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의 깊이
어린 시절의 나는 작고 가냘픈 어깨를 가진, 깡마르고 여린 아이였다.
사람들은 나를 '예쁜이'라 부르며 살갑게 쓰다듬곤 했다.
온 집안에서 유일한 손녀딸로 친할아버지의 사랑을 누구보다 듬뿍 받았다.
그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하마터면 내 이름이 ‘미녀’가 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피식 웃음이 난다.
결국, '우리 집안에 핀 유일한 꽃'이라며 붙여진 지금의 이름 역시, 그 애틋한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정작 나는 그 이름조차도 왠지 모르게 낯설고, 어쩐지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 이름에 담긴 기대와 기쁨의 무게를 어린 마음에 다 담아내기엔 벅찼던 걸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사랑받는 존재로, 집안의 꽃으로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따스하게 다가온다.
한 줌 햇살에도 눈부시게 웃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마음 한 켠이 포근해진다.
아버지는 내가 닳아 없어질까 봐 하루 종일 안고 업고 다니셨다고 했다.
지금도 친정집 낡은 사진첩 속, 빛이 바랜 사진 한 장이 유독 눈에 밟힌다.
포항 큰 이모 댁 앞 바닷가 주황빛 진주 목걸이를 걸고 팬티만 입은 채 아버지 손을 꼭 잡고 환히 웃고 있는 나. 그 옆에서 웃고 계신 아버지.
엄마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이야기하신다.
“이때 네 아버지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너 바다 한복판으로 둥둥 떠내려갔잖니. 큰일 날 뻔했지. 그때 네 양갈래 머리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어서 다행히 금방 찾았어.
그때 너를 놓쳐 못 찾았더라면, 지금의 너는 없었을 거야.”
그 말과 함께 엄마는 두 손 가득 내 얼굴을 감싸며 오래 전의 두려움을 어루만지신다.
나는 그저 웃는다. 그땐 고작 네다섯 살이었으니 기억이 날 리 없다.
어쩌다 그 작고 고사리 같은 손을 놓쳤을까.
아버지는 그때 얼마나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셨을까.
아마도 어른들 물놀이하는 사이 난 사촌언니들과 어울리다 물길에 휩쓸린 것이겠지.
다행히 얕은 바다가였기에 금세 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아버지 품에 안겼다.
중학교 때, “여학생은 우산 하나쯤은 예쁘게 써야지” 하시며 사주신 파란 바탕에 잔꽃무늬 우산.
입학 선물로 주셨던 파란 만년필과, 내가 좋아하던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향기 나는 인형 목걸이.
우산과 만년필은 세월에 닳아 사라졌지만, 그 목걸이만큼은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에 보라색 띠.
흰 블라우스 위로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작은 그 인형은 지금도 내 추억 속을 향기롭게 채운다.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문득 눈물이 터질 때가 있다.
아마도 그건, 아버지를 그리워해서일 것이다.
나는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효녀는 아니었다.
갖지 못한 물건엔 짜증을 내고, 떼를 쓰며 울고불고 속을 썩이던 못된 딸.
그럴 때마다 매 한 번 들지 않으시고, 늘 웃으시며 내 편이 되어주셨던 아버지.
오빠와 남동생이 있어도 늘 “내 딸이 최고지” 하시며 나를 1순위로 여겨주셨다.
그건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분명했다.
비린 생선을 싫어하는 오빠와 동생 덕분에,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회와 게장무침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게장의 진한 내장을 따로 모아 작은 종지에 담아 “우리 딸 먹으라” 내어주시던 그 손길. 입맛도, 식성도 아버지를 닮은 나는 늘 아버지 곁에 찰싹 붙어 앉아 얻어먹으며 행복을 누렸다. 지금도 친정엄마는 아버지 생각이 나면 생선 매운탕을 끓이고, 그 비법 게장무침을 정성스레 담가 내게 먹이고 싸주신다.
그렇게 아버지의 입맛과 마음은 지금도 나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2021년 6월, 아버지는 급성 폐색전증으로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하지만 문득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아직도 눈물을 참지 못한다.
유난히도 나를 아껴주셨던 분. 마지막 임종을 지켜드렸던 탓일까, 생의 끝자락에 마주한 아버지의 앙상한 발이 자꾸 떠오른다. 거칠어진 발을 부끄러워하며 이불속에 재빨리 감추시던 아버지. 그 발을 조심스레 쓰다듬고서 가방 속 핸드크림을 꺼내 발라드렸던 그날의 기억이 내 마음 깊이 남아 있다.
밥맛 없는 나를 안쓰러워하시며, 당신 밥을 덜어 국에 말아 내밀던 그 손길이 그립다.
그 작은 손, 그 따스한 눈빛이 그리워 가슴이 미어진다.
너무 미안해서, 너무 보고 싶어서.
계셨을 땐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미숙한 딸이었다.
그땐, 늘 내 곁에 계실 줄만 알았고, 어리광을 멈추지 못했던 철없는 딸.
남들에겐 애쓰면서, 정작 아버지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고운 손길 하나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그리움은 시간이 흐른다고 옅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어쩌면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이라, 울고 싶을 땐 망설임 없이 눈물을 흘린다.
가슴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아주 서럽게, 아주 솔직하게.
4년이 지난 지금도 납골당 앞에 서면, 나는 여전히 눈물을 참지 못한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고, 그 자리가 내 삶의 생기를 잃게 만들 줄 그땐 몰랐다.
남편은 어느 날,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한다.
“내가 죽으면… 우리 딸들도 당신처럼 날 기억하며 이렇게 울어줄까?
당신은 정말 효녀야. 효녀 맞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말없이 웃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문득 되묻게 된다.
정말 그럴까…
지금처럼 아버지를 떠올리며, 뒤늦게 울고불고 가슴을 치는 나의 모습이 과연 ‘효녀’라 불릴 수 있을까.
살아계실 땐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과 손길이, 이렇게 뒤늦은 눈물로만 남아 흐르고 있는데…
생의 유한함을 알고 있었다고 믿었지만, 이별의 아픔은 그 어떤 예감도 무력하게 만든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내 눈물샘은 여전히 무너진다.
끝내 울게 만드는 나의 아버지.
내 든든한 배경이자, 내 처음이자 끝인 아버지.
아버지를 잃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랑의 크기.
그리움으로 젖은 마음을 안고, 나는 조심스레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본다.
어쩌면 이 끝없는 눈물이야말로,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늦은 효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