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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는 새살이 돋아날 거예요.

편의점 앞, 맥주 한 잔

by 박샤넬로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유민서 팀장은 새로운 프로젝트 회의를 마치고 활기찬 목소리로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습니다! 내일 봐요!"


팀원들은 각자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채민서는 신민아 사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며칠 전부터 민아 사원의 얼굴에 묘한 상기된 표정이 감돌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밝고, 가끔은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민서는 그런 민아 사원을 보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민서 씨, 오늘 저랑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할래요? 시원하게 한 잔 하고 싶어서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민아 사원이 민서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민서는 의외의 제안에 눈을 크게 떴다. 평소 퇴근 후에는 바로 집으로 향하던 민아 사원이 먼저 맥주를 제안하다니.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다.


"네? 좋아요! 마침 저도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났는데!"


민서는 흔쾌히 수락했다. 두 사람은 회사 건너편 편의점으로 향했다. 시원한 캔맥주 두 개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고른 후,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초여름 밤공기가 시원하게 불어왔다.


"크으~ 역시 이 맛이죠!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에요!"


신민아 사원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을 감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민서는 그런 민아 사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설렘이 가득했다.


"사원님, 혹시…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얼굴이 너무 밝아 보이 셔서요."


민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민아 사원은 민서의 질문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8년 연애의 끝, 그리고 한 줄기 빛


"민서 씨… 사실은… 저, 3개월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신민아 사원의 말에 민서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민아 사원이 늘 밝고 긍정적인 줄만 알았다. 그녀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네? 3개월 전이요?"

"네. 8년 만났던 남자친구였어요. 대학교 때부터 만나서… 거의 제 인생의 전부였죠. 각박한 회사 생활 속에서 그 친구는 저에게 한 줄기 빛이자 낙이었어요. 퇴근 후 그 친구를 만나는 시간만이 저에게 유일한 행복이었죠."


민아 사원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아련한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민서는 그녀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다. 8년이라는 시간. 그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이별을 통보했어요. 자기는 더 이상 저와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 너무 힘들었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매일 밤 울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회사에 오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매일 아침 출근길이 지옥 같았어요."


민아 사원은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민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위로의 손길이었다.


"그때는 정말… 제가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때 그 친구를 만났어요. 이민우 씨요."


신민아 사원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눈빛은 다시 밝아졌다. 민서는 그녀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했다.


대인기피증, 그리고 전화 상담


"민우 씨는… 제가 취업고민수집팀에서 처음으로 전화 상담을 했던 의뢰인이었어요. 당시 민서 씨는 아직 오기 전이었죠. 주민복지센터 앞에 붙여진 저희 팀 홍보 전단지를 보고 전화 상담을 신청했다고 하더군요."

민아 사원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민우 씨는 어린 시절 충격으로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정상적인 취업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죠. 그래서 전화 상담만 3회 정도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불안해했어요. 제가 질문하면 겨우 한두 마디 대답하고…."


민서는 민우 씨의 사연에 놀랐다. 대인기피증이라니. 그녀는 그런 사람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었다.


"저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줬어요. 어떤 조언도 하지 않았죠. 그저 그 친구의 불안감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려고 노력했어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그의 작은 변화에도 진심으로 칭찬해 줬어요. 예를 들어, '오늘 목소리가 좀 더 또렷해진 것 같아요',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해 보이네요' 같은 말들을요."


민아 사원의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민서는 민아 사원의 공감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녀는 민아 사원이 김용수 씨와 지희연 씨의 상담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을 떠올렸다.


용기 있는 발걸음, 그리고 동병상련


"3회 차 전화 상담을 마치고,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민우 씨, 혹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볼 용기가 생겼을까요? 저희 사무실은 아주 편안한 분위기이고, 제가 옆에서 민우 씨를 지켜줄게요'라고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 친구의 상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민아 사원은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며칠 뒤, 민우 씨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사원님… 저… 한번 가볼게요. 사원님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그리고 너무 감격스러웠죠."


민서는 민우 씨의 용기에 감탄했다. 대인기피증을 앓는 사람이 직접 사무실을 방문한다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었을 것이다.


"민우 씨가 사무실에 처음 왔을 때, 정말 많이 떨었어요. 손발을 벌벌 떨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죠. 저는 그 민우 씨의 손을 잡고 '괜찮아요, 민우 씨. 제가 옆에 있을게요'라고 말해줬어요. 그리고 민우 씨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죠."


민아 사원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그녀의 눈빛에는 묘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민우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와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했어요. 늘 불안했고,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대요. 그래서 세상과 단절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버렸다고…."


민서는 민우 씨의 사연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는 류지혁 씨의 과거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제 아픔과는 다르지만, 그 친구의 고통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죠. 8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제 마음과…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고통받던 민우 씨의 마음이… 왠지 모르게 연결되는 것 같았어요.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죠."


민아 사원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과 함께 묘한 따뜻함이 공존했다. 민서는 그런 민아 사원을 보며 그녀의 깊은 내면에 감탄했다. 그녀는 단순히 밝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랑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삶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저는 민우 씨를 의뢰자 이상으로 좋아하게 됐어요. 민우 씨의 용기, 그리고 저에게 마음을 열어준 그 진심에 반했죠. 고민 끝에… 마지막 상담 회차에 제가 먼저 고백했어요. '민우 씨, 저는 민우 씨가 너무 좋아요. 우리… 연애할래요?'라고요."

민아 사원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민서의 눈을 피했다. 민서는 민아 사원의 용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의뢰인에게 먼저 고백하다니!

"민우 씨는 제 고백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제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렇게 저희는 연애를 시작했고, 지금은 약 3개월 정도 되었네요."

민아 사원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녀의 눈빛은 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반짝임으로 빛났다.


"민우 씨는 이제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재취업에 성공했어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죠. 처음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업무에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어요. 그리고… 매일 회사 퇴근 시간에 차로 저를 데리러 와요. 늘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힘이 되어주죠."


민아 사원은 민서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민서는 민아 사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녀는 민아 사원이 겪었던 아픔과 그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은 그녀의 용기에 깊이 감동했다.


어른스러운 민아, 그리고 민서의 깨달음


민서는 신민아 사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늘 밝고 따뜻한 미소를 짓고, 팀의 마스코트처럼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 뒤에는 깊은 아픔과 그것을 극복해 낸 강인함이 숨겨져 있었다. 민서는 민아 사원이 자신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민서는 완벽한 스펙과 논리로 무장했지만,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서툴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지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거나 사랑을 고백하는 용기는 아직 부족했다. 하지만 민아 사원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용기 있게 행동했다.


'상처에는 새살이 돋아날 거예요.'


민서는 민아 사원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녀는 민아 사원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어른스러움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아픔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이었다.


민서는 시원한 캔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마음은 따뜻함으로 가득 찼다. 취업고민수집팀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유민서 팀장, 차일혁 대리, 그리고 신민아 사원까지. 그들은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아픔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타인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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