두었지만, 생명의 집은 결국 떠나보내야 했다.
수술대 위에 눕던 순간, 한쪽 가슴이 툭 꺾이는 듯한 상실감이 몰려와 마음은 작은 어둠에 잠겼다.
처음 찾은 동네 병원에서 의사가 내뱉은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제 아이도 다 낳았잖아요. 필요 없으니 그냥 떼어내면 되죠.”.. 안심시키려는 배려의 말이었을까? … 무심히 툭 던져진 그의 말이 더 당황스러웠다.
차가운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그 말이, 내 존재 일부를 가볍게 잘라내는 듯 아프게 다가왔다.
결국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일주일간의 입원, 그리고 수술 직후 찾아온 과다 출혈.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눈을 꼭 감았던 순간, 남편의 얼굴에는 아찔한 공포가 어린 채 새겨졌다.
아직도 그는 그날의 붉은 흔적을 입 밖에 꺼리길 주저한다. 악몽처럼 선연한 그 장면은, 사랑하는 이를
지켜야 했던 남편의 가슴속 깊은 상흔으로 남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특별한 아이’라 여겼다. 남들과는 다른 존재, 무엇을 해도 잘될 것만 같은
운명을 지녔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월은 그렇게 단호하게 속삭였다.
' 그건 네 생각일 뿐이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가정을 꾸리면서도, 나는 여전히 ‘특별한 나’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아이들 또한 남다르고 귀한 존재여야만 했다. 하지만 삶은 내게 차츰 가르쳐 주었다.
특별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임을.
자궁근종은 오래전부터 내 그림자였다. 처녀 시절부터 깊은 생리통으로 고통을 주었고, 결혼 뒤 한때는 잦아들었으나 결국 다시 고개를 들었다. 둘째와 셋째는 예정일보다 일찍 세상에 나왔다.
둘째는 32주, 셋째는 28주.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안에 갇힌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죄책감과 불안이 가슴을 짓눌렀다.
특히 막내는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187센티미터의 건강한 청년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다만 중학교 시절, 무릎 관절 탈구로 수술을 받았고 최근에는 재발로 재수술을 고민하고 있다.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안함이 고개를 든다.
‘내가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 탓일까.’
끝내 버릴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옥죈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다.
아이의 선한 마음, 꿋꿋한 성정, 그리고 여전히 빛나는 미래를.
꽉 찬 달을 품고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나에겐 크나큰 행운이자 축복이다.
무탈하게 자라주고, 환하게 웃어주며, 내 키를 훌쩍 넘어선 아이들을 바라볼 때, 이보다 더한 행복이 세상에 있을까 생각하고 안도하며 그저 웃는다.
만약, 떠나버린 나의 아름다운 자궁을 다시 찾는다면? 고민 안 코, 귀여운 녀석 하나 더 낳고 싶다.
누나, 형보다 더 아름답고 더 명석한 두뇌, 건장한 피지컬에... 아니!! 그저 평범해도 건강한 나의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