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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사랑해!
2023_이야챌린지_060
by
이야
Oct 31. 2023
임시 표지
"어휴, 아직도 집에만 있니?"
"일어나자마자 또 왜~"
편한 차림의 태이가 배를 긁적였다.
예전에는 출근한다고 갖춰 입은 딸이 이제는 퇴사 후 백수가 되어
있었다.
딸의 선택을 존중하려 했지만, 몇 개월째 집에서 노닥이는 것을 보니 그 믿음은 바닥을 드러냈다.
"예전처럼 알바라도 좀 하면 몰라. 다 큰 딸이 집에서 밥만 축내고, 으휴!"
"후후.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딱 준비하고 있어."
"뭘? 이력서?"
"이제 곧 겨울이잖아. 나, 붕어빵 장사하려고-"
김 여사는 주걱을 내려뒀다.
"사업을 하시겠다?"
"하하. 나도 아빠 닮긴 했나 보다~ 근데 나는 여기저기 손 안 벌리고 딱 내가 모은 걸로 시작- 으아, 밥은 먹고 얘기할걸!"
놀부의 아내로 빙의한 엄마에게서 내쫓긴 흥부 태이는 맛있어 보이는 카페를 서성였다.
"안녕하세요!"
"어, 수유구나~"
"태이 언니, 웬일로 아침 일찍부터 오셨어요? 아, 원래도 이맘때쯤 오시긴 했는데 퇴사하시고는 점심 넘어서나 오셨잖아요."
"어쩌다 보니 겸사겸사? 그보다 오늘 사장님 나오시니?"
딸랑.
한참 기웃대던 태이가 수유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곧 오실 것 같긴 한데- 일단 앉아계세요~ 제가 연락 한 번 해볼게요."
"그래? 그래주면 고맙지. 너무 프리하게 입었나?"
잠옷 차림을 나와서 떠돌던 태이가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사업가는 이런 게 더 믿음직할 수도."
궤변을 늘어뜨리며 합리화를 한 태이의 손이 눈곱을 덜어냈다.
"안녕하세요, 차 사장님!"
"태이 씨, 찾으셨다고 들었는데- 어, 손은 조금"
덥석.
양손을 붙잡힌 목하는 곁눈질로 수유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수유는 오픈 준비에 한창이었다.
"에고. 제가 마음이 급해서. 사실 제안할 게 있는데 말입니다."
이후, 붕어빵 장사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 장황하게 늘어졌다.
진지하게 들은 목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붕어빵은 기존의 디저트 판매와 겹치지 않기도 했고, 다양하게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었던 그의 바람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연락드릴게요."
허가 쪽으로 마음을 굳힌 그였지만, 동업자인 친구의 생각도 들은 다음에야 확답을 내릴 수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언니, 벌써 가시게요?"
"응~ 그런데 점심에 다시 올게. 그때 저것도 같이 계산하고, 못다 한 식사도 마쳐야지."
"네~ 좀 이따 봬요!"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몸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내 딸이지만,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한창 통화 중인 엄마 몰래 방으로 들어온 태이의 눈이 책상을 훑었다.
지갑, 폰.
필요한 것들을 가방에 쓸어 담은 태이가 막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때.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둘렀다.
"어,엄마. 내가 말이지-"
"됐고 가서 씻어! 구정물 나오는 거 아닌가 몰라."
"와, 허락해 주는 거야?"
"너 하는 일에 내
동의가 왜 필요하다니. 알아서 해. 그보다 덥다! 떨어져!"
"에잉~ 엄마,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며칠 뒤 연락을 받은 태이는 엄마뿐만 아니라 가게의 허가도 얻을 수 있었다.
사업자 등록 신청, 필요한 물품 구매 등 준비하는 그녀의 날이 바쁘게 흘렀다.
"이 새벽부터 나가는 거야?"
"어,어. 아무래도 낮에는 아직 더우니까- 지금 시간에 딱 필요하지 않겠어?"
"글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동생 태하와 얘기하던 태이가 부산스럽게 나갈 준비를 마쳤다.
카페와의 협업으로 장소를 제공받은 그녀는 만족스럽게 점포를 둘러봤다.
가게 앞 자그마한 포장마차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지금부터 연습해둬야지. 겨울에 본격적인 장사를 앞두고, 입소문 좀 내보는 거야-"
기합을 넣은 그녀의 손이 분주하게 재료와 도구 사이를 오갔다.
반죽을 잘 붓고, 팥을 비롯해 다양한 속을 준비한 그녀가 침을 삼켰다.
"이거 안 먹고는 못 배기겠는데?"
군침이 도는 냄새가 기가 막혔다.
판매량보다 자신의 입으로 들어갈 게 더 많을 것 같은 느낌을 가까스로 억누른 그녀가 아직 어둑한 새벽하늘을 바라봤다.
"철야하고 집에 들어갈 때나 보던 풍경을-"
괜스레 콧잔등이 붉어지는 그녀였다.
"정말 1000원에 다섯 개에요?"
"네~ 대신 크기가 기존보다 약간 작아요."
"그래도 요즘같이 고물가 시대에서는 뭐- 5천 원어치 주세요."
첫 주문부터 넉넉했다.
그녀가 능숙하게 빵을 담았다.
붕어빵은 처음이었지만, 각종 알바로 다져진 그녀에게 어려움이란 없었다.
"확실히 팥을 많이 찾긴 하시네."
역시 근본은 쉽게 넘을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래도 마지막 빵까지 무사 판매한 그녀는 이제 출근하는 수유를 반갑게 맞이했다.
"벌써 끝났어요? 저 오늘 일찍 왔는데!"
"후후. 걱정 마. 우리 찬 식구들 꺼는 빼놨으니까- 리나도 붕어빵 좋아한다며~"
"맞아요. 그래서 국희랑 리나가 엄청 기대하고 있었어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태이로부터 봉투를 받은 수유가 눈을 반짝였다.
"하~ 정말 좋네요. 겨울 되면 붕어빵 찾으러 다니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젠 바로 앞에서 구할 수 있다니! 버는 돈을 다 여기에 쓸 것 같아서 걱정이지만요."
"하하, 겨울에 붕어빵은 무조건이긴 해~ 추석 지나고 나면 기온이 더 떨어질 것 같으니까 준비를 제대로 해야겠네!"
개시 첫 일부터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오히려 걱정이 무색하게도 너무 빠르게 판매가 완료된 채였다.
"일단 sns 홍보는 급하지 않을 것 같고, 엄마랑 연락해서 외식이라도-"
"어, 태이야!"
"어머, 예진아. 아, 이제 출근하는구나?"
"웅. 그렇지. 아니, 퇴사하고 대체 얼마 만이야~ 아침 산책이라도 하는 거야? 왜 그동안 한 번도 못 봤지?"
"그게 아니라-"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예진의 눈이 빛났다.
"오? 그래? 혹시 퇴근할 즘에도 장사하나? 동생한테 사주고 싶은데-"
"저녁 장사는 생각 안 해봤는데, 흠 밤낮으로 파악해 보는 것도 좋겠네. 내가 하게 되면 연락할게!"
"고마워~ 무리하지는 말구!"
예진과 헤어지고, 집에 도착한 태이를 반긴 김 여사가 그녀의 몸을 살폈다.
"뭐야? 빈손이야? 엄마 입은 입도 아니니?"
"설마- 아침부터 안 먹을 것 같아서 좀 이따 주려고 했지."
"응? 저녁에도 나가려고?"
"응. 저녁에도 해 떨어지면 쌀쌀하잖아. 그때 또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럼 엄마가 돈 줄 테니까 넉넉히 가져와. 태하랑 태하 친구도 같이 먹으려면 많아야지."
저녁을 얻어먹으러 오는 태하의 친구를 떠올린 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퇴사하고 집에만 있으면서 꽤나 친해지게 된 동생이었다.
"그래, 초유 몫도 챙길게. 그보다 내 아침밥은?"
"저기 해놨으니까, 가서 먹구. 치우는 건 엄마가 할게."
새벽부터 고생한 딸이 마음에 쓰인 김 여사가 말했다.
"에이. 그 정도는 제가 해도 되네요. 가서 쉬시죠~"
엄마를 방으로 밀어 넣고는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를 틀어준 그녀가 식탁으로 이동했다.
"끙차.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눈을 뜬 태이가 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누나!"
"초유, 왔구나. 응? 휴이도 왔네."
"네. 저희가 오늘 일이 있어서 좀 일찍 왔어요. 그런데 밤에 붕어빵 가져오신다고 하던데- 그때쯤 가서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내가 새벽에 해봤는데, 혼자 해도 충분해! 집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
동생 친구들의 응원을 받은 태이의 걸음이 씩씩했다.
장사가 마무리될 무렵.
"이사님이 왜 여기?"
한때 우성그룹에 다녔던 그녀는 자신의 상사를 보고 당황했다.
비서로 지냈을 적에 모시던 이가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녀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게 내가 어쩌다가 얘기를 했는데, 들으셔서-"
함께 찾아온 예진이 곤란한 얼굴로 답했다.
"큼. 붕어빵 사러 왔는데, 판매하지 않는 겁니까?"
"아뇨. 하죠. 해야죠-"
"맛있네요. 아이들도 좋아하겠습니다."
"그렇겠죠."
씁쓸함을 감춘 태이가 태연하게 답했다.
자꾸만 심장이 울리는 기분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는데, 태이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오늘이 첫날인데,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괜찮아! 그동안 내가 엄청 잉여로웠어서 이제 좀 제대로 사는 것 같고 오히려 좋아!"
애써 밝게 웃어 보인 태이가 점포를 정리했다.
한편 붕어빵이 식을세라 예진이 먼저 떠나고, 이사는 마감하는 그녀를 조용히 지켜봤다.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혹시 대량 주문도 받습니까?"
"네? 얼마나요?"
"후원하는 보육원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인원이 꽤 됩니다."
"…? 혹시 그동안 언급했던 아이들이 자녀가 아니었던 건가요?"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말한 겁니다만. 그리고 전 아직 미혼입니다."
태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쩜, 유부남을 향한 연심에 자책하며 퇴사했던 지난날.
태이의 시선이 달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해준에게 향했다.
"이사님. 아예 제가 보육원에 방문해서 만들어드릴까요?"
"그러실 수 있습니까? 출장비는 맞게 챙겨드리겠습니다."
"저도 좋아하거든요!"
봉사 차원에서의 무료 노동을 상정한 태이는 어서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저 접으려고 했는데.
이혼도 아니고, 미혼이란다.
"뭐만 하면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 해서 당연히 자녀인 줄 알았잖아! 악! 잠만. 결혼을 안 한 거지, 애인이 있는 거면 어쩌지? 우성의 이사잖아. 그런 배경 아니어도 인기 많을 텐데, 어떻게 꼬시지?"
붕어빵의 달콤함이 뒤덮는 하루의 끝.
태이의 고뇌는 새벽까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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