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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테레 Mar 29. 2016

2. 지도 볼 줄 알지?

좌충우돌 캐나다 유학 이야기

2.




어학 학교 첫날.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유학원에서 내게 말하길 첫날은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학교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허나, 막상 학교 가는 날 아침, 아주머니는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지도 볼 줄 알지?”


아주머니는 이게 무슨 소린지 당황해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커다란 지도를 식탁에 폈다.

출처: citylab

“자, 여기가 우리 집이야. 여기 버스정류장에서 60B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면 돼. 알겠지?”


짧은 영어로도 지금 상황이 나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직감할 수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스마트폰 지도 앱만 켜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내가 어디쯤인지 다 알 수 있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오던 시절은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다들 이메일 계정 하나둘씩 만들고 가려는 목적지는 물어물어 가던 때였다.

  

“엄마, 이 동네 우체국 어딨어?”

“아, 거긴 집 앞에서 마을버스 타고 ㅇㅇ약국 앞에서 내려. 그 약국 끼고돌면 나오는 골목으로 쭉 올라가면 왼쪽에 있지.”


이렇게 살다온 내가 지도를 보고 어디 찾아갈 수 있겠나. 내가 엄마에게 가는 길을 물을 때 캐나다 사람들은 종이 지도를 펼쳐 길을 찾았던 것이다. 난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냐고 당신이 데려다준다 들었노라고 일언의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왜? 영어가 안되니까.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뻔히 보면서도 그저 무책임한 한마디를 던지는 홈스테이 아주머니.


“괜찮아, 버스 한 번만 타면 가. 버스정류장은 우리 딸이 알려줄 테니 걱정 말고.”

Photo by UrbanDigest

얼마 뒤, 버스정류장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두고 떠난 홈스테이 딸내미. 버스라도 태워주지. 버스기사에게 이 아이 어디에 내려달라고 당부의 말 한마디라도 해주지. 야속했지만 그런 친절을 기대할 순 없었다, 우리 엄마가 아니니까. 냉정한 세상에 버려진 것 같아 드는 서러움은 물론이고 말이 통하지 않아 드는 답답함 역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결국 그 날, 나는 60'B'번 버스가 아닌 60번 버스를 탔고 길을 잃었다. 다행히 같은 학교로 가는 한국 사람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아무 준비 없이 날아간 나에게 캐나다는 혹독했다.

 

덕분에 학교로 가는 버스 번호는 뇌리에 제대로 박혔으며 지도 보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난 어딜 가든지 지도와 함께 했었다.


지금과 같이 빠르고 자세한 정보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었다면 내 유학의 시작이 달랐을까?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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