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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Jan 21. 2022

10년 만에 대학교 졸업하기

안녕 학교

불어교육과, 예술문화영상학과 두 학과의 졸업과 프랑스어, 연극영화 교원자격 취득에 162.5학점과 교생실습, 영화 제작 실습, 불어학과 불어교수법, 불문학(1), 불문학(2) 세 과목의 졸업 시험, 졸업작품 제출, 영어 공인 성적, 60시간 이상의 교육 봉사 활동, 응급처치및심폐소생술 교육 2회 이수, 교직적성및인성검사 2회, 성인지 교육, 마약 검사 결과서가 필요했다.


10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는데 정신 차려보니 9년이 지났고 10년째가 되어 떠나게 되었다. 정말이지 시원-섭섭하다. 프랑스 갈 거야. 서울 갈 거야. 학교 때려치우고 제주도 가서 요가하고 글 쓰고 농사짓고 살 거야. 하던 내가 아무튼 지금 여기서 느릿느릿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 와서 보니 좀 다행이다. 아무튼 시작한 것은 끝까지 해내는 편인 듯해서 좀 대견하다.


그보다 기특한 것은 졸업과 교원자격 취득과는 아무 상관없지만 6편의 연극, 2번의 극예술연구회 회장단 활동, 부산-서울-부산 3번을 오간 공연 기획 BACKSPACE, 교내 독서토론대회 2번 , 독서소모임 3번, 여러 번의 버스킹과 무대들과 합주곡들이 떠오른다. 학군단 도전과 몇 번의 10km 마라톤도 있었다. 워크샵들과 학회들, 영화제에서 졸린 눈을 떠가며 보았던 영화들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렇게 압축해버리기에는 아직은 생생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다. 정말 원 없이 사부작 거렸다. 많이 보고 듣고 느끼며 잘 놀았다.


과정이었다. 삶에 서사가 생겼다. 궤적이 생겼고 흔적이 생겼다. 그게 제일 감사하다. 그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왔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리고 생계와는 전혀 무관하다 생각했던 요가로 어찌어찌 7년째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 예술은 모르겠고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시작한 요가가 아무튼 생계를 책임지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인생은  수가 없다.


고등학교 때 서울대 간다고 불리한 내신을 극복하기 위해 수리 (가)형 (당시 이과 수학, 나는 문과였다.) 치겠다고 하니 까불지 말고 노래나 하는 게 어떠냐는 담임선생님 (수학 선생님이셨다.) 말에 자존심 상해서 울면서 공부했는데, 근현대사 국사 싹 다 새로 선택해서 엉덩이에 쥐 날 때까지 앉아서 공부했는데.


그때부터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노래 연습이나 좀 더 열심히 할 걸 싶기도 하다. 오늘 녹음하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 계속하다 보면 또 나아지는 때가 오겠지.


매 순간 몰입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겁게 하고 살아 소연아, 인생 별거 없다. 너무 심각해지지 말고 또 너무 들뜨지도 말고 매일 눈 떠서 해야 하는 일 하고, 또 미루지 말고 생생하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밥 잘 챙겨 먹고 잠 잘 자고. 너무 게으르지도 너무 바쁘지도 않게 적당히 그냥 살아.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너무 못한다고 자책하지 말고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미루지 말고 그냥 하기만 해.


10년 전 대학교에 오기 전에는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었고 이것도 저것도 되고 싶었다.


아 오늘도 여전히 더 잘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멸치볶음을 어떻게 하면 더 바삭하게 타지 않고, 달달하게 잘 볶을 수 있을까,


박자를 놓치지 않고 음정 틀리지 않고 짜릿하게 노래 부르고 싶다.


좀 더 명료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수업이 되면 좋겠다.


귀에 쏙쏙 입에 착착 달라붙는 가사를 쓰겠다.


요즘은 그런 걸 잘 해내고 싶구나.


다름 아닌 내가 되어가는 여정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첫 장을 넘기는 느낌이다.


안녕 학교! 안녕 세상! 안녕 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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