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工夫)를 합시다

by 코딩커피

공부(工夫)


조선시대 명종이 신하들에게 "공부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의정부 참찬관(參贊官) 조원수(趙元秀)는 "공(工)은 여공(女工)의 ‘공’이고 부(夫)는 농부(農夫)의 ‘부’이니, 사람이 학문할 적에 여공이 부지런히 길쌈하는 듯 해야 하고 농부가 힘써 씨 뿌리고 거두는 듯 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일에 대한 노력의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 참고로 참찬관 또는 경연관은 왕과의 경연에 참여하는 정3품의 당상관 직책으로써, 학문과 인품이 탁월한 문관을 겸직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공부(工夫)라는 단어의 뜻만 풀이하면, 결국 무언가를 쉼없이 부지런히 힘써 행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공부가 행위를 의미한다면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해야할 대상일 것이다. 여공에게는 길쌈을, 농부에게는 농사를,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학업을,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운동을 힘써 애쓰는 것이 ‘공부’라는 얘기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 공부(工夫)라는 단어를 아주 좁은 의미로만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 “공부를 잘한다.”,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라는 말에서의 공부의 대상은 국어, 영어, 수학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엄청난 스포츠 스타들도 학창 시절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학업이 본업이라고 여기던 시절에는 공부의 대상이 국영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조차도 공부의 대상은 운동이 아니라 국영수이었던 모양이다.




조선의 학습(學習)


조선시대 교육법은 성독(聲讀)을 하고 암기(暗記)를 해서 배강(排講)을 하고 강해(講解)를 한 뒤에 필사(筆寫)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암기를 위해서 먼저 소리내어 읽는 것부터 시작하고, 결국에는 암송을 하고 풀이를 한 뒤에 그것을 풀어서 쓰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주요한 학습법이었다.


오늘날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것이 과거시험이다. 그리고, 수능 전과목에 해당하는 것이 4서5경 이다. 사서에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 있고, 통상 삼경이라고 해서 시경, 서경, 역경과 함께 춘추, 예기를 합쳐서 오경이 되어서 “사서오경”의 총 9과목이 수능과목이 된다.


시험도 오늘날과 비슷하다. 조선의 입시인 과거시험에서는 사서오경을 단순 암기해서 암기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뜻과 풀이를 통해서 시험에 등장하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자신만의 해석과 해설로 설파하는 것이었기에 오늘날의 논술 시험에 가깝다. 아니, 소과, 대과 모두, 잡과를 제외하면 논술 시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사서오경의 200,000 글자를 우선 암송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학(學)을 하고, 그 후 자신의 철학과 해설을 위해 습(習)를 쉼없이 하게 된다. 습(習)이 공부다. 학(學)은 공부할 대상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얼핏 오늘날과 비교하면 비슷해 보이는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몇 가지 있다.


조선의 과거 시험은 사서오경의 한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합격 포인트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른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서오경을 읽고 또 읽어서 그 함의를 찾기 위해서 쉼없이 공부하며 경주(傾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수능은 맞고 틀림을 중히 여긴다. 그래서, 정답과 오답만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논리적인 생각보다 정답만을 찾을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소위 ‘찍기’가 가능하다.


조선의 과거 시험은 소수만이 준비한다. 조선은 철저히 신분 사회였다. 15세기 세종 시절의 조선은 그 인구가 대략 700 ~ 800만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중 2~3% 수준의 10~20만 정도만이 양반 계층이었고, 양반들의 아이들만이 과거를 준비했다. 인구의 85% 이상의 중인, 상민 계층의 아이들은 수능 시험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한, 과거 시험을 통과한 아이들이 입학할 대학도 ‘성균관’ 하나 뿐이었고, 대학을 졸업해서도 관직에 나아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해야한다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것도 소수만이. 그래서, 조선의 과거제는 신분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조선과는 반대로 85%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학을 왜 가냐고 질문하면, “엄마가 가라하니까요”, “남들 다 가니까요”, “취직할려구요” 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적지않다. 심지어 이게 가능한 이유가,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대학교라고 이름붙은 교육기관이 330여개에 육박하며, 이 중에서 일반 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4년제 대학도 200여개에 이른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최고 고등 교육기관인 대학을 왜 진학할까? 정말 취직할려고? 일반적으로 학생의 본업이 학업이니, 공부(工夫)의 대상이 학문인 것은 일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학문을 탐구하고,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을 진학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다.


공부의 대상이 잘못 설정된 느낌이다. 공부의 대상을 찾아볼려고는 했는지도 의문이다. 대학을 진학하는 목적이 분명치 않으니, 수능 시험의 방식이 ‘찍기’이어도 상관없이 입학만 할 수 있으면 좋다고 여기는 듯 보인다. 무언가 많이 어긋난 느낌이다. 무언가 많이 잘못된 길에 한참 들어선 느낌이다.




티끌모아 태산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티끌이 모여서 태산이 된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이 단순한 진실을 모른다.


일단 티끌이 모여야 태산을 꿈꿀 수 있다. 태산을 생각하며 티끌에 집중해야 한다. 너무 큰 태산을 생각하며 지금의 티끌을 가벼이 여기는 순간은 그 태산은 한낱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어갈 때, 꿈처럼 여겨졌던 그 태산은, 손 뻗어 닿을 듯 ‘목표’가 될 수가 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서의 하나인 중용의 23장에 나오는 말이다.

영화 역린에서 배우 현빈씨가 분한 정조가 영화 마지막에서 읊조린 말이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공부의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공부하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래서, 한땀한땀의 노력이 티끌이 되어, 덩어리가 되는 과정을 행복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덩어리들은 태산이 될테니 말이다. 정성은 배어 나오기 마련이다.


공부의 대상이 합당하면 작은 티끌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점이 될 것이고,

그 점들은 하나하나 모여서 선이 되어 연결된다. 이것이 태산을 이루고 푸른 숲을 만들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스탠포드 졸업 연설에 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실수와 실패의 차이


적지않은 사람들은 실수와 실패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실수는 할 수 있는데, 못해낸 것이고, 실패는 할 수 없는데, 해낼려고 도전한 것이다.

실수는 줄여야 하는 것이고, 실패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실수는 퇴보하는 것이고, 실패는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수는 자꾸 없애야 하는 것이고, 실패는 자꾸 쌓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부의 대상이 무엇이건,

실패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실수를 줄이기 위한 쉼없는 공부가 필요할 것이고,

보다 높고, 보다 넓은 세상으로의 비상을 위해서,

새로운 목표, 새로운 실패를 위해서 역시 쉼없이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 쉼없음이 티끌을 만들어 줄 것이며, 차곡차곡 쌓이는 실패라는 티끌 위에 태산이 만들어 질 것이다. 작심을 하고 삼일만에 실패을 하였다면 다시 작심하면 될 일이다. 실패와 포기는 다르다. 실패는 도전의 결과이기에 뜻대로 안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다시’를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기’가 된다. 오늘날, 인디언 기우제 같은,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야구에서 10번중 3번의 안타를 친 타자는 7번을 실패한 선수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7번을 실패한 선수가 아니라 3번의 안타를 만들어낸 뛰어난 선수라고 칭송한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의 도토리 나무 이야기처럼 노인은 '실패'라는 도전 위에 '다시'라는 애씀으로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을 결국 만들어내었다.




공부를 합시다


공부를 하기 전에 공부할 '나의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잘하고 싶은 것'을, 우리 아이들이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기다려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찾고, 아이들의 실패를 응원해야 한다. 공부는 결국 그 대상이 무엇이든 '정성'이다. 그리고, '행복'이어야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함께 공부 합시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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