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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17. 2016

영화 <안경>, 메르시 체조하실래요?

지루하지만 따뜻한 영화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추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만히 멍떼리기와 사색 사이의 줄타기에 능한 사람이라면 정말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타에코 상은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한 민박집에 도착합니다. 그 민박은 에메랄드 빛 바닷가 옆 한적한 그리고 전화기가 터지지 않는 단정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 민박집은 좀 이상합니다. 아무 욕심 없이 낚시나 하며 너무 착한 민박집 사장님. 시장 가듯 일년에 한번 방문해서 빙수를 판다는 사쿠라 할머니. 심지어 할머니는 매일 아침 본인이 만든 메르시 체조를 동네 사람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인데 민박집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고등학교 선생님. 이들은 무언가 가족도 친구도 아닌데 하나의 공동체처럼 살아갑니다.

타에코 상은 밥도 늘 같이 먹어야 하고 그 외엔 아무 활동 없이 자꾸 사색을 해보라는 주인의 말도 이상하고 빙수를 권하는 할머니가 귀찮아 다른 숙소로 옮깁니다. 하지만 옮긴 숙소는 ...... 너무 요상하여 다시 민박집으로 큰 트렁크를 끌고 돌아갑니다. 인적 드문 시골길을 걸어 걸어 지친 타에코. 저 멀리 사쿠라 할머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데리러 옵니다. 트렁크를 끌고 자전거를 타려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는 사쿠라 할머니. 그저 맨몸으로 민박집이 돌아갑니다. 그날부터 타에코 상은 조금씩 그들만의 생활에 동화되어 갑니다.


함께 밥을 먹는 것에 익숙해지고

빙수가 싫다며 거절하던 사쿠라 할머니의 옛날식 빙수도 덥석 받아 함께 먹습니다. 빙수 한 입을 입에 넣은 순간 입 가에 베시시 웃음이...

이 빙수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주고픈 물건을 할머니에게 주면 됩니다.


아침에는 메르시 체조도 함께! 고요한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는 감사하는 마음의 체조


이제 그녀는 사색도 할 줄 알고 함께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 속에 깊은 휴식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를 찾아와 민박집에 잠시 머물던 제자와 함께 사쿠라 할머니 민박집 주인 고등학교 선생님 다섯명은 탁트인 바다를 보며 맥주 한잔을 합니다.

제자는 이런 말을 꺼내며 시를 하나 읊습니다


여행은 문득 시작되었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죠. 전 슬슬 돌아가겠습니다.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길을 똑바로 걸어라
깊은 바다에는 다가가지 말고
따위의 그런 당신 말은 팽개치고 왔다
달빛은 어느 길에나 쏟아진다
어둠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보석과 같다
우연히도 인간이라 불리며 이곳에 있는 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과 싸워왔는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짐을 내려놓을 즈음
좀 더 힘을 부드러워질 수 있는 힘을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그렇게 한 늦봄의 여행은 마무리가 되고.

내년 어느 초여름 타에코 상도 사쿠라 할머니도 모두 돌아옵니다. 또 한 번의 휴식과 사색과 본인 스스로의 자유를 느끼기 위해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나 타에코 상의 심리를 계속해서 따라갈 수 있는 안경은 참 여러모로 답답하다. 주인공 다섯 캐릭터 모두 아떤 잉로 민박집에 모이게 되었는지 사연을 말해주지 않는다. 사쿠라 할머니는 왜 빙수를 파는지, 원래는 뭐 하는 사람인지, 타에코 상도 어떤 이유로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시골까지 왔는지 등등

이런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끝까지 답을 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다보면 그 것들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제자가 읊는 시처럼 나만의 안경 속에 갇혀 꽂꽂하고 딱딱하게 살던 모습들을 던지고 부드러워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 무엇이 자유인지 사색하는 힘을 기르는 것.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내가 처한 환경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것. 이 것이 맞는 게 아닐까라고 부드럽게 권유하고 있다. 에메랄드 빛 바다의 잔잔한 파도처럼.


이 영화는 사실 무지 지루하다. 아침 먹거나 빙수 먹는 장면은 거의 편집없이 롱테이크로 가만히 나는 구경해야하는 처지이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빠져든다. 저 캐릭터는 마치 정말 어느 남부 해안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강한 리얼리티로 다가온다.


혹자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며 그저 먹고 생각하는 단순한 삶에 대한 열망이나 판타지로 이런 슬로우 무비 스타일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런 피산적인 평을 보면 조금 서글퍼진다. 너무 심플하게 표현해버린 것 같아서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단순화되기 때문이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영화지만 한번 추천해보고 싶긴 하다. 이런 단순한 시나리오에서도 몰입도 있게 각 캐릭터의 삶을 궁금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메르시 체조의 코믹함과 따뜻함이 정말 멋지게 그려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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