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캐나다 유학 이야기
어학 학교 첫날.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유학원에서 내게 말하길 첫날은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학교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허나, 막상 학교 가는 날 아침, 아주머니는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지도 볼 줄 알지?”
아주머니는 이게 무슨 소린지 당황해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커다란 지도를 식탁에 폈다.
“자, 여기가 우리 집이야. 여기 버스정류장에서 60B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면 돼. 알겠지?”
짧은 영어로도 지금 상황이 나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직감할 수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스마트폰 지도 앱만 켜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내가 어디쯤인지 다 알 수 있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오던 시절은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다들 이메일 계정 하나둘씩 만들고 가려는 목적지는 물어물어 가던 때였다.
“엄마, 이 동네 우체국 어딨어?”
“아, 거긴 집 앞에서 마을버스 타고 ㅇㅇ약국 앞에서 내려. 그 약국 끼고돌면 나오는 골목으로 쭉 올라가면 왼쪽에 있지.”
이렇게 살다온 내가 지도를 보고 어디 찾아갈 수 있겠나. 내가 엄마에게 가는 길을 물을 때 캐나다 사람들은 종이 지도를 펼쳐 길을 찾았던 것이다. 난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냐고 당신이 데려다준다 들었노라고 일언의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왜? 영어가 안되니까.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뻔히 보면서도 그저 무책임한 한마디를 던지는 홈스테이 아주머니.
“괜찮아, 버스 한 번만 타면 가. 버스정류장은 우리 딸이 알려줄 테니 걱정 말고.”
얼마 뒤, 버스정류장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두고 떠난 홈스테이 딸내미. 버스라도 태워주지. 버스기사에게 이 아이 어디에 내려달라고 당부의 말 한마디라도 해주지. 야속했지만 그런 친절을 기대할 순 없었다, 우리 엄마가 아니니까. 냉정한 세상에 버려진 것 같아 드는 서러움은 물론이고 말이 통하지 않아 드는 답답함 역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결국 그 날, 나는 60'B'번 버스가 아닌 60번 버스를 탔고 길을 잃었다. 다행히 같은 학교로 가는 한국 사람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아무 준비 없이 날아간 나에게 캐나다는 혹독했다.
덕분에 학교로 가는 버스 번호는 뇌리에 제대로 박혔으며 지도 보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난 어딜 가든지 지도와 함께 했었다.
지금과 같이 빠르고 자세한 정보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었다면 내 유학의 시작이 달랐을까?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