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사랑스러운 나의 스무살 친구들-찐팬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예과 대표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커피 한잔 드실래요?"
한의대에 입학한 지 며칠 되지 않아, 2학년 학생회장 선배님한테 갑자기 카톡이 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내가 나이가 많아서 따로 챙겨주려는 걸까?', '혹시 뭘 잘못했을까, 아니면 나 말고 모든 학생들을 다 불러서 1:1로 만나는 건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별별생각을 다했다. 잔뜩 졸아있는 새내기였으니까. 어쨌거나, 나이 든 신입생에게 누군가 먼저 다가와준다는 건 감사한 일다. 게다가 학생회장이라니! 일단 만나보자는 심정으로 학교 앞 프랜차이즈 카페로 갔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공부를 하고 있던 학생회장님이 보였다. 조심히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 신입생 코코넛이에요"
"어머!! 안녕하세요!"
학생회장님은 큰 미소와 활기찬 목소리로 날 맞이해 줬다. 요즘 소위말하는 '인싸'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친구였다. 앉자마자 의외의 이야기가 돌아왔다.
"언니, 그분 맞죠? 저 언니 봤어요 팬이에요!"
응? 이게 무슨 소리일까.
'이 사람은 뭔데 날 안다고 하지? 난 처음 보는 사람인데...?'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자로 일을 하면서, 주로 신문에 글을 쓰는 '펜기자'였지만 회사 유튜브채널에 출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나오던 영상을 즐겨보던 구독자였다. 오해는 말라. 난 유명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날보기 위해서라기보단 해당 채널을 좋아했던 친구였다. 내가 출연했던 코너 이름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우리 부모님 아니면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팬을 여기서 만나다니!
심지어 구독자이벤트에서 당첨까지 돼서 경품을 받은 '찐팬'이었다. 구독자 이벤트 선물은 목도리였는데, 그 목도리를 하고 찍은 사진까지도 보여줬다. 세상이 이렇게 좁을 수 있구나 싶어서 놀랐다. 이 소식을 빨리 함께 해당 채널을 꾸리던 회사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그 친구는 맨 처음, 내 이름과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긴가민가했단다.
"음, 진짜 닮았는데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지?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의아해서 내가 기사를 쓰고 있는지 네이버검색까지 해봤더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기사를 쓰고 있었으니, 그냥 이름이 똑같고 닮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입학을 하기 열흘 전까지도 회사에 다니며 기사를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새터(새내기배움터)'에서 내 실물을 보고 '어머, 저 사람 진짜 맞네!'라고 확신을 했다고 한다.
우린 그렇게 서로를 신기해하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선배이자 학생회장이자 팬인 그 친구는 마치 비밀과외 선생님처럼 병결을 쓰고 수업을 빠지는 방법, 악명 높은 해부 교수님 수업에서 살아남는 법까지 학교생활의 꿀팁들을 쏟아냈다. 서울과 먼 타지, 어색하기만 한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내게 든든한 아군이 생긴 순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린 서로 번호교환을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날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변친구들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조금 부끄러워서요"
이렇게, 우리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동기도 아닌 우린 그렇게 선배와 후배 사이로 만났다.
카페를 나오며 생각했다. 치열하게 기사를 쓰고 영상을 찍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고. '퇴사'와 동시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울적하기도 했다. 회사를 떠나 학생이 되는 선택의 무게를 뒤늦게 실감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친구를 만난 덕분에 나의 과거와 따뜻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의 글과 말이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 낯선 캠퍼스에서 확인하게 됐으니 말이다.
회사가 싫어서 퇴사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 덕분에 알게 된 친구를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달 외우는 학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얻게 됐으니 가슴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학문의 길은 고단할지라도, 사람은 따뜻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