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롭고, 너무나 경이로운

물기 어린 흙내음이 코끝을 간질일 때마다,

문득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걸 느낀다.

이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다.

대지로부터 피어오른 건강한 숨결,

생명을 부르는 희망의 메시지다.


뿌리를 가진 것들을 사랑한다.

자기 자리를 단단히 지키며 대지를 껴안고,

위로 쑥쑥 뻗어오르는 식물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그 생명력에 늘 마음이 움직였다.


한때는 나도 그렇게 살아가길 바랐다.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단단히 붙잡혀,

함께 뿌리내리기를 갈망했다.

흔들리지 않기를, 떠밀려가지 않기를, 끝내 이 땅

어딘가에 나를 깊이 심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 마음을 품고 먼 땅끝, 그 너머의 울림 있는 곳까지

닿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 바람들은,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이내

공기 속에 스러지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희석된 꿈들은 이름 없는 바람이 되어

사라졌고,

나는 그 자리에 조용히 멈춰 섰다.


지금, 한적한 마트의 채소 코너에 서서

나는 황금빛 뿌리들을 바라본다.

그 작은 몸 안에 수많은 수분과 영양분을 온 마음 힘껏

빨아들여, 조금씩 서서히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라났을 그들을.


나도 그러고 싶었다.

세상의 기운을 조용히 받아들여, 내 안으로

가득 채우고,

말하지 않아도, 눈부시지 않아도,

그저 있는 자리에서 단단하게 살아내고 싶었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흙냄새가 내 안에 다시 길을 열어줄 수 있기를.

어딘가에, 나를 위한 땅이 남아 있기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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