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by 코딩커피

우물 안 개구리


접시 안의 개구리는..

접시 밖 세상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접시 ‘안’에 있다는 사실도, 접시 ‘밖’ 세상은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할 수 있어서, 자신의 노력으로 접시 ‘밖’ 세상으로 나갈 수 있기를 갈망할 것이다.


그런데, 우물 안 개구리는..

그 우물이 크고 견고할수록 우물이 그냥 자신의 세상의 전부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우물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우물 ‘밖’에 있는 개구리가 알려주어야, 자신은 사실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좁디좁은 우물이라는 세상 안에서 살고 있었다라는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물 안에 아주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부모 개구리는 자신의 세상 전부였던 우물을, 또 다른 자신의 전부인 자식 개구리에게 자랑스럽게 가르쳐준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을 외면한 채..


인간은 우주의 억겁(億劫)의 시간 속에서 순간에 불과한 찰나(刹那)를, 우물 속에서 머물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나의 세상이 우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나의 전부인 우리의 아이들이 그 우물을 뛰쳐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 이러한 겸손이 아이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문과와 이과의 분류


문과와 이과의 분류는 매우 불편한 분류다. 심지어 4차산업시대에는 훨씬 더 그 효능감이 떨어지는 이 구분은 우리의 아이들을 옥죄고 있다. 도대체,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은 누가, 왜, 무엇을 위해서 하기 시작한 것일까? 문과적 생각, 이과적 생각. 이에 대한 명확한 철학적 설명을 당신은 할 수 있는가? 설명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왜 문과여서 죄송해야 하는가? 문과를 정의할 수 없는데, 그 틀 속에 갇혀서 왜 미안해하고 움츠러들고, 자신의 생각을 부정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문/이과 구분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이과의 분류는 사실상 일본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일본 조차도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서양의 문물을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양의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조슈번, 사쓰마번 출신의 권력 집단을 통해서 정한론으로 조선 침략이 담론화되고, 실행됨으로써 경술년 국치를 통해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며 조선은 사라지고, 한반도에서의 백성의 삶을 송두리채 뒤흔들어 놓았다. 이로 인해 교육적 철학과 커리큘럼은 일제의 가위질에 난도질 당하며 따를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본조차도 서양식 근대 학제인 인문/자연/기술 계열의 분류 체계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를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이식시켜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여기에 더하여,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본격적인 냉전시대와 맞물려 한국 전쟁이라는 너무나 가슴아픈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라를 되찾은 해방의 기쁨은 온대간대 없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상흔만이 오롯이 남아, GDP $70 정도의 최빈국으로 완전히 리셋되어버린 대한민국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던 특수성이 존재한다. 다시말해, 팔자좋게 교육 학제나 따지며 백년지대계를 논할 국가적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민족 전체가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였던 시대였었다. 인문이고, 자연이고, 기술이고. 그냥 닥치는대로 배우고, 심지어 외워서라도 살아내야 했었던 시기였기에 이 과정에서 분업은 필수였고, 국민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그것이 무엇이건 그냥 해 내야만 했었기에 문/이과의 분류는 더욱 공고히 된 측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문과와 이과의 시작


문/이과 분류의 시작은 결국 서양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서양 철학의 흐름을 아주 가볍게 따져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서양 철학 전체를 여기서 조목조목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상 논리적 비약이 있을 수 있음은 독자 여러분께서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학문(學問)은 배우고 묻는 것을 의미한다. 물음을 뜻하는 문(問)은 문(門)을 사이에 두고 입(口)을 통해서 전해짐을 의미한다. 문(門)을 통해서 안과 밖이라는 경계가 만들어지기에 문(門)은 두 경계의 통로가 된다. 그래서, 우주 만물의 하늘과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의 한낱 미물일 수 밖에 없는 인간. 이 사이에서 그 이치를 찾으려 했던 것이 학문(學問)의 시작이었으리라. 인류의 학문은 그렇게 하늘을 알려했었던 천문학에서 시작한다.


천문학은 하늘을 보고 흐름을 따지는 귀납적 방식을 사용한다. 루틴화된 규칙을 찾고 싶어했을 것이다. 규칙은 하나의 공식으로 만들어져 연역적 방식의 유추로 이어지고 순환되기 위함일 것이다. 규칙이라는 정량적 분석을 위해서라도 수를 표기할 기호가 필요했을 것이고 숫자의 발명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숫자 중에서 0의 발명은 상당히 철학적이다. 눈에 보이는 수(number)를 표기할 기호로써의 글자가 숫자(numeral)이었기에 없음(empty)을 의미하는 '0'의 필요성은 존재치 않았다. 그래서, 로마 숫자는 실제로 '없음'에 대한 숫자가 없다. 하지만, '없음'을 표시할 기능적 필요는 있었는지 빈칸이나 점(.)의 형태로 대체 표기하는 방식을 취하는 문명도 있었다고 한다. 대략 6세기 무렵 인도-아라비아 지역에서 새로운 숫자를 발명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전세계가 사용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다. 아라비아 숫자도 처음에는 역시 '없음'을 표기할 필요가 없었는지 '0'을 발명하지 않았다가 '위치 기수법'의 발명으로 '없음'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글자그대로, “There is nothing”, 없는 것이 있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동양 철학에서도 '없음'의 개념인 공(空)은 아주 깊고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아라비아 숫자는 수학이라는 학문 발전의 기폭제가 된 듯 하다. 여기서 곱씹어보아야 할 지점이 수학은 그 적용 범위를 확장하여 철학적 명제에 대한 논거 구성에 더 많은 수단과 풍부한 논의 가능성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수학은 본질적으로 철학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산수와 수학은 다르다. 수학은 결국 철학이다.


이러한 천문학과 수학의 발전은 점차 천문(天文)에서 인문(人文)으로,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발전하며, 철학과 형이상학, 그리고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논리학, 수사학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결국, 하늘의 무늬(天文)를 알고 싶어했던 인류는 인간의 무늬(人文)를 만들어내고 남기는 거대한 발걸음을 끊임없이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인류의 역사에서 학문의 발전은 선형적 구조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상호간의 영향을 미치고 선순환되면서 선형(linear)이 아닌 망(network) 형태로 발전해 간다. 생물학적 진화와 비슷하게 학문적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문과와 이과의 분화


이집트 문명을 거쳐 기원전 500년 정도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지나며 결국에는 아리스토텔레스 라는 걸출한 천재를 통해서 서양 학문의 큰 틀은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논리학, 자연과학, 윤리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체계적 이론화를 이뤄내고 논리학의 확립을 통해서 과학적 사고의 기틀을 제공하게 된다.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도 원래는 지식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은 모든 학문을 철학의 일부로 간주하였기에 자연, 인문, 기술의 구분없이 통합적 사고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학문은 진화한다.


12세기 이후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이슬람 문화가 유럽에 유입되면서 이슬람 문화권의 높은 수준의 학문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대규모 번역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많은 저작물들도 함께 라틴어로 번역이 이루어지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재해석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그 이전 중세를 휩쓸었던 교리 중심의 기독교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또 다른 천재 신학자에 의해서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 인간과 자연을 조화시키며,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인문주의의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꽃피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신 중심의 중세 시대 말, 인간의 가치를 강조하며, 인간의 문화와 학문을 탐구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인문주의를 복원하려 했던 르네상스는 결국 종교 혁명과 함께 중세 시대를 종식시키고, 과학 혁명과 대항해 시대의 근대로 넘어가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르네상스와 함께 활짝 열린 근세 시대는 그야말로 학문적으로도 대폭발이 일어난 시기였다. 중세 말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불세출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해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바통을 받아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모차르트, 괴테, 베토벤 등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이름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시기가 근세 시대다.


디아스의 남아프리카 희망봉 발견으로 인도양이 열리고, 콤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아메리카가 열리며 서유럽의 대항해 시대는 세계의 부를 흡수하며 막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부정적 측면이던 긍정적 측면이던 많은 분야의 학문적 발전이 폭발하게 된다. 포르투갈이 전해준 조총으로 일본이 정명가도(征明假道)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시기도 이 근세 시대다.


그런데, 이 근세 시기까지도 인문과 자연 계열의 학문적 분리가 일어나지는 않았었던 듯 하다. 우리가 수학자, 과학자로 익히 알고 있는 데카르트, 뉴턴의 경우도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자연철학자"라는 정체성을 띄고 있었고, 과학자라는 의미의 Scientist 라는 단어조차도 19세기 초에나 등장했지만, 있었다고 한들 "통합적 지식인"이라는 의미로 소통되고 소비되었을 것이다.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적 폭발과 대항해 시대를 통한 막대한 부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서유럽 중심의 1차 산업 혁명과 함께 현대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게 된다. 이 때, 단순히 기존 지식의 전달과 학습이 목적이었던 "대학"의 역할이 1810년 설립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를 시작으로, 오늘날의 "교육과 연구" 중심으로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라는 역할로 대학의 본연의 역할이 확장되게 된다. 이 지점부터 본격적으로 학문적 전문성과 연구 중심의 지향점이 자연 과학, 기술 공학, 인문 사회 등으로 분리되며 연구를 통한 새로운 지식 창출로 이어지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대항해 시대, 서유럽의 식민지 개척은 기독교 전파라는 종교적 목적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제국이 최고 전성기를 누리며 육로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교역로로써의 해로 확보를 통한 상업적 이익을 위한 측면이 강했다 볼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로 이어지는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에 기반한 식민지 개척은 1차 산업 혁명과 여러 학문적 전문성, 특히 자연 과학과 기술 공학의 발전과 함께 자원, 자본의 수탈, 지배/피지배적 계급 형성, 민족적 우위, 통치 등 훨씬 크고 어두운 야욕을 바탕에 깔고 있었던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민족주의에 기반한 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전쟁은 훨씬 더 크고 무서웠으며, 종국에는 여러 지엽적 응력들이 모여서 1차, 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 이러한 무섭도록 어두운 측면은 자연 과학과 기술 공학의 엄청난 발전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는 학문 분야의 분류를 훨씬 공고히 하고 고착화시킨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과와 이과의 분류가 당연하다?


돌고 돌아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자, 그래서..

문과와 이과의 분류가 시대적 흐름이었고,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면서,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버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필연적 결과로 이식된 학제이기에 아무 의심없이,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것일까?


대한민국은 이제 일제 강점기의 피지배국도 아니며, 유엔에 원조를 받던 최빈국도 아니다. 1인당 GDP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정전된 1953년의 $70 에서 2024년에는 $36,000 육박하고,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유일하게 선진국에 편입된 국가이며, 글로벌 군사력 지수(Global FirePower Index, GFP)는 2024년부터 2년 연속으로 무려 5위에 랭크된 국가이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보이는 대내외적 환경이다.


또한, 서양 중심의 학문적 발전을 따져보더라도 1차 산업 혁명과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친 불과 200년 남짓 기간동안만이 필요에 의해서 전문성 강화와 2, 3, 4차 산업 혁명을 거치며 자연 과학 및 기술 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학문적 계열 분화가 정답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인공지능에 의해서 2번째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듯 하다. 첫번째 르네상스가 신과의 대척점에서 인간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하였다면, 두번째 르네상스는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과 자본주의에 기반한 물질만능주의에 대항해서 인간의 존엄과 고유성에 다시 집중하며 기계와 어우러질 수 있는 합리적 지향점을 찾으려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학문이 그러했듯, 인공지능이 형성한 자연 과학, 기술 공학의 방대한 지식 기반 위에서 다시 인간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은 철학을 필두로 하는 다양한 인문학이 시대적 요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서양 철학만 살펴보았지만, 우리는 동양에 속해 있는 나라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동양적 철학이 오랜세월 DNA에 각인되어 왔다고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재생, 부흥이라는 의미의 르네상스라는 서양적 개념보다는 사실 천, 지, 인의 사상으로 무장된 동양적 철학은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자연과 인간은 함께 어우러져야 하며, 자연 속의 인간, 인간을 위한 자연으로,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로 세상을 바라봐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천문과 인문은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이다.


사람의 발음 기관을 본떠 창제된 자음과, 천·지·인의 철학적 원리에 따라 구성된 모음이 결합된 한글은 이미 동양 철학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또한 태극기는, 음과 양으로 이루어진 우주 만물을 상징하는 태극을 중심에 두고, 그 주위를 하늘과 땅을 나타내는 건(乾)과 곤(坤), 물과 불을 상징하는 감(坎)과 리(離)가 둘러싸며, 상호 대치 속에서도 보완과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표현한다. 이는 곧 태극기 자체가 우주 만물의 조화로운 질서를 상징함을 뜻한다. 이러한 상징들을 통해 볼 때, 우리 민족은 이미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깨닫고 있었으며, 모든 존재가 조화롭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며, 인간과 자연과 기계라는 새로운 조합은 서양적 철학보다는 우리 내면 깊숙히 오랜 세월 자리 잡고 있었던 동양적 사상이 훨씬 어울려보이는 착각마저 들게한다. 문과적 생각, 이과적 생각 이라는 우물에 갇혀 세상 만물로 뻗어가는 생각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내지를 수 있도록 아이들을 우물 밖으로 떠밀어야 한다. 원래 우리 민족은 그러한 민족이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고 우리의 시원한 삼베옷으로 갈아입고 자연의 바람이 숭숭 그대로 온 몸으로 들어올 수 있게 아이들은 우물 밖으로 날아올라야 하지 않을까?




2028 학년도, 문/이과 구분 완전 폐지


2028 학년도 수능부터 문/이과 구분이 완전 폐지된다고 한다. 시대적 흐름에 매우 시의적절하다 여겨진다. 다만, 단순히 수능 과목이 통폐합되는 제도적인 편의성에 기반한 통합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교육과 연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대학의 본연의 역할에 걸맞게, 대학에서 수학(修學)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는 본래의 취지에 맞도록 모든 과목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적지않은 곳에서 인공지능으로 인해 불거진, 대학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들이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단순히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 암기력 테스트 같은 평가 시스템 등은, 대학이라는 최고 고등 교육 기관이 가지는 연구 중심 교육이라는 가치를 부끄럽게 하며, 그 어디에도 철학적 고뇌는 없는 편의성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시대에 질문다운 질문의 부재는 앙꼬빠진 진빵을 넘어 빈 껍데기의 아이들만 만들어 낼 뿐이다.


인문(人文)은 사람의 무늬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콘텐츠는 우리들의 삶의 흔적이며, 그래서 인문이다. 인문은 콘텐츠를 만들고, 과학과 기술은 지구촌 모든 인류에게 닿도록 한다. 인문과 과학 기술은 따로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또 따로이다. 모든 문명의 이기(利器)는 언제나 사람을 향해야 한다. 철학적 고민이 없는 물건은 결국 도태된다. 결국, 인류의 문명은 사람을 중심으로 진화한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듯 하다. 아니,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야말로 이제 부흥을 일으켜야 한다.

그 중심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문과적, 이과적 생각이 아닌, 생각 그 자체를 할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을 우물 밖으로 밀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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