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캐나다 유학 이야기
캐나다에 유학 와서 지낸 홈스테이 두 집.
첫 번째와 두 번째 홈스테이는 모든 면에서 확연히 달랐다. 그들의 연봉, 가족 구성원, 집, 일상생활, 먹는 음식 등등 모두 달랐다.
첫 번째 홈스테이는 전에도 말했듯이 돈이 필요해서 홈스테이를 하는 집이었다. 싱글맘이었던 아주머니는 세 개의 직업을 가지고 세 딸을 키우는 주말에도 바쁜 엄마였다. 그리하여 주중에는 내가 내 식사를 챙겼고 내 빨래, 청소는 알아서 했다, 이 집 딸들과 마찬가지로. 이 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요리하는 능력을 키우고 빨래하는 능력치도 올리고 독립적인 성향을 키웠다.
두 번째 홈스테이는 여유로운 가족이었다. 장성한 아이들이 떠난 집이 허전해 그저 사람들이 그리워 홈스테이를 하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말도 자주 걸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난 영어도 늘고 캐네디언 문화에 대한 궁금증도 많이 풀 수 있었다. 타지에서 음식으로 고생할까 걱정했는지 한인마트에 가서 손수 김치를 사서 매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줬었다. 웬만한 서양인들은 냄새 못 참는다는 그 김치를... 자신의 냉장고에 넣게 해주다니! 조선시대 토종 입맛을 가진 나는 아주 많이 고마웠었다.
두 번째 홈스테이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2층 집.
주택가 길 맨 끝 코너에 있는 집으로 뒷마당이 꽤 널찍한 영화에서 보던 서양 집이었다. 1층엔 접견실이 있고 주방도 있고 대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다이닝룸도 있고 모두 모여 카드게임을 할 수 있는 거실도 있다. 주방은 내가 꿈꾸던 주방처럼 커다랗고 ㄱ자 주방 싱크대에 아일랜드도 있었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그곳에서 항상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곤 했다.
아침은 여느 캐네디언들이 그렇듯 시리얼이나 빵조각 먹고 등교/출근하고 점심은 전날 저녁으로 먹고 남은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가거나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고 저녁은 요리해서 한 상 차려 먹었다. 가끔 밥하기 싫을 때는 홈스테이 아저씨가 피자 2판을 사 가지고 오신다. 야호! 캐나다의 대표 피자집, 피자 피자 Pizza Pizza. 내가 한창 빠져서 먹던 피자다. 갈릭소스에 찍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갈릭소스에 미쳐있는 것을 아신 아저씨는 항상 내 것 2개를 따로 주문해서 가져다주셨다.
두 번째 홈스테이에서 지내는 기간 내내 맛있는 캐나다 음식을 많이 먹었다. 반찬이 많은 우리 한식과는 달리 주로 1인 1그릇 형태의 음식들이었다. 미트 볼 스파게티, 비프스튜, 로스트 비프에 그래비 소스, 버섯 크림수프와 밥 등등 배도 부르고 입이 즐거운 음식들이었다. 이때, 살이 참 많이 쪘었다. 공항에서 나오는 날 보신 엄마는 우리 딸 아닌 줄 알았다며, 어느 집 딸내미가 굴러 나오는구나 하셨단다. 엄마 딸인 줄도 모르고...
출처: www.canadianliving.com
한국음식은 야채가 많고 손이 많이 가고 해야 할 가짓수도 많은 반면에 캐나다 가정식은 오븐요리가 많고 냄비도 하나만 사용하는 간편(?) 고기 요리들이 많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에 소량의 고기와 야채를 곁들여 먹는다. 자주 먹는 것이지 많이 먹진 않는다. 근데 난 왜 살이 그렇게 쪘었을까...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 홈스테이 아저씨가 항상 묻는 질문이 있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처음에 난 이 질문이 그렇게 어려웠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떤 내용을 말해야 하는지 너무 힘든 주관식이었다. 게다가, 식사하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한국 문화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껏 밥 먹을 때 조용히 먹어야 하는 문화에서 살다가 갑자기 말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제는 적응됐지만 아직도 밥을 먹으면서 말한다는 것이 아주 편하지는 않다. 체할 것 같다.
다들 오늘의 일과를 공유하고 하하호호 웃으며 식사를 했다. 난 딱히 특별하게 말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괜찮았어'라고 짧게 대답했지만 다른 애들은 아주 시시콜콜한 팀 홀튼에 커피 사러 갔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수업시간에 늦을 뻔한 이야기, 어떤 캐네디언에게 길을 물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잘도 떠들어댔다. 난 그런 이야기를 뭐하러 하나,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질문도 아니고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그들과 섞여 점심 먹다가 포크 떨어트려 푸드코트에 있는 일회용 포크로 먹어야 했던 사연, 버스에서 만난 사람과 나눈 이야기 등등 엄마에게도 잘 하지 않는 이야기를 술술 하기 시작했다.
굳이 그 사연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가 대단해서 듣는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바빠서 가족들이 잘 만나지도 못하고 대화가 없으니 저녁식사자리에서나마 서로의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면서 소통하려는 것이다. 잠깐 한국에 나갔을 때, 식사 자리에서 가족들과 소통하려고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왜 이렇게 말이 많냐고. 아차, 나 한국에 있지. 바쁜 현대 시대에 서로 근황을 알려면 밥 먹으면서 대화할 수밖에 없다고 일장연설을 하니 조금 수긍하는 듯 우리 가족도 그렇게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입에 음식물을 가득 넣고 쩝쩝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만 피한다면 충분히 유익한 대화를 할 수 있다.
즐기자,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