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ya Jun 24. 202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우리는 정의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해 왔고 동시에 모든 것을 정의해왔다.


세상에 흩어진 수많은 정보들은 펼쳤을 때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르는 보물찾기 쪽지 같은 것이다. 그것은 호기심의 대상이기 전에 불안의 대상이었고 우리는 그 쪽지를 찾는 대로 모아 분류하고, 정리하고, 또 이름 붙였다. 그렇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쪽지를 펼치기도 전에 모양새와 색만 보고도 어떤 것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었고 우리의 불안 또한 잠재웠다. 하지만 미처 분류되지 못한 조각들은 두 개의 큰 언덕을 만들었다. 한쪽 언덕에 쌓인 조각은 겉으로 보기엔 모두 같아 보이지만 펼쳐보면 어떤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고, 다른 한쪽 언덕에 쌓인 조각도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같아 보이지만 펼쳐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글자만 적혀있었다. 두 개의 큰 언덕은 우리에게 불안과 질문이라는 또 다른 언덕을 남겼다.


여기서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언덕은 ‘죽음’이며,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언덕은 ‘사랑’이다. 우리는 죽음과 사랑에 대해 정의 내리지 못했고 수많은 질문, 즉 철학만이 남았다.


-


사람들은 각자의 죽음의 풍경을 담고 있다. 죽음 후에 절대자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또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거나, 하나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죽음 너머에는 침묵만이 남았고, 그 침묵은 대답 없는 질문만을 쌓아두게 만든다. 우리는 그 누구도 천국으로 인도받거나, 전생을 기억하거나, 삶의 반복을 눈치챈 사람은 없다. 즉 우리는 한 번만 산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흘러가는 음악을 단 한 번만 듣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게를 가질 수도, 깊이를 가질 수도 없는 참을 수 없도록 가벼운 것이다.


-


삶에 죽음이 도래할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지만, '사랑'은 그 자체로 정의되지 못한다. 단지 사랑의 겉모습을 하고 있는 감정들(배려, 존중, 그리움 같은 감정들)의 집합이며 간혹 사랑으로 간주되기 쉬운 감정들(연민, 동정, 혐오, 미련 같은 감정들)도 섞여있기 마련이다. 사랑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나에게도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 삶의 목적인지, 과정인지, 결과인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사랑한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


수천 톤이나 나가는 소련 탱크의 무게도 이 중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


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


그에게 있어서 사랑은 공적인 삶의 연장이 아니라 그 대척점이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마치 포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내던져야 하는 군인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방기 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그는 언제 공격당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프란츠의 사랑이란 언제 공격이 올지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포도주를 마시며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라디오로 공개되었다는 것은 오로지 이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집단수용소로 바뀌었다고.


-


영혼을 흥분시키는 것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행동하는 육체에 배신당하는 것, 그리고 그 배신을 목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


전체주의적인 키치 왕국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제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셈이다. 질문이란 이면에 숨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무대장치의 화폭을 찢는 칼과 같은 것이다.


-


만약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22.06.13 완독

작가의 이전글 NNRU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