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캐나다 유학 이야기
홈스테이 자매들은 한국에서의 내 10대와 사뭇 달랐다. 다문화 나라에서 자란 이들은 아주 자유분방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없고 그들을 대할 때 스스럼이 없다. 이런 환경이 사교성을 키워주고 상황 대처 능력도 만들어 주어 그들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난 모르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성격은 큰 딸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홈파티를 열던 날, 변하기 시작했다.
집이 들썩들썩 시끌시끌거렸다. 20여명 정도 모여 피자를 시켜 먹고 음료수(?) 한 병씩 들고 큰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날, 난 몸이 좋지 않았다. 물 한 잔 마시러 내 방에서 부엌으로 나왔더니 큰 딸 친구들이 눈이 커다랗게 되어 나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넌 누구야?” “넌 어디서 왔어?” “여기엔 왜 왔어?” "홈스테이? 그게 뭔데?"
질문에 단답형 대답을 하고 나면 또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많은 어려운 질문들이 날아왔다. 다행히 큰 딸이 날 구해줬다. 얘 아프니까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내 방으로 가려는 나에게 어디 가냐고 자기들이랑 놀자고 붙들었다. 결국 난 한 마디 했다.
“나 영어 잘 못해.”
“근데? 너 우리가 하는 말 알아듣고 대답하잖아.”
예상치 못했던 내 말에 다들 황당한 듯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왜 이렇게 못났을까. 그 친구들은 내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 자신들 눈 앞에 있는 동양애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넌 한국말을 잘하잖아. 네 나라 말도 아닌 영어를 잘 못하는 게 왜 숨어야 하는 이유야?"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이제껏 내가 살아온 곳에서는 자신들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정답이 없다. 다수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맞아, 왜 내가 내 나라 말도 아닌 남의 나라 말을 잘 못한다고 주눅 들어야 하고 그것으로 나를 평가받아야 하냐고.
그들의 스스럼없는 사교성이 부러웠고 그들의 자유분방한 생각들이 부러웠다. 비록 바쁜 엄마 덕에 자기가 모든 일을 알아서 해야 하지만 그렇게 자란 그들이 나는 부러웠다. 나도 여기서 컸다면, 저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지킨다는 생각에서 나온 양육 방식은 그 아이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로 만들 수 있다. 꼭 캐나다가 아니라 내국에서도 다양한 것을 보게 하고 많은 것을 듣게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그로 인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 생각의 틀이 달라져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가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