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강조, 기울임, 텍스트의 망각

강조와 효과의 세계에서 간과된 글감의 참맛

by BeWrite


펜과 연필의 손맛보다 텍스트의 손맛에
익숙해진 21세기의 글쓴이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텍스트에 숨과 효과를
불어넣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종이책엔 없는 것들 그리고...

PC가 없던 시절엔 대부분 종이책으로 정보를 접했다. 글 역시 키보드가 아닌 펜이나 연필을 사용해서 작성했고 지금처럼 업무에 대한 효율과 최적화를 고려하기 보단 그저 있는 것들을 잘 활용하여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내는 게 중요했다. 웹 화면보다 빈 종이가 더 익숙했던 그 시기, 만질 수 없는 공간에서 글을 남기는 지금과는 달리 종이에 직접 작성하는 글은 형태가 명확하면서도 개성이 돋보였다. 개개인마다 문체가 달랐고 무엇보다 글이 하나의 도구를 넘어 예술의 차원과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대였다.




글을 써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도화지나 종이에 작성하는 글의 느낌과 타자로 치는 글의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종이 절약 차원에서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낫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솔직히 내 입장에선 공감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틈날 때마다 글을 써가면서 느낀 점은 웹 상의 텍스트와 종이의 텍스트는 엄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집중을 하지만 뭔가 종이책을 읽을 때와의 집중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종이책은 내가 직접 만지고 느끼면서 작가의 글을 읽는다. 마우스로 스크롤을 내리거나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웹 페이지와 달리 종이책은 내가 직접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읽어야 한다. 이런 특징들만 놓고 봐도 분명히 다르다.




종이책은 형태가 있다. 하지만 전자책은 이미지만 있을 뿐 그걸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효율과 최적화의 산물이라곤 하지만 종이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전자책에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정보를 접하며 실시간으로 정리하는 부분에선 큰 도움이 되지만 감각적인 독서에서만큼은 여전히 전자책은 종이책의 레벨을 따라가지 못한다. 접근성에 있어서도 다르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반납과 대여를 해야 하는 종이책과는 다르게 전자책은 그냥 온라인 상에서 구매하거나 대여하면 끝이다. 절차도 간단하기 때문에 접근성 면에선 종이책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내가 결제를 했다 할지라도 뭔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 거래가 아니다 보니 느낌상 크게 와닿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잊혀질 때가 종종 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한 만큼 글을 접하고 다루는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특히나 요즘은 좋은 도구들이 워낙 많다 보니 글의 효과를 살려주는 기능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Notion이나 Evernote, Jira, Confluence 등 업무 효율을 높임과 동시에 글 작성에 대한 여러 가지 기능을 제공해주는 도구들을 활용하다 보면 글 작성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다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이메일이나 기타 다른 텍스트 편집기에서 제공해주는 기능들과 비교하면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이러한 도구를 활용한 업무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스스로 도태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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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은 느끼기엔 좋지만
그에 대한 대가도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식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 번 적응되어 시간이 오래 지나면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웹에 익숙해진 현실, 그리고 수많은 텍스트 효과들이 주는 것들

앞으로는 손글씨를 쓰지 않거나 종이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숏폼과 SNS, 짧은 영상과 이미지에 익숙해진 이상 텍스트로 접하는 감각이나 느낌에 무뎌지는 것도 일상처럼 느껴질 게 뻔하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고 개인 차원에서 개선하려고 한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는 사라지고 디지털은 점점 더 가속화된다. 가끔 아날로그가 그립거나 옛날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아날로그 감성의 도구나 경험을 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기술과 효율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문화에서 펼쳐질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기술이다. 그 기술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습관과 패턴까지 모두 알고리즘화 시켜서 알게 모르게 기술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그런 삶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변화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혼란스럽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에 익숙해지면 예전의 경험은 잊혀지고 새로운 경험이 곧 익숙한 경험으로 바뀐다.




위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의 차이를 얘기했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 싶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을 활용하여 글을 쓰다 보면 강조, 밑줄, 기울임 등 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능들이 많다. 뭔가 강조하고 싶은 문장이 있거나 이 문장만큼은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글귀가 있을 때 해당 기능들을 활용하여 글을 작성한다. 때로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문장에 선을 그어서 글에 대한 이해와 흐름을 돕기도 하고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 형광펜 효과를 활용하기도 한다.




전자책에도 마찬가지로 텍스트에 색을 입히거나 효과를 넣을 수 있다. 여러 기능들을 활용하다 보면 기존에 보여지던 페이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내가 커스터마이징한 페이지의 모습이 화면에 보여진다. 종이책은 어떤가? 손을 활용하여 직접 펜과 연필, 형광펜을 가지고 내가 입히고 싶은 효과를 종이 상에 그린다. 행위의 맥락에서 볼 때 크게 다르진 않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마우스나 키보드로 뭔가를 그리는 행위와 펜과 연필을 활용해 효과를 내는 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웹에서 접하는 글들을 보면 강조밑줄 등 여러 효과가 적용된 글들을 많이 본다. 브런치스토리도 그렇고 개인 블로그, Github의 README를 들어가도 이런 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이책들을 보면 특정 텍스트에 밑줄이나 강조, 색상을 적용한 것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지금처럼 웹이나 기술이 대중화되거나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의 책들을 보면 특정 문장이나 단어를 강조하기 위한 채색 효과나 강조, 밑줄 효과를 적용한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독자들 입장에선 편하다. 글쓴이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무엇이고 또 어떤 의도를 전하려는 건지에 관해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효과가 적용된 글들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 전체적인 글의 구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글을 써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또한 내가 작성한 글의 양이 적지 않은데 특정 문장과 키워드만 독자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글을 접한다.어떤 일을 하든 글을 접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일마다 보는 글이지만 그때그때마다 컨디션과 느낌이 다른데 효과가 입혀진 텍스트만 보게 된다면 독자가 생각해볼 수 있는 관점이나 차원의 범위가 훨씬 더 좁혀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고 의도를 파악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얻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혹시 수능 기출문제를 풀면서 텍스트 효과가 적용된 글을 본 적이 있는가? 내 기억으론 거의 없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나 색상 가득하고 돋보이는 텍스트 덕분에 결과적으로 장문의 글을 읽거나 독해하는 역량과 인내심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강조나 밑줄 기타 다른 효과가 보이지 않으면 글 자체가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거나 조회수가 떨어질 수 있어서 어떻게든 트렌드에 맞는 문장과 키워드, 효과를 넣는다.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한 문장과 키워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탁월할진 모르지만 실제로 봐야 하는 건 글의 내용과 본질이다.




여러 색상들과 이미지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가공된 글의 형태나 양식에 너무나도 익숙해지다 보니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며 트렌디한 것들에 관심이 간다. 그러다 보니 정작 과거에 내가 읽었던 글을 되돌아봤고 나의 내면을 강하게 해주었던 글의 형태는 실제로 봤을 때 너무나도 평범했지만 내용만큼은 울림이 있고 뼈가 있었다.




글은 똑같지 않다. 상황과 성격에 따라 글이 작성되는 형태와 방향은 분명히 달라져야 하며 때로는 문장을 강조하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한 효과도 적용할 수 있다. 오히려 스스로가 어떤 걸 강조해야 하며 어떤 문장과 키워드에 색을 입혀야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협업과 소통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업무가 웹 상에서 이루어지고 현실이지만 이 웹 텍스트에 익숙해진 일상은 과거 종이책에서 느껴지던 글의 참맛을 점점 잊혀지게 만들고 있다. 주변에 종이책은 널렸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만큼 그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편리함은 현재를 살아가는 즐거움을 제공해주었지만

한편으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지려면,
개인과 특정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겉모습보단 내용을 봐야하며
내면을 파악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야 한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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