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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 그리고 카림의 성장

by 박샤넬로



사무실은 여전히 분주했다. 김용수 씨는 새로운 회사에 성공적으로 재취업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지희연 씨는 심리상담학 대학원 입시 준비에 매진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류지혁 씨는 커뮤니티 행사에서 작은 공연을 열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고, 박민영 씨는 대학원 합격 소식과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온 카림 씨는 뱃일을 그만두고 취업고민수집팀 인턴 생활에 열심히 적응 중이다.


“카림 씨, 어제 보고서 초안 보니까 많이 늘었더라? 처음에는 좀 헤맸는데, 역시 열정은 그 누구보다 대단해.”


어느 날 아침, 유민서 팀장이 카림 씨의 보고서를 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차일혁 대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실수는 있었지만,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서 금방 따라올 겁니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자료 분석도 꼼꼼하게 잘하더군요.”


카림 씨는 아직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늘 진지했고, 배우려는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는 새벽 바다에서 얻은 끈기와 성실함으로 팀의 업무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채) 민서는 카림 씨의 성장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녀가 난처해했던 문제를 유민서 팀장과 우민호 대표가 해결해 주었고, 그 결과 카림 씨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보람을 느꼈다.


어느덧 팀에서의 6개월 생활이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만으로 가득했던 이곳이 이제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김용수 씨의 좌절에 공감했고, 지희연 씨의 고통을 위로했으며, 류지혁 씨의 상처를 보듬었다. 그리고 박민영 씨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배웠다. 유민서 팀장과 차일혁 대리의 숨겨진 과거를 통해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6개월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엄청나게 성장했다.


고민의 그림자, 스카우트 제의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고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취업고민수집팀의 업무는 보람 있고 가치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녀를 짓눌렀다. ‘더 드림 컨설팅’의 정식 컨설턴트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훨씬 높은 연봉과 좋은 조건을 제시받고 있었다. 채용 사이트에는 그녀의 스펙에 맞는 화려한 공고들이 넘쳐났다. 헤드헌팅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차예련 팀장의 스카우트 제의도 여전히 그녀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내가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이 팀에 계속 남아있는 게 맞는 걸까?’


민서는 밤늦게까지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는 TF팀에서의 보람과 가치를 알았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져갔다. 주변의 시선, 현실적인 연봉 문제, 그리고 ‘완벽한 스펙’을 가진 자신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성공.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흔들었다.


“채민서, 너 요즘 안색이 안 좋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어느 날, 신민아 사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민서는 애써 미소 지었지만, 그녀의 고민을 숨길 수는 없었다.


“아니에요, 사원님. 그냥… 요즘 좀 피곤해서요.”


민서는 자신의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유민서 팀장에게는 더더욱. 그녀는 팀장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와의 재회, 야구장의 밤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민서는 언니 서연을 만나러 갔다. 서연은 민서보다 다섯 살 많은 서른두 살(민서는 27살이다)이었다. 한때 잘 나가는 공기업에 5년 동안 다녔지만, 과감히 퇴사하고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 중이었다. 민서는 서연의 결정에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공기업을 그만두고 적자만 나는 카페를 운영하다니. 하지만 서연은 늘 행복해 보였다.


“민서야! 여기야, 여기!”


야구장 앞, 서연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기업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생기가 넘쳤다. 민서는 언니의 밝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 지었다.


“언니!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그럼! 카페는 여전히 적자지만, 마음만은 부자라고! 자, 치맥 먹으러 가자!”


두 사람은 야구장으로 향했다. 시원한 맥주와 바삭한 치킨을 앞에 두고, 뜨거운 응원 열기 속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와 즐거움이었다. 야구 경기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민서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고민을 꺼냈다.


“언니… 나 요즘 고민이 있어.”


서연은 민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따뜻했지만, 동시에 민서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무슨 고민인데? 말해봐. 네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거 오랜만에 본다?”


민서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취업고민수집팀에서의 보람과 가치,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오는 스카우트 제의와 채용 공고들. 그녀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언니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더 드림 컨설팅’에 오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지금 취업고민수집팀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그런데… 가끔은 내가 너무 현실을 모르는 건가 싶기도 해. 더 좋은 조건, 더 높은 연봉… 그런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아.”


민서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서연은 민서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조언도,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민서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서연의 이야기: 매너리즘을 넘어선 행복


민서의 이야기가 끝나자, 서연은 시원하게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서야, 네 이야기 들으니까 옛날 내 생각이 나네. 나도 공기업 다닐 때 그랬어. 겉으로는 번듯하고, 안정적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었지. 부모님도 늘 ‘우리 딸이 공기업 다닌다’고 자랑스러워하셨고.”

서연의 목소리에는 묘한 감회가 서려 있었다. 민서는 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말이야, 매일 똑같은 업무, 반복되는 일상, 의미 없는 회의… 어느 순간부터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더라. 그냥 월급 받기 위해 출근하는 기계 같았어. 외적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내적으로는 점점 시들어가는 느낌이었지. 그게 바로 ‘매너리즘’이라는 거더라.”


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민서는 언니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녀 역시 TF팀에 오기 전, 완벽한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묘한 공허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정말 고민이 많았어. 이대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내 인생은 이게 전부인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두려웠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


서연의 목소리에는 과거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민서는 언니의 아픔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는 언니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하고 생각했어. 어릴 때부터 꿈꿨던 작은 카페.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었지. 남들은 다 미쳤다고 했어.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망할 게 뻔한 카페를 차린다고?”

서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지금도 만년 적자야. 매달 적자 폭을 줄이려고 발버둥 치고 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기업 다닐 때보다 훨씬 행복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즐거워. 새로운 손님을 만나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카페를 꾸미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해.”


서연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행복이 가득했다. 그녀의 눈빛은 반짝거렸고,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민서는 언니의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돈과 명예를 좇던 언니가, 이제는 작은 카페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알아.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건 바로… ‘내일이 오길 기대되는 일’을 하는 거야.”


서연은 민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슴 울리는 메시지, 그리고 민서의 깨달음


“마음이 움직이는 일?! 그런 건 모르겠고… 내일이 오길 기대되는 일이면 그거 하면 되지.”


서연은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 한마디는 민서의 가슴을 강하게 울렸다. 복잡했던 그녀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듯했다.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내일이 오길 기대되는 일’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그녀의 마음에 더 깊이 와닿았다.


민서는 곰곰이 생각했다. 6개월 전의 민서와 지금의 민서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6개월 전의 그녀는 오직 완벽한 스펙과 성공만을 쫓았다. TF팀에 배정된 것에 불만을 품었고,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김용수 씨, 지희연 씨, 류지혁 씨, 박민영 씨, 그리고 카림 씨를 통해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배웠다. 유민서 팀장과 차일혁 대리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믿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이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즐거웠다. 취업고민수집팀에 출근하여 새로운 의뢰인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든 과정이 그녀에게는 ‘내일이 오길 기대되는 일’이었다. 때로는 어려움에 부딪히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나는 지금 내일이 오길 기대되는 일을 하고 있어.’


민서는 가슴속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다른 회사에서 제시하는 좋은 조건과 높은 연봉은 그녀를 흔들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이곳 취업고민수집팀에 있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보람,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팀원들과의 유대감.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야구 경기는 막바지에 다다랐고, 민서가 응원하는 팀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야구장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민서는 언니의 손을 잡았다.


“언니, 고마워. 언니 덕분에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아.”


서연은 민서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민서의 눈빛에서 확신을 읽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녀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고, 그 길 위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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