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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a May 08. 2022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어떤 그림 앞에 섰을 때 무엇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일까. 또 무엇이 우리를 예술 앞으로 데려오는 것일까.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데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결함에 있다. 우리는 쉽게 우울해지고,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에 대해 무지하며 느끼는 많은 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많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즉 치유받기 위해 예술 앞에 선다.


책은 생각을 담고, 사진이 시선을 담는다면 예술은 마음을 담는 수단이다. 생각과 감정은 다르다. 우리는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감정은 언어로 표현되기 어렵고 심지어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 난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그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미술관을 향해야 한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 있다. 작가가 누구인지도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도 모르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휩싸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그림이 우리 마음의, 감정의 형상이다. 누군가는 강렬한 색채와 붓터치가 강조된 그림에, 누군가는 멀리서 보면 어떤 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차분한 단색화에 매료되기도 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많은 감정들은 우리의 추상적인 마음을 형상화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그림 앞에서 그 작품에서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닌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배경, 구도적 특성이나 기술적인 특징을 알아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그래서 예술을 마치 공부를 해야할 것 같은 따분한 영역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향해 고난은 끊임없이 다가온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치유받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알기 위해, 잊혀진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예술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또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음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 예술이 서서히 사라지기를, 그만큼 고난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예술은 왜 우리에게 중요한가? 그가 건네주는 답은 결정적이다. 예술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성취할 수 있다. 즉, 사랑하는 대상이 떠난 후에도 계속 그 대상을 붙잡아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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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난을 아는 이가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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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에서 숭고에 대한 자각은 대게 찰나에 이루어지고 무작위로 찾아온다. … 하지만 예술은 그러한 무작위와 우연을 줄여준다. 예술은 믿을 만한 기초 위에서 유용한 경험을 이끌어내는 도구이며, 그래서 우리가 슬픔에 잠겨 있다가도 고개를 들 수만 있다면 언제나 숭고의 경험에 계속해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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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역사적 시기에 어떤 예술작품이 새롭게 인기를 얻었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의 특수한 불균형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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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포프는 시의 한 핵심 기능을, 우리가 어설픈 형태로 경험하는 생각들을 붙잡아 거기에 명료한 표현을 부여하는 것이라 규정했다. 우리가 '자주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는'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경험이면서도 쉽사리 사라지고,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을 붙잡아 예전보다 더 좋게 다듬어 나에게 돌려줄 때,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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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그리고 마음과 성격의 특질을 사람뿐 아니라 사물, 풍경, 항아리, 상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낯설고 기이하다. 만일 이 생각이 약간 엉뚱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대체로 우리가 인간의 특성을 시각의 영역에 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물과 동류의식을 느낄 때, 이는 그 사물이 지녔다고 느껴지는 가치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을 때보다 그 사물에게 있을 때 더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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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틀에 박힌 일상은 대체로 우리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일깨우지 않으며, 예술계가 찌르고 치근대고 좋은 의미로 도발할 때까지 내처 겨울잠을 잔다. 이질적인 예술 덕분에 나는 내 안의 종교적 충동, 내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에서의 귀족적인 면, 통과의례를 경험해보고픈 욕구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런 발견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식을 확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모든 장소, 모든 시대에 우리 앞에 진열되어 있진 않다.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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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롭다. 하지만 이것은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나의 고통을 충분히 깊이 있게, 정직하게, 인내심 있게 이해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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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의 많은 부분은 언어로 쉽게 표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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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방문을 마칠 때면 무언가 사고픈 진지한 충동이 솟구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영역에서 알게 된 감수성을 변환하여 삶의 다른 부분으로 가져가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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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미지 앞에서 초조해지는 까닭은 작품을 즐기기에 앞서 작품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느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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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미술관은 흔히 현대 세계의 대성당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 비교는 현대의 세속적인 미술관을 치켜세우기보다 그 약점을 드러낼 뿐이다. 대성당이 창조된 것은 인생의 완전한 이론, 즉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우리의 영적 운명, 올바른 삶에 필요한 지침 등을 강력히 알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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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의해 포획된 가치는 미술관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그 가치들은 우리를 따라 집안의 놀이방으로 들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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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무지를 진지하게 여기고, 모르는 상태를 인정할 만큼 자신만만하다. 호기심은 모름을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과학적 탐구로 가득한 이 뛰어난 페이지는 호기심이 하나의 훌륭한 재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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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비평가의 임무는 어떤 대상을 볼 때 무엇이 진정으로 만족스럽고 즐거운지, 또는 무엇이 실망스럽고 설익었는지 파악하게 하는 데 있다. 비평은 우리가 느끼는 좋음과 싫음의 기초를 최대한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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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러움을 창피하게 여기고, 자신의 실패를 확증하는 감정으로 여기지만, 그 대신 우리가 부러워하는 모든 사람에 관해 본질적이고 생산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부러움의 감정은 쉽사리 혼란스럽고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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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예술을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 목적은 고통과 슬픔이란 삶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결과가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자 할 때 흔히 따라오는 부산물임을 상기시켜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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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추상적인 생각에 육신을 입혀 물질적 객체로 만드는 기술, 개념을 실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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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위험은 악의에 찬 권력이 고귀한 진리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엉뚱하고 무익하고 하찮은 것들에 압도되어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한 채 혼돈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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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간관계, 격조있는 도시, 금전적 만족도도 높을 뿐 아니라 존경받을 만하고 감성적으로 만족스러운 일, 그것이 진정한 예술작품이다.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대상들은 단지 그것들을 향해 우리가 눈길을 돌리도록 이끌어주는 부차적인 도구일 뿐이다.



<영혼의 미술관 - 알랭 드 보통> 22.04.23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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