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글리치
나는 어릴 적 몽상하거나 공상적인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어린 시절 나의 상상 속에 늘 존재하였던 '외계인'의 존재는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 구석 동심의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번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 '글리치'를 내가 손꼽아 기다려 왔던 것도 그중 일환이다. 이번 시작 드라마의 소재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황당하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오히려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린 과연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실존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의미부여란 무엇인가?"라는 작가의 물음에 답을 생각 해내가면서 이번 드라마를 보면 더욱 스토리와 극 중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들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 중에 하나가 바로 '의미부여'이다.
드라마 글리치에서도 매번 매회 주인공이 겪고 있는 외계인을 보는 환각 현상 그리고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기의 오작동과 같은 미스터리한 현상에 대해 주인공 나름 의미부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의 존재와 외계인의 진짜 실존 여부에 있어서도 의미부여에 심도 있게 그림을 그려나가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중에서 그런 개연성 있을 것 같은 의미부여가 단순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계획된 것이 아닌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겨났으며, 그것에 대한 어떤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주인공이 느꼈을 때, 극도의 좌절과 절망 그리고 소위 말하는 멘털 붕괴가 극심하게 되는 것도 극의 후반 후에서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각자의 '의미부여'를 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내일을 맞이한다.
여기서 글리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린 꼭 의미부여를 하는 삶이 온전한 내 삶인가?"
글리치의 전반적인 맥락의 구심점을 잡고 있는 것이 바로 'UFO'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우연히 보게 되었던 UFO는 성인이 되어서 깊은 후유증을 만들었으며, 모든 사건의 의구심의 포인트도 결국 밤하늘에 떠있던 UFO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극 중 주인공은 믿고 추적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늘에 떠 있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고 탐구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종에 대한 기원에 대한 호기심 일지, 또 다른 존재에 대한 경외감인지, 혹은 그 미지의 대상을 대변하는 대변자로서 세상에 또 다른 영향력을 만들고 싶은 위선자에게 기회일지...
실상, UFO가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사고방식과 원천적인 호기심에 자리 잡아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누군가에게는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리치에서도 솔직히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미지의 존재를 기다리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정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외계인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선택받았고 특수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글리치의 극의 맨 후반부 주인공들과 외계인이 끝내 조우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면, 주인공이 드라마를 종결시키는 대사의 한 꼭지에 그들의 의중이 조금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철갑상어에게 GPS칩을 심어 놓는 것은 자유롭게 풀어주었을 때, 철갑상어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그 궁금해서 지켜보고 싶은 그 이유라고 말한다.
그것처럼 글리치에 나오는 외계인도 딱 철갑상어에게 우리 인간이 가지는 관심 그 정도만 가지고 다시 사라진다.
어쩌면, 결국 무엇인가 구원을 하고 세상에 큰 교리를 전달할 것이라는 큰 대의적 희망을 인간은 가지지만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큰 착각이라고 글리치는 말해주고 있다.
외계인은 권능을 주기 위해서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그저 지구라는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나아가고 그 방향성의 끝은 무엇인지 관찰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것임을 다시금 여러 클리쎄 장치들에서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의 뇌만큼 이기적인 장기기관은 없을 것이다. 최대한 상처나 고통을 받는 것을 피하는 쪽을 선택하며 기억적 트라우마가 발생하면 그 부분과 장면을 임의적으로 원천 차단하고 기억을 왜곡시켜 저장시킨다.
어쩌면, 글리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외계인이 아닌 바로 우리의 생각과 사고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작품에서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극 중에서도 서로 다른 시각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두 여자 주인공이 감정적으로 대립하면서 얼마나 우리의 사고 체계와 기억 체계가 완벽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허술하고 쉽게 변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매회차를 보면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사고는 마음과 함께 연결되어 그 구조와 잔상을 다르게 해석하고 각인효과를 만들어 서로 같은 환경이지만, 다른 인격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소름을 돋으며 볼 수밖에 없었다.
글리치는 더불어 그런 미스터리한 현상들을 토대로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성의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도 후반부 에피소드에서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순전히 외계인이라는 그 존재 그 자체를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서 알고 싶은 진실의 욕망을 가지고 싶었고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알고 싶은 욕망의 반을 가려서 그것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모으고 세력화하고 싶었다는 것을 글리치 드라마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은 음모론과 미스터리가 발생하는 것도 100% 알고 싶은 진실을 세상은 전달하지 않고 10%가 가려진 애매모호함을 가지고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작은 진실의 한 조각을 가리고 궁금하게 만들면 그것이 또 다른 믿음과 군중을 이끄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세상에 100% 진실을 만들지 않는 것이며 이는 어쩌면 인류가 전부 사라지지 않는 한 문명을 존중하는 인간 사회에서는 계속해서 이 애매하고 찜찜함을 이용하는 무리들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세상은 늘 그렇듯 선지자 속에 거짓 선지자들을 추종하게끔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본의 아니게 넷플릭스 신작 글리치를 홍보하는 글이 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간이 된다면 단순히 흥미성에 대해서 보고 판단하지 말고 꼭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몇몇 장면들에 있어서는 "어? 나도 가끔 저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상상을 해보곤 했었는데..."와 같은 반응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곁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다양한 잔상이 '외계인' 또는 'UFO'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믿음의 방향성이 나를 지배하여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린 종종 헷갈리고 사고가 마비되어 비이성적일 때가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는 순간도 필요하다고 나는 글을 맺으며 말하고 싶었다.
오늘도 글을 마무리하며 칠흑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저것은 UFO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 허상이 만든 사고가 착각인지 돌아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