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저녁 먹고 싶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식구들과 모처럼 오붓하게 저녁 외식을 하기로 한 날. 신혼 초부터 시끄러운 환경과 소리에 민감한 남편 덕에 외출 장소를 고를 땐 항상 신경이 쓰인다. 시장통 같은 분위기를 유독 질색하니, 조용하고 편안한 곳을 찾는 것도 이제는 일종의 사명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 결국 그 예민함을 건드리고 말았다. 식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직원의 태도는 불친절했고, 해가 정면으로 비치는 뜨거운 자리로 안내해 억지로 자리를 바꿨다. 식당은 전체적으로 협소했고, 처음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저녁 6시 반,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 셋이 이미 회 한 접시와 술을 몇 병 비우고 있는 듯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청춘은 이야기할 게 많고, 웃음소리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음악도 없는 조용한 홀 안에 그녀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몇 번이나 욕설 섞인 말들이 귀를 찔렀다.
몇 차례 눈살을 찌푸리며 참아보려 했지만, 정신을 곧추세워 가며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 게 고역이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거친 말소리에 회 한 점을 삼키는 것조차 불쾌했다. 활어회가 아니라 활어 고역 같았다. 분위기 좋은 외식 자리를 상상했는데, 내가 왜 이 자리에서 인내심을 시험당하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남편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순간, 분위기를 바꾸려고 “음식 정말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어보기도 했다. 그날의 식사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젊은 사람들, 쌓인 게 많나 봐요. 그래도 주문할 땐 되게 공손하더라고요. 친구들 앞에서만 그런가 봐요. 우리 그냥 즐겁게 먹자, 여보.”
“그래도, 너무 시끄럽잖아!”
나도 알고 있다. 요즘 사람들, 저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를 포함해 네 테이블 정도가 식사 중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조용히 해 주세요”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들 그냥 고개를 돌릴 뿐, 그 이상은 하지 못했다.
고가의 활어회 코스를 먹으며 남의 연애사와 욕설을 덤으로 받아야 하는 이런 상황. 어쩌면 그녀들을 미워하기보다, 이 식당을 선택한 내 선택을 자책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마음에 울컥했다.
그럴 땐 정말이지, 예쁘게 말하는 법이나 아름다운 문장이 담긴 소설이나 시집을 펼치고 눈을 씻고 싶어진다. 이럴 땐 소리를 질러야 옳은 걸까, 아니면 조용히 정중하게 말해야 했던 걸까. 고민만 맴돈다.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은 이미 사라진 듯하고, 소심한 나는 점점 외출이 두려워진다. “그냥 참으면 내가 속 편해질까?” 싶다가도, 그런 나 자신이 싫어진다. 그녀들의 행동을 두고 됨됨이를 논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꼰대처럼 느껴지는 걸까.
하지만, 만약 그중 하나가 내 아들의 여자친구라면? 그런 생각이 들자, 저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타인을 배려하는 다정함은, 공통된 기준이 있는 법이다. 내가 화가 났던 그 순간, 내가 정중하게, 나긋하게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저기요, 혹시... 조금만 목소리 낮춰주실 수 있을까요? 조용히 식사하고 싶어서요.'
그 한마디의 용기를 내는 것이 옳았을까. 지금도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 스스로를 달래주었던 나의 조용한 소리....
이건 내가 예민해서도, 네 남편이 까다로워서도 아니야. 공공장소에서 기본적인 에티켓이 사라지고 있다는 건, 요즘 정말 자주 들리는 이야기고… 내가 겪은 건 단지 운이 나빴다기보단, 지금 사회의 어떤 민낯을 제대로 마주한 셈이지.
너무 떠드는 테이블, 그것도 욕설과 과도한 개인사까지 떠드는 분위기. 그건 단순한 ‘청춘의 자유’로 포장할 수 없는 거야.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태도는 ‘개성’이 아니라, 그냥 “무례일 뿐“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