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다시 저택이 되기로 했나?

신세계 백화점의 행보를 살펴보며

by 박샤넬로


부산 센텀시티점 5층, 화려한 명품관 사이로 난 비밀스러운 통로를 지나면 ‘어퍼하우스(Upper House)’가 나타난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백화점 특유의 소란스러움은 마법처럼 사라진다. 통창 너머로 쏟아지는 수영강의 윤슬, 낮게 깔린 이탈리아 가구의 질감, 그리고 정적을 채우는 잔잔한 재즈.


DO01012370.JPG 사진출처 : 직접 방문 촬영


DO01012372.JPG 사진출처 : 직접 방문 촬영


그곳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느낀 것은 ‘쇼핑의 즐거움’이 아니었다.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분리되어 오직 나만의 취향에 집중할 수 있다는 ‘공간의 위로’였다. 신세계는 왜 이토록 거대한 면적을 ‘판매’가 아닌 ‘비움’과 ‘환대’에 할애했을까?




1. 리테일이 아닌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의 영역으로


센텀시티 어퍼하우스에서 느낀 그 정적은 우연이 아니다. 신세계는 이제 백화점을 ‘효율적인 상점’이 아닌 ‘정성스러운 저택’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21057631


실제 사례: 하우스 오브 신세계의 '조도(Lux) 전략' 강남점 하우스 오브 신세계는 호텔 라운지 형식을 빌려왔다. 일반적인 백화점 식품관이 1,000룩스의 밝은 조명으로 상품을 돋보이게 한다면, 이곳은 조도를 200룩스까지 낮췄다. 저녁이 되면 50룩스까지 떨어지죠. 이는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분위기를 향유하는 거실'임을 강조하는 디테일이다. 38년 만에 2호점을 낸 '김수사'나 '미가훠궈' 같은 희귀 맛집을 입점시킨 방식 또한 단순한 식당가가 아닌 '미식 큐레이션'의 정점이다.

이제 고객은 상품이 아니라 '공간의 태도'를 구매한다. 호텔의 로비나 프라이빗한 저택의 거실을 닮은 이 공간들은 고객으로 하여금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다.



2. 선망성을 유지하는 법 : '등급'이 아닌 '세계관'의 공유


센텀 어퍼하우스나 강남 트리니티 라운지는 단순히 구매 금액으로 등급을 나누는 장소가 아니다. 브랜딩의 관점에서 이는 '견고한 취향 공동체의 구축'이다.


IMG_9804.jpeg 사진 출처 : 직접 방문 촬영


실제 사례: 여행을 큐레이션 하는 '비아 신세계(Via Shinsegae)' 신세계는 이제 백화점 문 밖까지 고객의 삶을 케어한다. 2024년 론칭한 프리미엄 여행 플랫폼 '비아 신세계'는 단순히 비싼 패키지를 팔지 않는다. 자택 앞 제네시스 픽업 서비스부터, 목적지를 출발 전까지 비밀로 부치는 '미스터리 럭셔리 여행'을 제안한다. 북극 쇄빙선 탐사나 영국 첼시 플라워쇼 관람 같은 '돈으로도 사기 힘든 경험'을 제공하며, 이를 백화점 VIP 실적과 연동시켜 온-오프라인의 경험을 하나로 묶는다.

신세계는 단순히 등급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지향점'을 서비스로 구현해 놓고, 그 세계관에 동참하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3. Z세대에게 백화점은 어떤 '정의'여야 하는가?


이 정교한 프리미엄 전략은 놀랍게도 미래 권력인 Z세대를 향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백화점이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Z세대에게는 '나의 감도를 증명하는 무대'이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1216_0003442264

실제 사례: 400평 규모의 '와인 셀라'와 맞춤형 PSR 하우스 오브 신세계의 와인 전문관은 '샵'이 아닌 '셀라(저장고)'라고 불린다. 한 병에 2억 원이 넘는 희귀 와인을 보유한 이곳은 Z세대에게 '희소한 콘텐츠'를 경험하는 성소가 된다. 또한, 업계 최대 규모의 퍼스널 쇼퍼 룸(PSR)을 강화하며,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함께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프리미엄 멤버십'의 핵심 가치로 전달한다.


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동시에, 가장 '오프라인의 물성'에 목말라하는 세대이다. 신세계가 제공하는 고도의 미식 경험과 프라이빗한 큐레이션은 이들에게 소셜 미디어에 기록하고 싶은 '희소한 가치'가 된다.





5년 후의 신세계 : 공간을 넘어 '시간의 제국'이 되다


현재 신세계가 보여주는 오프라인 전략의 핵심은 명확하다.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감각의 총체'를 오프라인에 집결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럭셔리한 주거 공간(어퍼하우스), 미식의 성소(하우스 오브 신세계), 그리고 프라이빗한 이동(비아 신세계)을 하나로 엮어 '신세계라는 거대한 라이프스타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다음 5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브랜딩 전문가의 시선으로 예측하는 신세계의 미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1. 리테일을 넘어선 '하이엔드 서비스의 구독화'


현재의 VIP 멤버십은 구매 금액에 따른 '혜택'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5년 뒤, 신세계는 이를 '라이프 케어 구독' 시스템으로 진화시킬 것이다. 백화점에 오지 않아도 신세계가 큐레이션 한 가구가 집으로 배달되고, 전용 여행사가 나의 휴가를 설계하며, 하우스 오브 신세계의 셰프가 집으로 찾아오는 서비스까지. 공간의 경험을 고객의 일상 깊숙이 침투시키는 '경험의 무한 확장'이 일어날 것이다.



2. '초개인화된 인공지능 호스피탈리티'의 도입


Z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부상하는 5년 뒤, 신세계는 오프라인의 아날로그적 감성에 최첨단 AI 기술을 결합할 것이다. 하우스 오브 신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AI가 고객의 당일 기분과 취향을 분석해 조도와 음악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퍼스널 쇼퍼 룸(PSR)에서는 데이터에 기반한 완벽한 스타일 제안이 이루어지는 식이다. 기술은 보이지 않되, 그 결과물인 '대접받는 기분'은 극대화되는 '보이지 않는 럭셔리(Invisible Luxury)'의 시대를 살아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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