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 Apr 27. 2016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마치 그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때문에 일본 영화에 관심이 생긴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포스팅이 대부분 일본 여행, 일본 영화 리뷰 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나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정말 관심 한 톨 없던 일본 문화에 대한 내 최근 관심이 급증했기 때문인데...

그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매개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부터 최근에 본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요동치는 감정의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잔잔하게 늘상 이런 일이 있어왔다는 듯이 단조롭게 펼쳐지는 그만의 리얼리티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에세이를 사서 읽어보았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영화의 소재를 얻는지 어떤 의도로 내가 재미나게 본 영화들을 연출했는지 궁금해서이다. 에세이는 그가 연재한 여러 글들을 주제에 맞춰 묶어놓은 모음책이었다.


그의 영화 연출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다.


한 시골학교에서 아이들이 소를 키우게 된다. 현장학습 차원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 하나의 소를 키우고, 그 소가 송아지를 베고 낳는 과정까지 아이들은 사랑으로 같이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어미소가 조산을 하는 바람에 아기 소의 목숨을 잃게 된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 사건으로 "죽음"을 통한 이별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시로 표현하게 되는데..그 시와 감독이 쓴 시에 대한 평은 아래와 같다.


"자자자
기분 좋은 소릴 내며
오늘도 젖을 짠다
슬프지만 젖을 짠다"

기분은 좋지만 슬프다는, 슬프지만 우유는 맛있다는, 이 복잡한 감정을 알게 된 걸 성장이 아니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창작을 하며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상'에 짖착하며 홀리게 된 출발점은 틀림없이 여기라 하겠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배가 다른 이복 동생을 초대했던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세 자매처럼,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한 편으로는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학교 친구들과 웃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의 귀여운 형제들처럼 사람들은 무심하게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그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의 생각의 단편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또 하나 있다.

내가 왜 그의 영화를 좋아했는지, 그리고 마블시리즈의 영화를 안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구질구질한 삶의 모습을 왜 영화 속에서 또 봐야만 할지 모르겠지만, 난 조금은 판타지가 가미된 현실적인 영화가 좋은가 보다. (사실 구질구질한 세계가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현실에서는 포착되지 않고 금새 흘러가버려서 영화 속의 그런 순간은 판타지일 수도 있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동시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는 영화를 연출할 때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자주 바꾼 다고 한다. 좀더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배우의 평소 말투나 행동 습관을 그대로 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칠 때도 딱딱한 대본이 아닌 말로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불완전한 방식이지만 그렇기에 생동감과 현장의 맛이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제목처럼 천천히 그의 생각들을 따라가보기에 참 좋은 에세이인 것 같다.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엄마와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감정을 포착해 그 것을 영화로 스토리로 풀어내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안경>, 메르시 체조하실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