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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나의 팬!

2023_이야챌린지_062

by 이야
임시 표지

'나는 인기가 많다.'


세이는 떼로 모여든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미친 듯이 열광하는 사람들.

그 행색이 독특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 세이가 손을 흔들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도망가야죠."

"아, 저도 직업정신이 좀 투철한 편이라 그랬어요. 민준 씨도 아파 보인다고 사람들을 진찰하려고 했잖아요?"

"그건- 좀비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영화도 아니고-"


민준이 말끝을 흐렸다.

도로 위에 쓰러진 사람을 살피려던 그는 세이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쨌든 좀비들이 다가오지 않을 때, 빨리 도망쳐요."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저들은 제 팬이니까요."

"세이 씨가 프라이드 높은 배우란 건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비한테-"

"기다려보세요. 크림 바를 시간 됐는데, 이번엔 패스해야겠네요. 그보다 올라가요, 우리."


민준이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세이가 몸을 날렸다.

자동차 위로 올라탄 그녀의 손이 민준에게로 향했다.


"어서요~ 어차피 도로는 막혔고, 마침 식사도 하고 나온 참이라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래도 계속 여기 있으면 생존에-"


좀비들을 곁눈질하던 그는 전보다 좁혀진 거리에 결국 세이의 손을 붙잡았다.

고립된 두 사람의 얼굴은 딴판이었다.

밝은 표정의 세이가 민준의 손목을 들었다.


"시계 좀 볼게요~ 아, 이제 됐겠다."

"아까부터 너무 태연한 거- 얼굴에 스티커를 붙인 겁니까?"


민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그녀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뇨. 이건 말이에요. 제가 스타 트럼프란 증거랍니다~"

"영어 이름입니까?"

"트럼프 가문이 아니라요~ 종족이에요! 인간이 아니란 얘기죠."

"이러려고 저 만났습니까? 장난도 정도껏-"


타앙.

세이에게 놀아났다고 생각한 그가 따지려고 했다.

하지만 곧 그는 허공에 손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여러 번의 총성 이후로 픽 픽 쓰러지는 좀비들을 마주했기 때문에.


"총- 경찰이 온 걸까요?"

"글쎄요~ 경찰보다는-"


저 멀리 보이는 인영을 은근한 눈으로 바라본 세이가 겁먹은 민준의 어깨를 감쌌다.


"만세이 씨, 위험합니다!"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진 좀비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세이.

놀란 민준이 뒤늦게 소리쳤다.


"큰 소리에 집중이 흐트러졌네요."

"괜,괜찮은 겁니까?"

"보다시피 여기 딱 구원자가 등장했네요."


세이의 앞으로는 민준이, 그리고 등 뒤로는 총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두 남자 사이에 낀 그녀의 입가가 경련했다.


"너무 급하게 온 거 아니야?"

"큼. 갈아입을 시간이 어딨어. 누나가 위험한데-"

"만세오, 나 스타 트럼프다?"

"그 능력은 그동안 안 썼잖아. 조절 못하면 그대로 좀비가 달려들 텐데 그러니까 굳이 쉬는 날에 나올 건 뭐야. 맨날 집에 있어놓고 왜-"


잔소리하는 동생에게서 고개를 돌린 세이는 소외된 민준을 바라봤다.


"아, 제 동생이에요. 나도 이제 사람 좀 만나야지. 언제까지 집에 있을 순 없잖아."


민준에게 간단한 소개를 한 그녀가 대꾸했다.


"안녕하세요. 부민준입니다."

"예. 만세오입니다. 저번에 누나 사고 났을 때 진료 봐준 의사 선생님이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그보다 동생분은 경찰인 겁니까?"


그의 차림은 유도 복장이었지만, 총을 가지고 있는 그를 경찰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뇨. 대학생입니다. 이건 제가-"

"쟤가 스페이드 트럼프라 그래요. 전사거든요~ 이제 안전은 확실히 확보했으니, 민준 씨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저랑 마저 데이트해요."

"사방이 좀비인데 무슨 데이트."


세이의 말에 찬물을 끼얹은 건 민준이 아니었다.

선우진.

차가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세이의 눈이 일그러졌다.


"어머나. 대표님~ 저부터 찾으러 오신 거예요?"

"그럴 리가. 총성 따라 움직인 것뿐이야. 거기에 네가 있었던 거고."

"아, 그렇구나? 하긴. 요즘은 아이돌이나 아니면"


그녀가 대표의 동행자들을 확인했다.


"어머, 효인 씨랑 변호사님이네! 와, 효인 씨는 이적하고 처음 뵙고, 이 변호사님은 제작발표회 뒤풀이 때 봤던 가요?"

"안녕하세요. 세이 씨. 이렇게 또 뵙네요. 상황이 좋았다면 카페라도 갔을 텐데-"

"에이~ 카페 가도 문제없죠! 스타 트럼프인 제가 좀비들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고, 위험하다 싶으면 제 동생이 다 처리할 거고. 무엇보다 대표님이 고용한 용병들이 많을 거거든요."

"맞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무사히 오긴 했는데, 헬기를 띄운다고 하셔서-"


힐끗.

다유의 시선이 선우진의 얼굴을 훑었다.


"헬기? 아, 이번에 최 PD님이 우리 애들하고 예능 프로그램 찍는다고 무인도 갔죠?"

"세오도 있으니 굳이 너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어."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최근에 끝난 드라마 PD님 만나러 가는 건데- 나도 갈 거야."


원래부터 진과 친한 사이였던 세이가 편하게 말했다.


"저는 어디든 좀비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민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에 동의하듯 효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전화기 좀."

"핸드폰은 왜? 아, 노아한테 연락하게? 그런데 걔가 받겠어? 며칠 전에 내가 보조배터리 줬는데 또 전화 안 받더라. 너도 핸드폰 안 사는 거 웃기지만, 노아 걔도 핸드폰 충전을 대체 왜 안 하는 거라니."

"우리한테는 그런 거 거추장스럽지."


그녀는 품에서 꺼낸 핸드폰을 동생에게 넘겼다.


"그래도 혹시 받으면 학교에 있으라고 해."

"꺼져있대."

"그럴 줄 알았어~ 일단 노아부터 데려와야겠네."

"여기서 헤어지지. 동생 만나면 가서 용병패부터 발급받으라고 해라."

"노아도 그 정도는 기억- 못하겠네. 알았어. 딱히 걱정은 안 되지만, 효인 씨랑 변호사님도 같이 이동하니까 조심하고."


당부의 말을 전한 그녀가 애틋한 눈길로 다유의 손을 잡았다.


"변호사님,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혹 좀비가 있다 하더라도 같이 간 아이돌 친구들도 저처럼 마음을 조종할 수 있어서 무사할 거예요."

"네, 감사해요. 아름이에게 세이 씨 안부 전할게요!"


대표 일행과 멀어진 세이가 뒤늦게 손뼉을 쳤다.


"민준 씨, 가족은 다 해외에 있잖아요. 대표님을 따라가라고 했어야 할까요?"

"그곳은 총기 소지가 가능하니까 세오 씨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무사할 겁니다."

"그럼 우리 목적지는 확실하네요. 빨리 노아와 합류하고 안전한 장소로 가요, 우리."

"그거 좋네요."


대차게 고개를 끄덕인 민준이 안심한 얼굴로 세상을 마주했다.

전보다 훨씬 줄은 좀비들.

이제 총성도 익숙해진 그는 문득 총알의 수가 궁금해졌다.

꽤나 많이 소모한 것 같은데 탄피를 채우지 않아도 계속 나오는 그것이 왠지 모르게 탐이 나는 그였다.

궁금증에 입을 열려던 그때, 세오의 손에 있던 폰이 울렸다.


"노아야?"

"아니. 작가님이라고 적혀있어."

"아, 김은정 작가님인가? 줘 봐."


폰을 돌려받은 세이가 전화를 받았다.


-세이 씨, 나 좀 구해줘! 내가 여기 차에 갇혀있는데. 흐익. 저기 세이 씨랑 되게 비슷한 사람이 보이거든. 나는 그게 정말 세이 씨였으면 좋겠-


뚜뚜뚜.

그대로 끊어진 통화에 세이가 심각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두 남자는 잔뜩 집중한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저쪽이야."


좀비들의 마음을 조종한 그녀가 순식간에 작가의 위치를 특정해냈다.


"작가님, 괜찮으세요?"

"흐어엉. 내가 살면서 이렇게 겁나던 적이 없어. 정말, 세이 씨가 눈에 들어와서 다행이야. 사실 세이 씨도 위험했을 텐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니까."

"잘하셨어요.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건장한 사내들과 평온한 세이를 보니 안도한 은정은 그대로 기절했다.


"에고. 일단 노아한테 가는 건 좀 늦어지겠는데?"

"내가 업을게."

"그러면 총은-"

"아, 저건 제 동생 전용이라 쟤밖에 못 써요. 걱정하지 말아요. 무기는 제 스타성도 있으니까요!"


명랑한 대답에도 민준은 웃을 수 없었다.

반면 세이는 거만한 표정으로 민준을 향해 웃었다.


"민준 씨, 나랑 사귈래요? 아니면 좀비가 될래요?"

"풉-"

"만세오. 왜 흥을 깨는 거지?"


일대의 좀비들을 다스린 그녀가 업혀있는 은정을 보고는 간신히 참았다.


"지금 고백하는 것도 웃긴데, 협박으로 혼내주기야?"

"큼. 배우는 어느 상황에도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급한 내가 우물 파야지 어쩌겠어~"

"아직 5년 남았잖아?"

"좀처럼 안 넘어오는데, 어떡해. 오늘 데이트도 반협박으로-"


세오가 질린 눈으로 누나를 피했다.


"매형. 저희 누나도 좋은 사람이지만 더 좋은 사람 만나세요."

"아오. 작가님만 아니었으면 넌 오늘 끝장났어."

"아쉽게도 저는 10년은 더 남았네요."


세오를 노려본 그녀가 다시 한번 겉도는 민준의 어깨를 잡았다.


"그때 왜 치료를 빠르게 안 받냐고 했죠? 우리 트럼프는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병까지 피하는 건 아니지만, 슬럼프가 와서 어떻게든 되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민준 씨가 따끔하게 말해줘서 정신 차리고 드라마 촬영에 임할 수 있었어요. 그 고마움의 대가가 생존이면 꽤 괜찮죠?"

그는 세이와 수많은 좀비들을 보자 속이 더욱 울렁거렸다.

어느 세계에서 단풍의 신부로 연기하던 그녀는 이제 좀비의 주인으로 찾아왔다.

이것마저 영화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현실이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다면.

이 출렁임은 사랑일까?

그의 눈동자가 깊어지는 정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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