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취재하던 기자, 한의대에 들어가다-30대, 대학교 동아리에 지원하다
30대 새내기의 대학교 로망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한의대에 입학한 터라 대학생활의 자유, 연애, 공부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오직 한 가지 로망이 있었으니, 바로 동아리였다. 다시 대학교에 들어가 동아리 생활을 잘해보고 싶었다. 눈치 없는 생각일지 몰라도, 그저 순수하게 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끼리 끈끈하게 뭉쳐있는 대학교동아리 특유의 분위기가 그리웠다.
아직 학생보다 회사원의 정체성이 강했던 3월. 각 동아리들이 신입생 모집에 열을 올리는 동아리 홍보를 유심히 봤다. 일부 동아리는 '3수 이상은 지원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그런 동아리들을 소거하고, 남은 동아리 중 내가 가입하고 싶은 동아리들을 추렸다.
동아리는 가입하고 싶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30대 새내기는 동아리 문턱 앞에서 쓴맛을 봤다. 요즘 대학 동아리는 면접을 보고 동아리원들을 뽑는단다. 말 그대로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선 회장단의 면접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거다. 입사면접은 익숙해도 동아리 면접은 참 낯설었다. 나 빼고 현역 스무 살 친구들은 이미 동아리 면접 문화에 익숙해 보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생활기록부 관리를 하다 보니, 대입에 스펙이 될만한 동아리에 학생들이 몰려서 고교 동아리들도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본단다. 예를 들면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생물실험 동아리에 들어가는 식이다. 어쨌거나, 태어나서 동아리 면접이라는 걸 처음 겪어보는 나로서는 ‘참 유별나네’라는 생각을 하며 동아리 면접을 아주 가볍게 여겼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0여 년 전, 대학생 1회 차 그 시절에도 면접을 보는 동아리들이 일부 있긴 있었다. 보편적인 건 아니었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필기시험, 합숙면접, 카메라테스트, 임원면접 등 별별 면접을 다 봤다. 모든 전형에서 합격과 불합격의 맛을 보며 결국 입사에 성공했기에 면접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인턴을 뽑는 면접에 막내면접관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래서 동아리 면접은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근데, 그게 문제였다!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면접장으로 갔다. 면접관 3명, 지원자 3명이 면접을 보는 3:3 형식이었다. 대학교 동아리 면접을 얕본 탓이었을까. 압박 아닌 압박면접이 시작됐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데 MT 등 동아리 행사에 잘 참여할 수 있겠어요? 나이많은 분들은 보통 참여를 잘 안하던데..."
"MT 가서 하고 싶은 레크리에이션을 기획해보세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난이도 높은 대학동아리 면접. 이정도면 대기업 면접 난이도 아닌가? 나보다 10살 어린 선배님들께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을 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허 참, 나이는 많아도 동아리에 들어가서 대학생활을 즐기고 싶었는데 이런 너무 자만했구나... 이렇게 아싸가 되나 싶었다! 동시에, 요즘 학생들의 면접 수준이 꽤나 높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6년 제인 한의대는 문화가 꽤나 폐쇄적인 편이라 동아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대학생활의 시작이 꼬이는 건가 싶었다.
동아리 면접에서 패배를 맛본 뒤, 눈을 조금 돌려봤다.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를 살펴보다가 학보사 학생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기자 경력을 살려서 교내 신문사에 학생기자에 지원하면, 날 뽑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태생적으로 노예근성인지라 여유로운 대학교 1학년 생활이 조금은 따분하여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번엔 조금 기대를 했다. 그런데 웬걸. 학보사는 '서류탈락'했다. 면접도 보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은 '동네 조기축구회에 프로선수가 지원한 꼴' '신입사원들 사이에 50대 부장이 끼는 것'이라며 약간 과장을 더해 날 위로해 줬다. 탈락 이유에 대해 직접 듣진 못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내 욕심이 과했다. 20대 초반 대학생들 사이 30대가 끼는 건 아무래도 편치 않으니까.
다행히, 돌고 돌아 나를 받아준 다른 동아리 2개에 들어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받아주는 곳을 찾아서 끝까지 지원했다) 덕분에 30대 나이에 개강총회, 종강총회, 국백(국가고시 100일 전 행사), MT에 참여하는 호사를 누렸다. 나이 많은 나를 보고 처음엔 다들 내심 당황해했으나, 곧 조용히 녹아들 수 있었고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학교 근처 술집에서 종강, 개강총회를 할 때면 가게사장님이 신분증 검사를 하곤 하는데, 이때 난 기분이 가장 좋았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 신분증 검사냐!)
동아리 에피소드를 지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나를 받아준 동아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아리가 없었다면? 아직도 서글퍼했겠지. 다시 한번 나를 받아준 동아리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