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_가면을 쓰는 것보다 너 그 자체가 좋아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햇살 좋은 날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가끔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고양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하루를 지낼까?'
그리고 한 번쯤 상상해본다. '만약 내가 고양이로 하루를 살아보면 어떨까?'
그런데,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왔던 상상이 어느 날 이루어졌다면, 여러분들은 믿을 수 있겠는가?
"복잡하고 우울한 인간의 삶 보다 고양이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좋은데? 어때? 고양이로 살아가는 삶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좋아하는 남자 친구에게 고백하기 위해 고양이가 된 소녀의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특히, 사람이 고양이 가면을 쓰면 고양이가 된다는 설정이 내게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으며, 호기심을 들게 만들었다.
고양이가 되어야만 하는 사연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 사사키 미요는 종잡을 수 없는 괴짜로 동급생들에게 무게(무한 게이지 수수께끼 인간)라 불린다. 더불어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 넘치는 소녀이다. 그런 미요가 좋아하는 학급 친구가 있다. 바로,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같은 학급 남학생 히노데 켄토.
하지만, 히노데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하는 미요가 조금 부담스럽다. 그것도 많이...
하지만, 미요는 늘 히노데 곁을 맴돌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타임만 노리게 된다.
"아... 나는 히노데가 좋은데.. 히노데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런 까칠해 보이는 히노데가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는 대상은 바로 '동물'이었다. 동물은 히노데가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모든 감정과 솔직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히노데에게 기적 같은 만남이 다가왔다. 우연히 비 오는 축제날 만나게 된 하얀색 고양이(사사키 미요)에게서 자신의 곁을 떠난 강아지 '타로'의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에게 '타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히노데는 왠지 모르게 '타로(사사키 미요)'가 자꾸 보고 싶어 졌다.
미요는 다시 결심한다. 히노데가 좋아하는 고양이 '타로'로 변하여 그의 곁에 다가가기로...
"히노데가 고양이로 변한 나를 좋아해, 가면 장수 나 고양이 가면이 필요해..."
"타로? 오늘도 왔구나... 너한테서 태양의 냄새가 나서 너무 좋아"
"야옹(히노데, 너만 좋다면 곁에 있고 싶어), 야옹"
영화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를 보면서 정말 메시지와 영화적 표현이 잘 전달되는 영화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한 것에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영화는 '고양이 가면'을 통한 상처에 대한 자기 방어에 대한 표현들이 은유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주인공 사사키 미유는 언제나 발랄하고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캐릭터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에서는 그런 모든 것이 '괜찮은 척', '행복한 척', '밝은 척'과 같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유가 전혀 괜찮지 않다는 자신의 심정을 새엄마에게 투정 부리듯 말하는 대사들에서 우리도 삶을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잘 알지 못하게 숨기는 각자의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는가? 에 대한 물음을 우리 게 던지고 있었다.
특히, 많은 가면 중에서 '고양이 가면'이었던 이유도 인간에게 언제나 행복을 주기도 하고 친숙하면서도 고양이는 인간의 시점에서 는 정말 본인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표현하는 존재로 보이기 때문에 가면 화가 되었지 않나 생각한다. 고양이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표현하고 심심하면 놀아달라고 표현하고... 어쩌면, 미유는 그런 고양이가 어떨 땐 인간보다 훨씬 편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때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의 시각에서만 이해한다는 착각을 영화상에 잘 표현하였다.
나는 이 두 번째 관점을 영화에서 잘 풀어내고 교훈과 감동을 한층 더 깊이 있게 잘 만들어 내었다.
미요의 입장이 아닌 히노데의 입장에서도 왜 그가 작중 초반에 미요에게 적극적이지 못하였고 주저하는 모습만 계속해서 보여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작품 후반부에서 미요와 히노데의 대화에서 잘 표현하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단순히 보이는 면에서 그 사람의 심리 상태와 환경적 배경을 평가하지는 않는가?
히노데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였을 때의 미요는 히노데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걱정이 없는 친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히노데는 미요와 정말 닮은 친구였다. 학교에서 보이는 완벽한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고양이 '타로'로써 그를 지켜보면서 알아 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시각에 대한 일방적 편견이 사라지고 하나로 겹쳐지면 서로가 보지 못한 부분을 인정해주며 그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해 주고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되는 장면으로 점점 전개될 때, 영화는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나의 관점'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해주었다.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단순 청춘 멜로 영화로 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미유가 고양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 히노데의 말하지 못할 고민, 사람이길 포기하고 고양이 삶을 계속해서 권유하는 고양이 가면 장수의 유혹, 미유와 새엄마 간의 갈등 등.
우리 삶에서 한 번쯤은 고민하고 느끼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들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이다.
우리는 각자의 가면을 쓸 때가 있다.
그것이 미유에게는 고양이 가면의 형태로 다가왔으며, 여러분들에게는 고양이 가면일 수도 또 다른 형태로
다가올 수 있다.
상처 받고 아픔을 간직한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있다.
단지, 우리가 우리의 상처에 집중하여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였을 뿐...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며, 사랑받아 마땅할 존재이다.
우리가 각자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겨줄 것이 바로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