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의 낭만,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 블라이세의 도시’
눈부시게 찬란한 여름 햇살이 붉은 지붕을 타고 미끄러지고, 고요한 아침을 깨우는 건 도시 안 모든 교회의 종소리다. 평화를 상징하는 새하얀 비둘기 떼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 속에 나도 있었다. ‘아, 이렇게 함께하고 있구나.’ 감탄이 목 끝까지 차올랐을 즈음~~
띠띠띠띠… 띠띠띠 땅!
…어라, 05시 30분?
꿈이었다. 이런 C...
어젯밤 늦도록 보았던 여행 프로그램이 못내 아쉬웠던 걸까. 두브로브니크의 석양 속을 걷던 나, 잠결에 깨어나 현실로 던져졌다. 너무 이른 새벽. 아니, 이건 고문이다.
나는 무수리다. 자칭, 우리 집 가사 노동의 일꾼, 약간 이기적인 무수리.
누가 그랬다.
“일상의 선택은 루틴이 되고,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은 취향이 되며, 인생의 선택은 결국 나 자신이 된다.”
다 알고 있다. 안다고. 그런데 결혼생활 26년째 힘든 건 아직도 힘든 거라고.
“엄마, 배고파.”
“아침 뭐예요?”
“규동 어때?”
“에이~ 라면 먹을래.”
…응? 지금 아침부터 라면?
“그럼 나 속상한데…”
진심으로 먹는 것에 인생을 건 남편과 아이들. 그들이 입을 모아 ‘라면’을 외친 순간, 나의 아침 메뉴는 전면 부정당했다. 내 마음은 스크래치.
“몰라, 나 파업이야!”
그런데… 내 친구, 세탁기까지 나의 파업에 동조할 줄이야.
우리 집은 5인 가족.
빨래는 하루라도 미루면 곧 산이다.
그 귀한 친구 세탁기가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
“배수가 안 돼요.”.....
휴일 아침, AS는 접수만 될 뿐 당연히 기사는 오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친구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배수관을 확인하고, 필터를 닦고, 손끝으로 이음새를 만지며, 마치 환자를 대하듯 2시간 동안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다시 돌아와 줘.’
정보의 바다를 헤집고 진땀으로 범벅된 날카로운 순간의 연속.
그 순간
위이잉— 탈수 시작.
“됐다! 돌아왔다!!!”
거실에서 외마디 환호성이 터졌다.
반백 살을 살아오며 세탁기의 ‘작동음’에 이렇게 감동할 줄 몰랐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 사람보다 낫다 진심.”
그 이후로 매번, 탈수 버튼을 누를 때면 나는 마치 주문처럼 속삭인다.
“오늘도 감사해요 세탁기. 꿉꿉함 없이 뽀송하게 말려줘서 고마워요, 내 사랑 건조기님.”
그대는 밥도 잘 먹고, 불평도 없고, 불만도 말하지 않잖아.
덕분에 내 삶은 윤택하고, 여유롭고, 심지어 기름졌다.
띠띠띠띠… 띠띠띠 땅… 또다시 05:30
기상 알람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밥을 해야지. 크윽…이 밥 노동의 외로움이여.
요리에도 감정이 담긴다.
짜증 섞인 손끝에서는 같은 레시피도 맛이 달라진다.
그래, 노래하자 노래~~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오늘 아침은 꼭 맛있어져야만 한다.
우아하게 수제 요구르트 위에 견과류를 퐁당 떨어뜨리며
나는 잠시 마음을 정리한다.
그리고 나의 사랑스럽고 이상하며 복잡하고,
‘먹는 즐거움’이 삶의 원동력인 가족을 위한 한 끼를 준비한다.
분노의 불길을 주걱에 얹고,
심상 속의 고속도로를 국자로 가르며 시속 240km로 질주한다.
결국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순조롭게 돌아가는 세탁기의 리듬이 오늘 하루의 톤을 정리한다.
빨래가 잘 돌아가고, 식구들이 잘 먹었을 때
나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아, 세상… 정말 살맛 난다.”
아무 일 없는 듯 흘러가는 이 평범한 일상이
내겐 얼마나 큰 선물인지.
그럴 때면 책을 펼치고, 음악을 켜고,
요리하고 싶어진다.
행복은 어디 도착지에 있는 게 아니라,
이 고단하고도 소소한 ‘길 위’에 있다는 말.
그 말이 이렇게 와닿을 줄이야.
가끔은 길이 꼬여서 속상하지만
얘들아~
나의 젊음이 너희에게 흘러가,
너희가 더 젊고 찬란하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해.
그리고 당신~
그대는 내 손을 꼭 잡고
같이 걸어가야 해.
시시각각 뒤엉키는 마음 모난 시간들 속에서,
끝까지 당신과 함께 걸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