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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11. 2017

유리 천장을 뚫고 달리는 세 여자

[영화] 히든피겨스 를 보고


책상 아래 발을 동동 구르던 한 여자는 사무실을 나와 800미터 떨어진 건물을 향해 달려간다. 하이힐을 신고, 한 손에는 펜을 다른 손에는 계산식이 빼곡한 서류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간 곳은 화장실. 보통 화장실과 달리 팻말이 쓰여있다 "유색인종 화장실"



영화 <히든피겨스>는 60년 대 미국 NASA에서 전산원으로 일하는 세 명의 흑인 여성, 캐서린, 메리, 도로시가 유리 천장을 뚫고 각각의 자리에서 인종 차별의 벽을 깨부쉬는 이야기를 정말 경쾌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캐서린은 수학 천재이다. 흑인 최초로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원의 학위를 땄지만 NASA 건물 지하에서 전산원으로 일할 뿐이다. (당시에는 캄퓨터가 없어 모두 수기로 계산을 한다) 그러던 찰나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하는 해리슨 부장이 담당하는 Space Group 에서 우주선과 우주비행사를 모두 구해낼 수 있는 착륙 지점을 계산해내는 업무를 맡게 된다. 화이트 셔츠의 백인 남자 여자만이 있는 사무실에서 그녀는 바로 몇 발자국 떨어진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그 당시만 해도 버스에는 유색인종 영역, 도서관에도 유색인종 대여 공간, 화장실도 유색인종 전용 공간이 따로 있다.

비슷한 코드의 영화 <헬프>에서 다뤄졌듯이 화장실 구분은 가장 치욕스러운 상징 중 하나인 듯 하다.



그런 가운데 캐서린은 누구보다 명쾌하고 천재적인 계산을 해내고 그 과정에서 해리슨 부장의 츤데레 스러운 지지를 받아 유리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점차 동료의 지지를 받게 된다.



말로 나열하자니 흔하디 흔한 성공 스토리 같지만 이 영화가 정말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한껏 천재이지만 피부색 때문에 당당하게 앞서나가지 못하는 흑인 여성들이 너무나도 유쾌하고 재치있게 리듬감 넘치는 모습으로 맞서는 모습 때문이다.


영화에는 흑인 여성 최초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슈퍼바이저로 승진하기 원하는 도로시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나오는데 특히 도로시가 IBM의 등장으로 모두 해고의 위기에 처한 전산원들을 미리 훈련시켜 IBM 관리부서로 발령되어 전산원 실을 박차고 나오는 장면은 스웩이 넘친다.



영화를 보고나니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피부색으로 차별당하는 것에 비교할바는 아니지만 우리는 수저의 색으로 유리 천장을 느낄 때가 많다.

수저의 색이 대학을 결정하고 그 대학이 직급을 결정하고 같은 건물 같은 공간 같은 셀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이 사회에도 유리 천장은 아주 강력하게 존재한다.

누군가는 어떤 대학 출신, 어떤 회사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능력보다 월등한 평가를 받게 되고 혹은 실제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 누군가는 평범하게 인정을 받긴 받아도 그 이상으로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혀 있다.

요즘의 나도 한계가 느껴지던 찰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은 어느 자리를 향하는 것인지, 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무엇이 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인지 모든 게 혼돈스러울 때가 아주 많이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에서는 사실 한 가지 힌트를 주기는 한다. 내가 천재가 아니기에 사실 엄청난 계산식으로 감동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스웨그 있게 우머있게 가뿐히 살아갈 순 있지 않을까.

까짓것 까라면 까고 말면 말고.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지지를 보내며, 물기 묻은 손으로 티슈를 찾는 적에게 티슈를 건네는 여유로움.

그런 한 뼘의 여유가 그나마 팍팍하디 건조한 직딩 생활을 스무스하게 만들어주려나 하는 힌트를 받아 그렇게 지내볼까 고민하게 된다.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날법한 이 스토리에서 이 상황에서 감독은 그런 억울함보다는 그녀들의 유쾌한 여유를 더 보여주고 싶어 화장실을 향해 갈려가는 캐서린의 뒤뚱거리는 모습을 따라가며 퍼렐 윌리엄스의 스웩 넘치는 음악을 넣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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