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취재하던 기자, 한의대에 들어가다-두 우물을 파는 중입니다
늦깎이 신입생이 되어 '현타'를 맞는 순간이 몇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나와 동갑인 교수님을 학교에서 만났을 때다. 내가 다닌 학교, 학과엔 나와 동갑인 교수님이 두분 계셨다. 아니, 난 다시 1학년 새내기인데 내가 교수가 될 나이였다니!
그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동문들이 교수에 임용됐을 경우 큰 플랜카드를 걸어둔 걸 종종 볼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응급구조학과 16학번이 한 지방대 교수로 임용됐다는 플랜카드를 봤다! 세상에, 나랑 동갑인 것도 모자라서 나보다 꽤 어린 16학번도 벌써 교수가 될 나이라니? 나는 뭐하고 있는거지?
새삼, 내가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구나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30대 초중반은 교수 타이틀을 달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심지어 교수임용이 특출 나게 빨리된 나이도 아니다. 20대 초반에 대학교를 들어간 후 석사-박사과정을 쭉 마쳤으면 이미 박사를 마치고 포닥까지 해도 충분한 나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카이스트엔 검정고시 출신 '24세 교수님'도 있다고 한다.
스무 살, 대학생 1회 차 시절 내가 만난 교수님들은 대부분 중년 나이대였다. 그래서 아직도 내 머릿속 교수님의 이미지는 '중년'으로 고정돼 있다. 우리 학과만 그랬을까. 교수님 중에선 40대만 돼도 꽤나 젊은 축에 속했고 대부분은 부모님 또래의 교수님들이 많았다. 베이비붐 세대 교수님들이다. 한 교수님께서는 베이비붐 세대인걸 앞세워 '대학원 영업'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가 곧 은퇴를 하니까
너네는 대학원만 오면 교수자리가 많이 생길 거야.
석 박하고 몇 년 있으면, 딱 그때 너네가 교수되기 좋거든.
대학원 가기 딱 좋은 타이밍이야"
그때, 대학원을 갔던 내 또래 친구들이 지금 교수가 되어 나에게 강의를 하는 것이로구먼! 나랑 동갑까진 아니더라도, 나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교수님들을 보면 때때로 부러웠다. 어쩔 수 없이, 비슷한 나이인데 교수가 되어있는 그분들과 다시 새내기가 된 내 신세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 나도 10년간 한우물을 팔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진로를 바꾼 것에 대한 확신이 100% 없었던지라 더더욱 그랬다. 주변을 보면 회사를 다니면서 저널리즘 대학원에 다니는 동기, 선배들이 꽤 있다. 그런데 난 석사나 박사학위가 아니라 또 다시 학사학위를 따러 대학교에 들어왔다니, 이게 맞는 선택인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죽이되든 밥이되든 무슨 일이든 10년정도 꾸준히 하면 평타는 칠 수 있지 않나! 전문가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빠꼼이(어떤 일이나 사정에 막힘없이 훤하거나 눈치 빠르고 약은 사람을 부르는 속어)'정도는 될테니 말이다. 나는 애매한 6~7년의 기자경력을 어디 써먹을수도 없고, 그냥 더 버텨낼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치만, 그런 생각도 잠시. 한의대에 입학해서 생활하다 보니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앞으로 어떻게든, 뭐라도 도움이 될 것이란 합리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을 하면서 배운거라곤, 나한테 적대적인 취재원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 어떻게든 뭐하나라도 입을 열어서 정보를 얻는 일 등이었다. 이걸 새로운 진로에 대입을 해본다면 어떨까? 아파서 잔뜩 찡그리고 있는 환자를 대하는 방법, 병원은 운영하는 방법 등은 회사생활의 짬으로 꽤나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회사를 갑자기 때려치우는 바람에 깊은 한 우물을 못 팠지만, 대신 두 가지 우물을 파는 중이다. 내가 한 때 사랑했던 기자의 일과 의료인의 길. 얼핏보기엔 아무런 접점이 없긴하지만, 물은 어디론가 흘러 결국 만난다고 하지 않나. 이 두 가지 우물에서 나온 물들이 언젠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