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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Aug 20. 2020

파드마아사나

연꽃은 진흙에서 피는 거야,

불균형 위에 연꽃 photo lilacstudio


연꽃은 진흙에서 피는 거야.
다만 진흙을 묻히지 않을 뿐,
있는 자리에서
겸손하고 따뜻하게
맑고 밝은 뜻으로 살아.


처음 제주에 갔을 때
요가 관련 자격증을 3개를 딴 후였지만

파드마아사나를 제대로 짜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무릎도 골반도 안 좋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파드마아사나로 오래 앉아있을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연꽃좌,
처음 가부좌를 틀고
1분도 있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3분
5분
조금씩 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되더니
더 시간이 지나니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 스타일의 하타요가에서 '묵타 반다' '사이드 반다' 총체적인 '반다'를 경험하고 나니
선생님께서 오늘은 한 다리에 30분!

하셨다.

집중! 부동! 주시!

잘란다라반다 잠그고!

발바닥에 감각이 아예 사라진지는 오래이고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다리 한쪽만 하고 반대쪽은 시간관계상
내일 한다고 하셨다.

그 다음날 정말로 반대다리도 30분!

선생님께서 나의 발바닥을 긴 막대기로 쿡쿡
누르시면서

"소연 - 죽었니? 살았니?" 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더 깊게 짜 봐"

"이제 죽었니?"

"예, 이제 죽었습니다."

처음으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날이었다.

몸의 차원의 요가에서도
단순히 겉근육을 강화하고 이완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요가이구나.

경이로웠다.

쿤달리니 각성
나디가 정화되는 과정

글로 볼 때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고
와닿지 않았던 개념들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부산, 송도바닷가에서, 1000년된 나무의 밑둥에 앉아,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산과 바다와 하늘과 돌 그리고 저 멀리의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들


시간이 지나 요가 수련을 위해 또 여행을 위해 여러 번 제주를 왔다 갔다 하던 어느 해 어느 날 다시 제주를 찾아 우연히 당근 마을(구좌읍)에 있는 한 절에 들어갔다.


구좌 쪽으로 이사 오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여서 멀리 비어있는 집이 스님께서 예전에 세를 주셨던 집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왠지 그 절에 가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을을 떠나기 전에 절을 찾았다.


여행의 끝자락이라 캐리어를 끌고 양 어깨에도 가방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쫄래쫄래 꼬질꼬질 배낭여행자의 행색으로 절에 올라갔다.


오르막을 오르니 나오는 깔끔한 느낌의 절, 스님이 안 계시길래 조용히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한글로 쓰인 금강경과

"행복을 찾는 108배" 라 쓰인 책이 눈에 들어온다.


법당을 계속 기웃거리고 있으니 조금 무섭게 생긴 스님이 나오셔서 누구냐고 물으셨다. 아, 집을 세를 주셨던 스님도 저 스님이겠거구나! 바로 느낌이 왔다. 내게 그 정보를 알려준 분이 스님이 불같은 성격을 가지신 것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거리다


"어... 저는 여행하고 요가하는 학생인데요..."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렸나 보다.


"뭐라고요?"


왠지 겁이나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요가 수련자이자 음 ... 어 ... 수행하는...사람...?입니다..."


스님이 한층 더 엄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그래 뭘 수행하는데?"라고 하신다.


"음... 저는 하타요가를 해요... 여행하고 있는 학생이에요..."


하니 그제야 웃으시면서


함부로 수행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라고 하신다.


큰 일 난다며,


그냥 학생이나 여행자라고 이야기하라고. 함부로 수행이라는 단어를 올렸다가는 똥파리가 꼬인다며,


행색을 보아하니 젊은 여행자 같은데 분위기가 그냥 뜨내기는 아닌 것 같고 그런데 또 어리고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서 물어봤다고 하셨다. 요즘 이상한 사람이 워낙 많잖아. 하시며


"들어와, 차 한 잔 마시고가." 하신다.


맨 처음에 그렇게 말했는데 ! 조금 억울하지만 내 입에서 갑자기 왜 수행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지. 함부로 쓰지 말아야지. 새겨들어야지... 감사한 마음으로 쫄래쫄래 또 따라 들어선다.


눈이 깊은 시츄 한 마리가 엎드려 누워있었다. 귀엽다고 생각하며 정말 순하네요. 하니 스님은 할머니야 할머니. 나이가 아주 많아. 그래서 힘이 없어. 하신다. 언뜻 보기에는 어린 강아지 같아 보였는데

다시 자세히 보니, 숨도 느리고 여기저기에 반점도 있다.

할머님이었다.


"그래. 뭘 공부했다고?"


"음... 아... 저는 연극을 하고, 주전공은 불어교육인데 예술 쪽이 하고 싶어서... 연극하고 영화하고 공연기획도 좀 하고 하다가 어릴 때 몸이 안 좋아져서 요가를 쭉 하던 게 연이 되어 지금은 요가강사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앳되어 보이는데 파란만장했겠네. 요가는 어디서 배우고?"


"처음에는 부산에서 배웠고 하타요가는 제주에 와서 배웠습니다."


"사라봉 쪽에 계신 선생님?"


"네 맞습니다."


"스님도 예전에 연극을 했었어. 대학가서 법공부하면서 맨날 연극보러 다니고 연극대학원도 갔었어. 스님은 이 절에 버려졌었는데 엄마도 아빠 얼굴도 기억이 안 나. 주지스님이 나를 거둬 키워주셨지. 그 집은 주지 스님이 사시던 집이야. 내가 스님 모시고 그 집에 오래 지냈지. 이제 스님이 안 계시니 내가 이 절을 지켜야 하니까, 그 집을 비워두기가 그래서 내가 사람 온기가 들라고 세를 줬더니 귀신 나오는 집처럼 해둬서 화가 나서 나가라고 그랬어. 그 집에 손이 많이 갔지. 연못도 있고, 내려오는 대나무도 늘 정리해두고, 여자 혼자서는 힘들어. 내가 살아봐서 알아. 혼자 내려온다면 더 못 줘."


하셨다. 집 이야기는 운만 뗐는데 스님께서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것 같았다.


"연극하면서도, 영화를 하면서도 정작 그 일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부치는 것들은 힘들어도 재밌고 즐거웠는데 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상처를 많이 받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다쳤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그런 고백을 툭 하고는,

스님이 주신 차를 받아마셨다. 귀한 차를 이렇게 선뜻 내려주시는 게 얼떨떨하다는 마음으로 있는데 조금 지나니 한 보살님이 과일을 한 가득 가지고 들어오셨다.


"스님~~~~~ 이거 먹어버려야 할 것 같은데용?


"아이고 보살님 오셨네, 그래요 먹어버립시다. 앉으세요."


보살님은 나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앉으셨다.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니 스님께서 요가하는 여행자래요~ 부산에서 왔답니다. 하신다.


제주 분들 특히 읍과 리로 갈수록 첫인사를 나눌 때 경계하시는 듯한 눈빛이 있다. 처음에는 그 눈빛이 굉장히 낯설고 무서웠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경계를 허물려고 한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는 당연한 것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정말 팔뚝만 한 바나나를 뚝 떼어주시길래 또 넙죽 받아먹었다. 보살님께서 사과를 깎으려고 하시길래 제가 깎겠습니다. 하니까 스님이 너 손도 안 씻었잖아. 하신다. 아아 스님 카리스마가 정말 엄청나시다.


또 조용히 앉아서 홀짝홀짝 차를 마시고 있으니


스님께서,


"대충 보니 이 주막에 갔다 화들짝 저 주막에서 화들짝 놀라서 도망을 다녔구나. 주막에서 술을 따르는 주모의

일을 한다고 해서 너의 본질이 주막에서 일어나는 나쁜 사건들하고 같아지는 건 아니지.


화들짝 놀라서 도망칠 일들이 많았겠지. 여자로 세상 사는 게 쉽지 않아. 스님도 혼자서 이 절 지키려고 CCTV를 얼마나 많이 달았는지 모른다. 나는 천애고아에 이제 주지스님도 안 계시고 내가 이 절에 주지스님이 되었는데 이 시골에서 여자 혼자 절 지킨다는 말 나면 큰 일 날까 봐 내가 얼마나 경계하고 살았는지 몰라. 일부러 더 그랬지. 스님 이미지가 그래서 더러워. 내가 원래도 성격이 괴팍하기도 하지만 이미지메이킹을 한 거야 내가. 함부로 아무나 못 오도록."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서 도망을 다녔다는 말씀이 꼭 맞아서 더더욱.


"세상천지 어디에도 환상을 품지 마.

너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맑고 밝은 뜻으로 살아.


특히 종교, 교육, 예술 이런 쪽 사람들 더 믿지 마.

정치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구린내가 딱 봐도 나는 사람들보다도

깨끗하고 청렴해 보이는 것들을 더 믿지 마.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부모도 가족도 친구도 믿지 마.

선생님도 믿지 말고. 나도 믿지 마.

알아들을 것 같아서 해주는 소리야.


너 자신만 믿어. 바른 뜻을 세우고 그렇게 살아.


계속 글 쓰고, 가성비 좋잖아. 글이라는 거!"


하며 웃으셨다.


요가 한다니까 몸은 튼튼할거고. 헛 공부 하는데 허송세월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스님이 노파심에 하는 소리들이야. 스님이 살면서 얼마나 많이 봤겠어.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 그러지마. 산에 들어가려고 하지말고, 요가하고 글쓰고, 젊을 때 바른 뜻을 세워. 어디서 살건, 인생은 너~~~~~무 짧고 이 세상에 이상한 사람도 너~~~~무 많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선뜻 탐스러운 과일과 차 그리고 책까지 쥐어주시는 스님.


스님의 말씀들이 그 날 이후로 내게 화두가 되고 등불이 되었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어머니 모시고 꼭 또 올게요 스님, " 하니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연이 되면 또 보겠지." 하신다.


인사를 나누기 직전에

"한 가지 더! 세련되게! 지금은 너 촌스러워~"

하셨다.


아 지금 너무 더워서... 제가 꾸질꾸질 하죠...

하니 니 겉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야.

행색이 그렇단 게 아니고! 젊고 예뻐! 그 소리가 아니야!

잘 생각해봐!


하셨다.


이렇게 여전히 주절주절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촌스러운 티를 못 벗고 있는 것 같지만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자 생각한다.


있는 자리에서 맑고 밝고 따뜻하게 또 겸손하게

연꽃을 피워내자,

촌스럽지 않게 아름다운 연꽃을,


파드마아사나를 짤 때마다

이번 생을 그렇게 피우리라 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정돈하며 아사나를 만들게 된다.


구글에서 오래 전에 찾은 이미지 분홍 연꽃도 아름답지만 왠지 하얀 연꽃의 자태가 아름답고 우아하고 순수하고 맑아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있는 자리에서 깨어있는 눈으로 바라볼 것 photo lilac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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