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동기에게 청첩장을 돌려도 될까요?

2부 사랑스러운 나의 스무살 친구들-청첩장은 고지서가 아니다?

by 코코넛

한의예과 1학년 여름방학. 20살의 여름방학과 30대의 여름방학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20살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떠날 때 나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가장 난감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드레스 고르기? 부모님 상견례? 아니었다. 내겐 스무 살 동기들에게 청첩장을 줄지 말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 어린 친구들에게 ‘결혼식에 와달라’고 청하는 일이 과연 맞는 일인지 수없이 고민했다.


청첩장을 돌리는 게 고민이었던 이유는 뭘까. 바로 나보다 10살 넘게 어린, 스무 살 동기들에게 청첩장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청첩장을 받아봤지만, '부담'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적잖았다. 누군가의 결혼은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 맞지만, 현실을 바라보자. 하객은 축의금을 내야 하고, 주말에 시간을 빼서 식장에 가야 한다. 엄청 친한 사이면 별 걱정이 없지만, 문제는 애매한 사이일 경우다. 청첩장을 받긴 했지만 결혼식장에 진짜 가도 되는 건지,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는 건 당연지사.


한 선배는 나에게 사회생활하면서 받는 청첩장은 '고지서'와 같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어느 정도 공감되는 말이었다. 특히 청첩장을 건네는 이가 나보다 상사일 경우 부담감은 더욱 커진다. 5~6년 만에 연락을 해서 청첩장을 뿌리는 동료들을 뒤에서 욕하는 것도 들었던 터라 나 역시 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경험 때문에 청첩장을 한의대 동기들에게 막 뿌릴 수 없었다. 지갑사정도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축의금을 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오, 대학교는 지방에 위치해 있고 결혼식장은 서울이었기에 시간과 교통비 등 부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6년 내내 공부를 함께한 동기들이라면 조금 더 막역한 사이겠지만 그게 아니라 고작 몇 개월을 함께했기에 아직 '애매한 사이'에 머무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부담을 1%라도 주기 싫었다.


그래서 소수 일부 동기들만 모아 '청모(청첩장모임)'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나사(나이 많은 사람들)'과 동아리를 함께하는 동기들에 한정해서 말이다. 그런데, 청첩장 모임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감동을 받았다. 청첩장을 건네받은 스무 살 친구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결혼식을 기대하고, 설레했기 때문이다.


"언니, 저 태어나서 청첩장 처음 받아봐요!
부모님 없이 가는 결혼식은 완전 처음이에요 빨리 옷 사야겠어요!"

그렇다, 회사생활에 찌든 나에게 청첩장은 고지서에 불과했지만 이들에게 청첩장은 어린 시절 '생일파티 초대장'과 같은 설레는 '초대장'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청첩장을 바라봐주던 이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20대 초반 남자 동기들은 결혼을 축하한다며 나에게 장미꽃을 사다 주기도 했다. 이렇게 로맨틱하고 따뜻한 동기들이라니!


그 자리에서 음식과 함께 곁들일 와인을 두병 시켰는데, 그 때 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 저 병 와인은 처음먹어봐요. 먹어도 잔와인밖에 안먹어봤거든요!"


생각해보니, 나도 대학생 때는 맥주와 소주가 전부였고, 보틀 와인은 취업을 하고나서야 제대로 먹었던 것 같다. 와인 한병으로도 스무살 동기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니, 그 자리가 참 행복했다. 와인 한병에 행복함을 표하고, 친척언니 오빠들의 결혼식 외에 결혼식을 혼자가 보는 건 처음이라며,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머리스타일을 하고 결혼식에 갈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기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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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을 받고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라며, "너무 고맙다"라고 말하는 어린 동기들이 참 많았다. 그게 비록 빈말이었을지라도, 너무나도 세속적인 고민을 했던 나 자신을 또 반성하게 됐다. 뒤늦게, 언니 or 누나 결혼식에 가고 싶었는데 초대를 못 받아서 갈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 동기들의 목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엔, 동기들이 결혼식에 오기 전 '하객 복장' '하객 예절'을 검색하고 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가슴깊이 그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스무 살과 서른 살이 느끼는 '청첩장 감수성'은 너무나도 달랐다. 나도 대학생 때는 누군가의 청첩장을 받고 설렜을 텐데. 청첩장을 받으면 축의금부터 떠올리는 자본주의형 인간이 되었을까. 적어도 대학생활 기간 동안만큼은 나도 자본주의 마인드를 조금은 내려놓고, 스무 살의 마음으로 살아봐야지.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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