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격의 기로에 선 취업고민수집팀
어느 때와 같이 사무실은 분주했다. 김용수 씨는 재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지희연 씨는 노동청 분쟁이 마무리된 후 심리상담학 대학원 입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류지혁 씨는 더 드림 컨설팅에서 주최하는 커뮤니티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음악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박민영 씨는 용기 있게 회사를 떠나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채민서는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보람을 느꼈다.
그날 아침, 사내 메일함에 한 통의 공지가 도착했다. 제목은 'TF팀 정식 승격 심사 안내'. 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쳤다. 유민서 팀장이 메일을 열자, 화면 가득 붉은 글씨로 쓰인 문구가 나타났다.
"TF팀 정식 승격 조건: 한 달 안에 의뢰자 평균 평점 9점 이상 달성"
사무실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한 달 안에 평균 9점 이상이라니. 쉬운 미션이 아니었다. 그동안 TF팀은 의뢰인들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진심으로 다가갔지만, 평가 점수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오직 의뢰인들의 변화와 성장에 집중했을 뿐이었다.
"자, 다들 봤지? 한 달이야. 한 달 안에 승격 여부가 결정된다는 뜻이지."
유민서 팀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날카로웠다. 그녀의 눈빛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보다 팀의 승격을 간절히 바라는 유민서 팀장의 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차 대리, 그동안 우리 팀이 상담했던 모든 의뢰인 리스트 뽑아줘. 신민아 사원은 평가 URL이랑 함께 진심을 담은 문구로 메일 발송 준비해 주고. 채민서, 너는 의뢰인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안부 묻고, 혹시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확인해 줘. 그리고… 평가에 대한 부담은 주지 말고, 솔직한 피드백을 부탁한다고 정중하게 말해."
유민서 팀장은 거침없이 지시를 내렸다. 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민서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지난 의뢰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김용수 씨, 지희연 씨, 류지혁 씨, 박민영 씨… 그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고, 그들의 삶에 작은 변화라도 주었다고 믿었다.
이날 따라 유민서 팀장은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호쾌하고 거침없는 성격이었지만, 오늘은 그 예민함이 극에 달한 듯했다. 작은 소리에도 날카롭게 반응했고, 팀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팀원들은 팀장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신의 업무에 집중했다.
예상치 못한 방문객, 차예련 대표
점심시간이 막 시작될 무렵, 사무실 문이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문가에 서 있는 사람은 50대 초반의 중년 여성이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 차림에 세련된 헤어스타일, 그리고 한 손에는 고급스러운 롤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다.
"어머, 민서야! 잘 지냈니? 오랜만이다."
그녀는 유민서 팀장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유민서 팀장은 그녀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예련 팀장님… 어쩐 일이세요?"
유민서 팀장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함께 미묘한 경계심이 묻어났다. 민서는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차예련 팀장? 유민서 팀장님의 예전 사수라고 들었는데….'
"어쩐 일이라니?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너희 팀에 볼일도 좀 있어서 왔지. 마침 점심시간이네? 다들 점심은 먹었니?"
차예련 대표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채민서에게로 향했다. 민서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순간 움찔했다.
"아직… 먹기 전입니다."
신민아 사원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잘 됐네! 내가 맛있는 롤케이크 사 왔는데, 다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할까? 물론… 나는 의뢰인 자격으로 온 거지만."
차예련 대표의 말에 팀원들은 모두 놀랐다. 그녀가 의뢰인으로 TF팀을 찾아왔다니. 유민서 팀장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지만, 차예련 팀장이 먼저 소파에 앉으며 "자, 민서야. 앉아."라고 말하자 마지못해 그녀의 옆에 앉았다.
사업의 현실, 그리고 가치관의 충돌
차예련 대표는 롤케이크를 꺼내 접시에 담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서야, 네가 알다시피 내가 헤드헌팅 스타트업을 차려서 운영하고 있잖아?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는데, 막상 해보니 현실은 녹록지 않더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묘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민서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성공한 헤드헌터'라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어려움이 느껴졌다.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이라는 게 말이야… 결국은 돈이더라. 기업은 능력 있는 인재를 원하고, 인재는 더 좋은 조건을 원하고.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조건을 맞춰주는 것뿐이더라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서 요즘은 잠도 제대로 못 자."
차예련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과거 유민서 팀장이 취업 시장에서 헤맬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회의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다 문득, 네 생각이 나더라. 네가 이 취업고민수집팀에서 무료 상담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좀 비웃었거든. '저게 돈이 될까?', '저런 걸 왜 하고 있지?' 하고 말이야."
차예련 팀장은 유민서 팀장을 힐끗 보며 말했다. 유민서 팀장은 아무 말 없이 차예련 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내가 겪는 어려움을 생각해 보니, 너희 팀이 하는 일이 어쩌면… 진정한 가치를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돈을 좇다 보니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불현듯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안주거리를 꺼내놓는 것처럼.
"예전에 말이야, 우민호 대표랑 나랑 가치관 때문에 크게 싸운 적이 있었어. 그때는 우민호 대표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을 때였지. 나는 ‘회사는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살아남는다’고 주장했고, 우민호 대표는 ‘사람이 먼저다’,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 나는 그의 이상론이 너무 한심하게 들렸지. 꿈이 밥 먹여주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어."
차예련 팀장은 유민서 팀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유민서 팀장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민서는 그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유민서 팀장이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과거 이야기와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우민호 대표는 유민서 팀장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꿈이 밥 먹여주냐고 비아냥거렸던' 사람이 바로 유민서 팀장이었다는 사실에 (채) 민서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는 결국 우민호 대표의 이상론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와 결별했지. 그리고 내 방식대로 돈을 쫓아왔어.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다시 그때의 고민이 시작되더라.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가? 이 길이 맞는 건가?"
차예련 팀장은 롤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회의감이 서려 있었다.
흔들리는 민서, 그리고 팀장의 조언
"그런데 민서야, 너는 참 대단하다.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컨설팅 팀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TF팀에 와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솔직히 네 스펙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차예련 대표의 시선이 채민서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말은 칭찬인 듯했지만, 동시에 민서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유혹이었다.
"내가 요즘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마침 네가 눈에 띄네. 우리 회사로 와서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해보는 건 어때? 네 스펙이면 우리 회사에서 충분히 대우받을 수 있을 거야. 돈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 수 있고."
차예련 대표는 은근슬쩍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민서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제대로 된 컨설팅', '대우', '돈'. 그녀가 처음 '더 드림 컨설팅'에 입사하려 했던 이유들이었다. 그녀는 TF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진정한 컨설턴트'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세한 흔들림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유민서 팀장이 차예련 대표의 말을 끊으며 (채) 민서에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채민서, 너 김용수 씨 이야기 기억나? 그분이 우리에게 뭘 원했지? 지희연 씨는? 류지혁 씨는? 그리고 박민영 씨는?"
유민서 팀장은 민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질문은 민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의뢰인들의 얼굴과 그들의 사연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했다. 임금 동결로 고통받던 김용수 씨, 열정페이에 시달리던 지희연 씨, 원치 않는 무대에 서야 했던 류지혁 씨, 그리고 편견과 차별 속에서 아파했던 박민영 씨. 그들은 모두 돈이나 성공만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감과 위로, 인정과 용기를 원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 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네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었는지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컨설턴트'의 역할이었다.
민서는 고개를 들고 유민서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의 눈빛에는 '나는 너를 믿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민서는 차예련 대표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차예련 대표님, 제안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TF팀에 남겠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배우고 얻는 것들이, 어떤 돈이나 명예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 민서의 말에 차예련 대표는 살짝 놀란 듯했지만,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민서 팀장은 민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다짐, 운명 같은 팀
차예련 대표는 유민서 팀장에게 더 이상 스카우트 제의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사업 고민과 우민호 대표와의 과거 이야기를 더 풀어놓았고, 유민서 팀장은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점심시간 내내 이어진 상담은 차예련 대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준 듯했다. 그녀는 돌아갈 때 유민서 팀장에게 "민서야, 가끔 이렇게 네 얼굴 보러 와도 되지?"라고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차예련 대표가 떠난 후, 사무실에는 다시 분주한 분위기가 돌아왔다. 민서는 의뢰인들에게 평가 URL을 보내는 업무에 집중했다. 그녀의 손끝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승격이 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야.'
(채) 민서는 이제 더 이상 유민서 팀장에 대한 인간적인 궁금증을 넘어, 그녀의 철학과 비전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유민서 팀장이 자신에게 했던 날카로운 말들이 사실은 그녀를 성장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완벽주의를 깨고,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팀장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