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이야파티
엘프도 양궁이 하고 싶다
2023_이야챌린지_066
by
이야
Nov 6. 2023
임시 표지
개굴.
실비아의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꽤애액!"
"키킥. 잡았다."
실한 개구리를 손에 넣은 실비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안에서 몸부림치는 개구리를 살짝 눌러주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10점!!! 정경하 선수, 이번에도 깔끔하게 10점입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실비아의 손은 힘이 풀렸다.
개굴.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아났다.
"안돼! 내 청이!"
벌써 이름까지 붙여준 그녀는 사라진 개구리를 찾아 몸을 숙였다.
"다음 라운드에서도 활약이 기대되는 데요. 지금 쌍둥이 선수 모두 10점을 맞았기 때문에 둘 다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거든요."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쉬이익.
그녀의 큰 귀가 담벼락에 쓸렸다.
"아야. 아파. 청이야, 누나가 미안해. 다음엔 꼭 같이 집에 가자? 대신 오늘도 들레랑 가야겠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벽에 핀 꽃으로 달랜 그녀가 홀씨를 날렸다.
"히히. 바람 타고 와야 해! 우리 집까지!"
망설임 없이 개구리를 낚아챘던 손은 결코 식물은 꺾지 않았다.
"정경호 선수부터 먼저 보여줍니다. 10점, 또 10점입니다!"
"아오. 자꾸 10점이라고 왜 좋아하는 거야? 나는 받아쓰기 10점이라 손바닥 맞았는데!"
그날의 쓰라림이 떠올린 실비아의 눈가가 절로 구겨졌다.
결국 옆집 할머니네를 들여다본 그녀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흥분한 아저씨한테 따지려고 했는데, TV 속 사람이었다.
평소 잘 보진 않았지만 개념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녀의 목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할머니가 곧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잉? 우리, 실이도 볼 게야?"
"아뇨. 집에 갈 거예요."
"그려. 오고 싶음 또 와~"
실비아의 태도는 한결같이 쌀쌀했다.
태생적으로 인간이 불편한 그녀.
철컥.
집에 돌아오자마자 신발을 정리해둔 실비아는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쏴아아.
수건에 손까지 잘 말린 그녀가 낯선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저게 대체 뭔데, 자꾸 10점이라고 좋아해! 나도 그럼 안 맞아도 됐던 거 아니야?"
TV를 틀자 마침 나오는 채널이 딱 그거였다.
실비아가 뾰로통한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이 달라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근.
두근.
활시위를 당길 때에도.
클로즈 업된 선수의 얼굴이 보일 때에도.
드디어 활을 벗어나 날아갔을 때에도.
그리고 콱.
"와아아."
과녁에 꽂힌 화살처럼 TV에 달라붙은 실비아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저 활을 들고 자연을 활보하고 싶었다.
띠리릭.
양궁 경기에 집중한 그녀는 보호자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라는 평소처럼 마중을 나오지 않는 실비아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뭐야, 벌써 자는 거야?"
그녀는 합당한 추리를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TV를 안고 있는 실비아.
원체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녀가 드디어 만화의 매력을 알았나 싶었다.
아라의 손이 실비아의 허리를 붙잡았다.
"아니! 왜 안 떨어져! 대체 뭘 보는 거야?"
"나, 이거 볼 거야!"
워낙 고집이 센 아이긴 했지만, 그래도 타협이 가능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의지가 강한 그녀에게 패배한 아라는 소리에 집중했다.
'이거 양궁 경기잖아? 맞다. 얘, 엘프였지.'
아라가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다시 현대에 적응하고 사느라 무신경했다.
물론 갑자기 돌봐야 하는 아이가 생겼으니 더욱 현실에 매진한 것도 있지만.
그녀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양궁이 좋아?"
"응! 이거 엄청 재밌어! 근데, 엄마."
"엄마 아니고 이모라니까."
"호적엔 올려줬잖아. 아무튼 엄마, 있잖아-"
이제야 소파로 돌아온 실비아의 손이 신발처럼 가지런히 아라의 무릎에 올라갔다.
은빛 눈동자가 티 없이 맑았다.
"나도 저거 하면 안 돼? 아니면 저런 거라도 사줄 수 없어?"
그녀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그것은 꼭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의 엄마도 간절한 눈빛으로 제게 부탁했다.
'인간과 낳은 혼혈이라면-'
'배척당할 거야. 아라, 부탁해. 넌 내가 제일 믿는 인간 친구야! 내 아이를 대신 돌봐줘.'
'난 이제 내가 살던 지구로 돌아갈 거야. 그렇게 되면 넌 평생 아이를 못 볼 거고. 그러니까 거절할게.'
아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들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엘프는 그녀의 생각을 넘어섰다.
'내 가방에 넣어둘 줄은 몰랐지. 아니, 내가 부주의했나. 돌아오기 전에 칭얼거리는 소리를 제대로 살펴봤으면-'
거절한 게 마음에 걸려 들리는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이세계로 끌려가 악착같이 살아남은 자신이지만, 그런 부분은 또 한없이 약했다.
그래서 자꾸만 어린 실비아가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입국을 하던 중 아이가 발견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티아, 나중에 보게 되면 내가 유괴범 오명 쓸 뻔한 거. 반드시 갚아야 할 거야!'
세티아를 다시 만날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그때의 아찔함을 푸려면 실비아의 친모가 필요했다.
"엄마, 나 정말 싫증 안 내고 잘할 수 있어-"
아라의 침묵을 부정으로 받아들인 실비아가 찔끔 눈물을 흘렸다.
"안 된다고 하려던 게 아니야."
"진짜? 나 해도 돼? 할 수 있어?"
"그래. 내일 당장 양궁장부터 가자."
"내일 바로? 그럼 활 잡을 수 있어?"
진심으로 좋아하는 실비아를 보자 오늘이 금요일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무심했던 게 참 미안했다.
"엄마, 고마워! 엄마가 최고야!"
"하여간. 이모래도~ 내일 잘 쏘려면 밥도 잘 먹어야 할 거 아냐. 저녁 먹자."
"웅! 미트볼!"
육식계 엘프가 맞았다.
고기 위주의 반찬만 올라온 식탁 사이.
"두부도 먹어야지."
"웅~"
속이는 게 걸렸지만, 균형 있는 영양을 챙겨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유난히 잘 먹는 실비아가 다음날을 기대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 실비아.
"안 돼. 내일 늦잠 자서 못 가면 어떡해!"
푹.
이불을 올린 실비아가 더 깜깜해진 밤을 맞이했다.
다음날 아침.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에 실비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헉- 몇 시야?"
시계를 보니 아직 나가기로 한 시간까지 여유로웠다.
안심한 실비아는 바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일찍 일어났네?"
"우아. 아 아이 아오이어."
양치하는 실비아의 대답에 아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빨리 가고 싶다고? 걱정 마. 문 열자마자 들어가게 해줄 테니까."
평소 차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실비아가 앞좌석에 안전벨트까지 매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 타면 멀미 나잖아. 이것부터 마시자."
"웅."
혹시 몰라 준비해둔 멀미약을 건넨 아라도 운전석에 앉았다.
착실히 말을 잘 듣는 실비아를 보자 기특했다.
지난 7년,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게 십수 년간 이세계를 헤맨 것보다 어려웠다.
실비아의 콧노래에 감상에서 깬 그녀가 시동을 걸었다.
"엄청 신났네."
"나도 막 팍팍 그 언니오빠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늉을 해 보이는 실비아의 솜씨가 기대되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렴 혼혈이라 해도 엘프의 아이인 실비아.
그녀라면 어렵지 않게 양궁을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어머니. 어째서 이 아이를 이제야 데려오신 겁니까!"
실비아의 실력에 반한 코치가 아라의 손을 붙잡았다.
"제가 이 아이, 책임지고 키우겠습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나는 코치의 눈.
실비아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아라를 바라봤다.
"잘하는 건 맞지만, 선수로 키우는 건 아무래도-"
"어머니는 아이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십니다."
실비아의 미친 재능에 홀린 코치가 아라에게 열변을 토했다.
한편, 궁이 착 감기는 실비아는 실로 즐거웠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으니.
'바람, 바람이 필요해.'
이곳 양궁장에는 바람이 부는 설비를 해두지 않았다.
자연이란 변수 앞, 10점을 맞힌 두 선수를 떠올렸다.
실내에서 하는 연습은 쉽고 지루했다.
"뭐야? 돌연변이야? 귀가 왜 이렇게 길어?"
"현수야, 남의 귀를 당기면 안 되지!"
홀로 서 있던 실비아를 건드린 것은 한 남자아이였다.
그녀의 뾰족한 귀를 이상하게 여긴 그는 손을 함부로 놀렸다.
그의 아버지가 놀라서 떼어내려 했지만, 실비아의 팔이 더 빨랐다.
톡.
화살촉이 남자애의 이마를 향했다.
아이와 아버지가 모두 굳은 채였다.
금방이라도 당겨질 듯 선이 팽팽해졌다.
홀로 여유로운 실비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표적이 아니야. 내게 점수가 되지 않는 건 쏘지 않아. 나는 이걸 받아쓰기보다 잘 할 거야."
휘이잉.
아주 살짝 각도를 튼 화살이 그대로 과녁에 박혔다.
정중앙이었다.
넘어진 아들을 안은 남자는 허리만 숙이고 황급히 떠났다.
다시 홀로 남은 실비아는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처럼 착 감기는 활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14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야
직업
작가지망생
3,000자 내외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내용을 수정할 수 있으니 감상에 참조 바랍니다.
팔로워
101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암살자로 전락한 공주는 황후가 됩니다
죽은 신의 나비
매거진의 다음글