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편, 나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선 ‘자기만의 방’과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고. 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는 거실 구석 식탁 한쪽에서 노트북을 펴고, 울프의 말을 다시 생각한다. 그때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어떤 부분은 여전히 그대로다.


나는 주부다. 그리고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다. 별도의 서재는 없다. 때로는 식탁 위, 때로는 아이들 책상 옆, 설거지를 마친 후 조용한 주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문장 하나를 떠올리기 위해 양파를 볶다 말고 핸드폰 메모장을 켠 적도 있다. 울프라면 이 광경을 보고 어떤 말을 했을까? 아마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 참 잘하고 있군요.”


나는 ‘공간’보다 더 귀한 걸 배웠다. 글을 쓰겠다는 의지, 삶과 예술 사이를 헤엄치듯 오가는 탄력. 그리고 ‘시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매일의 수수께끼.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몰입의 깊이를 잴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안다. 가능하다는 걸.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깊이 빠져든 날에는 찬밥이 되어버린 밥솥을 보고 난감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책임 없는 창작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책임 속에서도 글을 쓴다.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면서도 머릿속 어딘가에선 문장이 빚어진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한 시간 사이, 혹은 새벽의 고요 속에서. 그래서 어쩌면 내 방은 ‘물리적인 방’이 아니라, 시간을 조율해 만든 ‘틈’ 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딜레마는 여전하다. 더 많은 시간, 더 오롯한 집중을 원하지만, 동시에 가족과의 따뜻한 삶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예술은 완벽한 환경이 아닌, 결핍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쓴다. 밥 짓고, 청소하고, 쓰고, 또 쓴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방은 아마도 물리적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존중받는 시간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나의 거실, 부엌, 침실 한편은 지금 이 순간 ‘자기만의 방’이 된다. 단지 문을 닫을 수 없을 뿐이다.



하지만 문을 닫을 수 없는 이 삶이, 나는 꽤 마음에 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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