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있는 용기
몸과 마음이 고갈되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한 때 재미있게 몰두했던 일들이 있었다. 연극이 특히 그랬다. 완전히 밤낮이 뒤바뀐 생활과 시간의 압박, 몸을 잊고 사는 생활 습관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조금씩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점점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행복하고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계속한다면 행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너 번 내가 먼저 하겠다고 뛰어든 일에서 결국은 그만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2016년부터 2019년 까지 1년에 평균적으로 꼭 한 차례씩은 하던 일을 멈추거나 맡았던 자리를 내려놓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렵 즈음 본격적으로 요가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고 이전보다 요가 수련을 조금씩 더 열심히 하게 되면서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스스로 더 이상 나를 고갈시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몸과 마음이 내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었다.
나의 의지로 시작한 일을 내려두며 느꼈던 감정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죄책감과 자책감이 큰 축으로 나를 휘감아 괴롭혔다. 일을 내려놓고도 꽤 오랜 시간 스스로를 힘들게 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모두 삶 속에서 처음으로 내려놓음과 멈춤을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매트 위에서 수련을 할 때 경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가령 발을 머리 뒤로 넘기는 도전적인 자세를 취할 때, 손쉽게 발을 머리 뒤로 넘기고 어깨까지 편안하게 끄집어내어 손을 합장하고 있는 옆 사람의 자세에 눈길을 두고 나는 왜 안 되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그치며 억지로 발을 머리 뒤로 넘기려고 하면 다칠 수 있다. '지금은 여기에 멈추어서 머물러야지.' 하는 결정을 내리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 어깨가 뻑뻑하게 느껴지네, 고관절 안쪽이 많이 아프네. 허리에서 묵직한 느낌이 드네.'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준다. 혹은 두려운 마음,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구나, 더 가고 싶은 욕심이 드는구나, 이렇게 마음을 알아차리는 과정도 필요하다. 오늘 지금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판단, 평가하지 않고 그저 알아차리는 과정이 모두 요가다.
몸은 기억한다. 내가 억지로 숨을 참고 발을 머리 뒤로 넘기려 애를 쓰며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지, 가만히 멈추어서 스스로 편안한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는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까지도 몸은 기억한다. 세포에 하나하나 다 기록된다.
멈추는 감각을 연습하는 것, 매트 위에서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 도전적으로 아사나에 임하며 스스로를 뛰어넘는 시도를 할 때뿐만 아니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그 알아차림 역시도 중요한 결정이다. 그렇게 멈추어서 머물러 스스로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밖으로 향해있던 시선과 의식을 안으로 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트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매트 아래에서도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멈추는 데에도 훈련과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흘러 죄책감과 자책감은 짙은 고마움과 감사함이 되었다. 세상에 어떤 일도 나 자신을 해쳐가면서 까지 해내야 하는 일은 없다. 규율과 규칙은 물론 지켜져야만 하지만 책임감이 스스로의 영혼을 짓눌러 건강하지 못하게 한다면 멈추어 바라보아야 한다. 멈추는 연습, 내려놓을 용기를 매트 위에서 연습했다면 매트 아래에서도 적용해본다.
잘 해내고 많이 해내고 빨리 해내고 반드시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다. 과정을 지켜보고 몸과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매트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욕심을 부리는 일보다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힘을 쓰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것이 더 쉽지 않음을 자주 깨닫는다. 다시 욕심이 일고 뻣뻣하게 무거워진 어깨로 힘이 들어갈 때마다 가만히 멈추어본다. 생각과 몸과 마음을 가만히 내려놓고 지켜보기만 해도 고갈되어 가던 것들이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지금에 멈출 수 있을 때 서두르지 않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